사이언스 "과학 지출 '챔피언' 한국, 갑작스런 삭감에 충격"

박정연 기자 2023. 9. 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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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이뤄져...이공계 나쁜 인식 확산"
한국의 R&D 예산 삭감안과 이에 따른 연구자들의 우려를 집중 보도한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기사. 사이언스 홈페이지 캡처

국제학술지 ‘사이언스’가 한국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에 많은 연구자가 우려하고 있다는 취지로  19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결정이 이뤄진 데다 이공계에 대한 좋지 않은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사이언스는 이날 ‘과학 지출 챔피언 한국, 삭감을 제안하다’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에서 갑작스러운 예산 삭감으로 많은 연구자가 충격을 받았다”고 소개했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4.9%를 R&D에 지원하면서 이스라엘(5.9%) 다음으로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올해 6월 윤석열 대통령이 부처의 과학예산 소폭 증액 요구가 나온 이후 ‘제로베이스부터 다시 정비’하라고 지시하고 삭감이 갑자기 추진됐다. 이에 대해 사이언스는 “연구자들은 예산 삭감 내용이 아직 불투명하고 정부가 연구자들과 협의하려는 노력을 거의 하지 않았다고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송지준 한국과학기술원(KAIST) 교수는 “과학자들과 아무런 논의도 없이 갑자기 과학기술 분야 자금 시스템을 바꿨다”며 “단지 예산을 삭감하는 게 아니라 과학자들을 정말 화나게 만드는 것”이라고 사이언스와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이언스는 윤 대통령이 ‘약탈적 이익 카르텔’에 대담하게 맞서라고 촉구한 데 대해 이것이 보조금 프로그램을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경쟁 심사나 정부 통제 없이 연구소, 중소기업, 일부 학계에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는 프로그램을 겨냥했다는 것이다.

기초과학을 수행하는 연구기관들이 할당된 예산 삭감에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라고도 지적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은 국회에서 예산안을 검토하는 동안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사이언스 측에 밝히기도 했다. 

대학에서 이공계에 대한 나쁜 인식이 퍼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잇따랐다. 사이언스에 따르면 기초연구연합회 등 학술단체도 젊은 연구자들이 이번 삭감으로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으며 학생들 사이에서도 이공계에 대한 나쁜 인식이 확산하고 있다. 이동헌 KAIST 대학원 학생회장은 “(과학 및 공학) 직업이 다른 분야에 비해 덜 안정적이고 수익성이 낮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사이언스는 한국 정부가 이번 예산 삭감분을 로켓 제작, 미국 보건연구고등계획국(ARPA-H)를 벤치마킹한 고위험 바이오 연구, 미국 보스턴을 모방한 바이오테크놀로지 혁신 생태계 등에 돌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에 대해 하버드 의대 출신인 송 교수는 “정부 목표를 지지한다”면서도 “단기간에 거대한 생명공학 클러스터를 갑자기 만들 수 없다. 장기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정부의 이번 R&D 예산 삭감에 대한 과학계 반발이 거세지는 가운데 이날 일부 언론은 정부가 R&D 예산 증액을 증액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이 과학기술 카르텔 논란으로 대폭 삭감된 R&D 예산에서 꼭 필요한 부분을 다시 증액하는 작업에 착수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해 대통령실 대변인은 언론 공지를 통해 "오늘 일부 언론에 보도된 연구개발(R&D) 예산 증액 검토 건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의 뉴욕 방문을 수행 중인 최상목 경제수석도 이날 현지 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을 드린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다만 정부는 R&D다운 R&D에 예산 지원을 확실히 함으로써 미래의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 부분은 충분히 하고, 이 부분에 대한 지원을 게을리하지 않겠다는 게 기존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삭감된 R&D 예산이 증액될 가능성도 남아있다. 현재 내년도 R&D 예산안은 기획재정부를 거쳐 국회에 제출된 상태다. 제출된 예산안은 국회 각 상임위원회 및 예산결산특위 감액·증액 심사를 거쳐 오는 12월 확정된다.

[박정연 기자 hess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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