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 4분인데···1000세대 아파트에 AED는 달랑 1대
규모, 설치 위치 고려하지 않은 경우 대부분
건물이 여러 동일 경우 1대 이상 설치는 권장
전문가들 "세밀한 규정 세우고 홍보·계도해야"
AED 설치 수량 무조건 늘리는 데 신중론도
"쓰여야 되는 곳에 설치되지 않을 수도 있어"
500세대 이상 공동주택에 자동심장충격기(AED) 설치가 의무화된 지 12년이 지났지만 ‘보여주기식’ 설치가 여전해 시민들의 접근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규모 아파트 밀집단지에도 AED가 1대만 구비된 곳도 많아 응급상황 발생때 ‘골든타임’을 확보하기 힘들어 현실성있는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20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 시내 대표적 주거 밀집지역인 노원구의 경우 500세대 이상 아파트 96개 중 AED 설치 대 수가 1대에 불과한 곳이 75곳에 달했다.
다른 지역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경기 고양시의 980세대 규모 아파트와 서울 마포구의 913세대 규모 오피스텔도 1대를 구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나마 있는 AED 1대도 관리사무소에 설치돼 주민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경기도 안양시에 거주하는 김 모(29)씨는 "살고 있는 아파트는 10개 동인데 AED가 한 대만 있으면 가지러 가는 것 보다 119가 오는 게 빠를 것”이라며 “동별로 AED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현행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제 47조의2에서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시설 등의 소유자·점유자 또는 관리자는 자동심장충격기 등 심폐소생술을 할 수 있는 응급장비를 갖추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500세대 이상의 공동주택이 이 조항에 포함된다.
문제는 공동주택의 규모에 따라 설치 대수 등과 관련한 세부 기준이 마련되지 않아 대규모 주택 단지에도 AED를 1대만 구비한 경우가 많아 환자에 대한 효과적인 응급처치 활동이 어렵다는 점이다.
해당 법령에는 설치 의무 규정 외에 ‘동일 기관의 건물이 여러 동으로 분리돼 있을 경우, 동 별로 1대 씩 설치하는 것을 권장한다'고만 돼있어 설치 의무시설들이 대당 150만원 가량인 AED를 추가로 설치할 의무를 부여하고 있지 않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안전 의식이 낮은 상태에서 500세대 이상에 한 대 이상 설치하라고 하면 몇 대를 설치하겠냐”며 “더 세밀한 규정을 세우고 홍보와 계도를 적극적으로 해야 하는데 잘 안 될 경우 2차적으로 강제조항을 두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응급의료법에서는 AED 의무 설치 시설이 2개 이상 동으로 구성돼있어도 1대만 설치해도 되는 경우를 명시하고 있다. ‘건물이 연결통로 등으로 연결돼 실질적으로 한 건물처럼 사용하는 곳으로, 미설치 건물에서 설치건물로 달려가 5분 이내에 자동심장충격기를 확보해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경우’다.
하지만 심장마비 환자가 노령이거나 아동일 경우 환자를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은 단 4분이다. 몇 분만에 AED를 작동시켜 심장충격을 가했을 때 환자 생존확률이 2~4배 증가하는 만큼 신속성이 중요하지만 환자 발견자가 AED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4분 이내에 AED를 가지고 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이효철 호남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골든타임은 4분인데 이 때 자동심장충격기를 사용해야만 환자의 생존율이 높아진다"며 “층 수, 면적 등을 고려했을 때 응급 상황 발생 시 1대의 AED만 찾아 사용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치 세부 기준 마련의 근거를 연구를 통해 조사해보고 정책 제안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무조건 AED의 수를 늘리는 것은 한계가 있는 만큼 최대한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설치 위치와 대수를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시은 동강대 응급구조학과 교수는 “AED 수를 늘려야 한다는 접근은 신중해야 한다”면서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봐야 하는데 어느 한 곳에 비용이 많이 사용되면 응급의료 체계 안에서 정작 쓰여야 되는 곳에 설치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승령 기자 yigija94@sedaily.com정유민 기자 ymjeong@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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