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3년 만에 의원직 상실 위기 윤미향... 고질적 재판 지연, 정치인 사건 특히 심해
윤미향, 수사 기록 열람·등사 두고 공판준비만 수차례
송철호 전 울산시장, 기소됐지만 임기 채워
“승진제 폐지 등 제도 급변…야당 정치인 사건 속도 안 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후원금 횡령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윤미향(58) 무소속 의원이 항소심에서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2020년 검찰에 기소된 지 3년 만이다. 이 판결이 확정되면 윤 의원은 의원직을 잃게 되는데, 이번 임기는 이미 83% 채운 상황이다. 일각에선 최강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송철호 전 울산시장 등과 마찬가지로 재판 지연에 따른 특수를 누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마용주 한창훈 김우진)는 20일 기부금품법·보조금관리법 위반, 업무상횡령·배임 등 8개 혐의로 기소된 윤 의원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윤 의원은 지난 2월 1심에서 검찰이 제기한 업무상 횡령 혐의 중 일부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벌금형을 받았었다. 그러나 윤 의원과 검찰 모두 항소하면서 2심이 열렸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2013~2020년 문화체육관광부·여성가족부·서울시를 속여 박물관 사업, 피해자 치료 사업 등 명목으로 보조금 3억6570만원을 부정 수령한 보조금관리법 위반 혐의도 있다. 치매 증세가 있는 강제동원 피해자 길원옥(95) 할머니를 이용해 2017~2020년 792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증여하게 한 준사기 혐의도 제기됐다.
1심 재판부는 보조금법 위반·업무상 배임 등 혐의 중 1718만원 횡령만을 유죄로 인정해 윤 의원에게 벌금 1500만원을 선고했다.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1심에서 무죄라고 판단했던 ▲여성가족부 국고보조금 부정 수령 ▲김복동 할머니 장례금 유용을 유죄라고 봤다. 정대협 자금을 개인계좌 등에 보관한 업무상 횡령 혐의에 대해 1심 재판부는 횡령액이 1718만원으로 봤으나 2심 재판부는 5배 수준인 8000만원이라고 판단했다.
◇기소된 지 3년 만에 항소심 판결…1심서 ‘준비’만 6차례
검찰이 윤 의원을 기소한 시점은 2020년 9월이다. 그런데 11개월 후에야 유무죄를 가리는 정식 공판이 시작됐고 2년 5개월이 지나서야 1심 판결이 나왔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전국 법원 민사 본안 사건 1심 평균 처리 기간은 작년 기준 177.6일(약 6개월)이다.
1심 공판준비기일 때 검찰은 윤 의원 측이 고의로 재판 절차를 지연시키고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2021년 진행된 5번째 공판준비기일 때 변호인은 검찰이 수사기록이나 압수수색 등을 통해 가져간 자료를 돌려주지 않고 있다며, 포괄적 증거인부(認否·검찰이 제시한 증거에 대해 변호인이 인용 혹은 부인 의견을 밝히는 것)를 위해서는 그 부분이 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검찰은 변호인이 요청하는 자료는 지출결의서나 영수증이 붙은 자료인데, 이는 실제와 다르게 쓰였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돌려주지 못한다고 맞섰다.
2021년 7월 진행된 마지막(6번째) 공판준비기일에서 검찰 측은 “검찰이 압수한 컴퓨터를 디지털포렌식해 확보한 서류에 대해 윤 의원 측이 증거 인부를 부동의했는데, 그 취지가 진술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하자는 건지 자료 확보의 절차상 위법이나 위조를 주장하는 건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윤 의원 변호인 측은 “재판을 일부러 지연시키려는 점은 전혀 없다”는 입장이다.
◇최강욱·송철호 등 재판도 하세월…'친민주당’ 인사 재판 줄줄이 지연
최근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최강욱 전 민주당 의원 역시 기소된 지 3년 8개월 만에 형이 최종 확정됐다. 최 전 의원은 2020년 1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아들에게 가짜 인턴 확인서를 발급한 혐의(대학원 입시 업무방해)로 기소됐다. 그는 검찰이 정치적으로 자신을 기소했다고 주장했지만 1·2심 법원은 “인턴 증명서가 허위”라고 봤다. 1·2심 판단이 다르지 않았지만 대법원은 사건을 들여다보다 전원합의체(전합)로 회부했고, 9대3으로 원심을 확정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 핵심 당사자인 송철호 전 울산시장은 2020년 1월 기소됐지만 아직 1심 판결도 나지 않았다. 이달 11일 기소된 지 약 3년 7개월 만에 결심공판이 끝났다. 2018년 7월 울산시장에 취임한 송 전 시장은 기소가 됐음에도 임기를 모두 마쳤다. 선고기일이 11월 29일에 잡힌 만큼, 함께 기소된 황운하 민주당 의원 역시 임기 상당 부분을 채울 전망이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은 2018년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당시 울산시장이던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재선을 막기 위해 청와대가 개입했다는 의혹이다. 검찰은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송철호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목적으로 송철호 캠프의 송병기 전 부시장이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 등과 공모해 김기현 시장 측근에 대한 허위 첩보를 만든 후 수사에 착수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며 재판에 넘겼다.
◇법조계 일각 “김명수 체제서 재판 지연 심해져”…이유는
법조계 안팎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부임 후 재판 지연 현상이 심해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재판 지연은 이목이 쏠린 정치인 사건에 국한되지 않는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4년 접수부터 선고까지 평균 252.3일이 걸리던 민사합의부 1심 처리 기간은 2021년 364.1일로 7년 만에 110일 넘게 늘어났다. 같은 기간 형사합의 1심(구속 사건)은 114.1일에서 138.3일로 길어졌다.
일각에서는 승진제도 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분석한다. 한 대형 법무법인 변호사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제가 폐지되면서 판사들이 열심히 일할 요인이 사라지고, 인사이동 예측 가능성도 이전에 비해 낮아지면서 법복을 벗는 일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6개월 내 마무리 지어야 하는 선거법 사건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다. 공직선거법 270조에 따르면 선거법 사건 1심은 기소 후 6개월 이내에 선고해야 한다. 하지만 윤 의원 사건처럼 ‘검찰이 수사 기록 열람·등사를 해주지 않는다’거나 피고인 불출석으로 재판이 차일피일 미뤄졌다. 한 형사전문 변호사는 “재판부가 속도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도 공판준비만 1년이 걸리는 사건이 생겼다”며 “김명수 체제에서 야당 정치인들 사건이 이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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