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건폭 몰이’ 10개월…현장엔 불법 하도급·안전사고만 남았다

김세훈 기자 2023. 9. 20.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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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폭 몰이 이후 건설노동자 5명 중 3명 “월급 줄어”
불법 하도급 통한 인력수급으로 10~20년 전 후퇴
정부의 노조 탄압 기조, 노동자 생계·안전 위협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2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건설기계노동자 체불 해결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성동훈 기자

지난해 말 정부는 건설노조를 ‘건폭’이라 불렀다. 노조를 조직폭력배에 빗대 강경 대응을 예고한 것이다. 경찰은 건설현장 특별단속을 시행하며 박자를 맞췄다. 10개월이 흐른 지금 건설현장의 풍경은 이전과 사뭇 달라졌다. 무더기 수사에 노조는 위축됐다. 교섭이 되지 않자 노동자들은 실직하거나 노조를 떠났다. 노조가 밀려난 자리에 불법 하도급이 고개를 들고 있다.

경향신문 의뢰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13~14일 소속 조합원에게 달라진 노동환경을 물었다. 총 3333명의 조합원이 설문에 응답했다. 이들은 ‘건폭 몰이’ 이후 일자리와 수입이 줄고, 불법 하도급·안전사고가 늘었다고 답했다. 한 노동자는 “2000년대 초반의 노동환경과 업무강도로 돌아간 것 같다”고 했다.

일 할 현장이 사라졌다
지난 8월2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제2합동청사 확장 건설현장에서 건설근로자들이 얼음물을 마시고 있다. 연합뉴스

이승일 경인건설지부 형틀목수 팀장은 요즘 새벽 인력시장에 나간다. 노조에서 주는 일감만으로는 먹고 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새벽잠을 줄이며 나가도 현장에 가는 날보다 공치고 집에 돌아오는 날이 더 많다. 줄어든 수입을 보전하기는 역부족이다. 2~3년 후 내 집을 마련해보겠다는 꿈도 사라졌다. 이 팀장은 20일 “몸으로 먹고사는 직업인데 이렇게 노는 날이 많아도 되나 싶을 정도다. 미래에 대한 계획없이 하루하루 생존에 매달리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노조 탄압 기조는 노동자의 생계를 위협했다. 건설노동자 5명 중 3명은 월급이 줄어들었다고 답했다. 5명 중 1명(20.3%)은 ‘월 200만원 이상’ 줄어들었다고 했다. ‘50만~100만원 줄었다’는 14%, ‘100만~150만원 줄었다’는 12.2%였다.

김기형 강원건설지부 1지대장은 지난 4월 이후 실직 상태다. 지난해 중순 계약한 현장 일이 끝났으나 새로운 일터를 찾지 못했다. 그는 월 180만원의 실업급여로 생계를 꾸린다. 부족한 부분은 적금을 깨거나 대출을 받아 메운다. 김 지대장은 “일단 급한 대로 3500만원 대출을 받았더니 가족들이 ’노조 안 하면 안 되냐. 가족이 먼저 아니냐‘라고 하더라. 노동자의 권리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으니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일자리가 줄어든 것은 설문에서도 확인된다. 건설노동자 3명 중 1명(32.8%)은 ‘실업 중’이라고 응답했다. 지난 5월 실시한 설문조사의 ‘25.1%’보다 7.6%포인트 늘었다. 김 지대장은 “노조 탄압 이전에는 건설현장에서 내국인 조합원과 외국인·비조합원의 비율이 반반 정도였다”며 “지금은 250명 현장에 내국인 17명이 일하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그나마 나은 편이다. 200명 현장에 조합원이 한 명도 못 들어간 곳도 있다”고 했다.

월평균 노동일 수가 ‘줄었다’(57.3%)는 응답이 ‘늘었다’(3.9%)는 답보다 15배 가까이 많았다. ‘줄었다’고 답한 노동자들의 월평균 노동일수 감소일은 7.5일이었다. 이 팀장은 “이전에는 한 현장에서 3개월에서 1년 정도 안정적으로 일했다. 지금은 10~15일 정도만 잠깐 일하고 다른 현장을 찾아 떠돌아다니는 식”이라며 “과거에는 하나의 건물 세우는 데 일조했다는 자부심이 있었고, 회사와 유대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는 책임감도 있었다. 이제는 ‘다음 현장은 어디로 가봐야 하나’를 먼저 생각한다”고 했다.

공권력감시대응팀, 공익인권변호사모임 등 건설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5월23일 서울 서대문 경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의 권리와 인간 존엄성 파괴, 건설노동자에 대한 국가폭력을 규탄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노조 탄압 심해지고, 노동자들이 노조를 떠났다

노조 탄압 기조는 현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은 적 있다’는 응답에 3명 중 2명(68.6%)이 ‘그렇다’고 답했다. 어떤 차별을 받느냐는 질문에는 ‘조합원을 아예 고용하지 않는다(59.1%)’, ‘비조합팀을 채용하겠다고 강요한다(24.1%)‘고 했다.

현장경력 23년의 베테랑인 이 팀장도 최근 교섭 현장에서 연이어 퇴짜를 맞고 있다. 이 팀장은 “교섭을 하러 가면 현장 소장들이 ’나는 노조원 쓰고 싶다. 그런데 회사에서 쓰지 말라고 한다’면서 교섭을 안 해준다. 업체 대표들이 뒤에서 담합을 했다는 이야기가 돈다”며 “지난해 12월부터 기존 사업장 90% 이상은 교섭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현장 소장들은 ‘노조 조끼를 벗고 들어오라’ ‘대화할 때는 녹음기를 켜겠다’고 말한다고 한다. 정부의 노조 때리기에 발맞추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김 지대장도 최근 경찰서에 출석하라는 요구를 받았다. 2019년 교섭 과정에서 회사에 채용을 강요했다는 혐의다.

김 지대장은 “경찰도 현장 교섭이 이뤄지는 과정을 모르니 ‘채용해달라’고 말하면 강요라고 한다. 내가 거쳐 가는 현장마다 쫓아와 ‘채용 강요는 없었냐’ ‘협박하지 않았냐’는 식으로 물어보고 다니는데 회사들이 부담감을 느낀다고 하더라”며 “문제 삼을 게 없으면 노조 전임비의 사용처까지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뭐 하나만 걸려라’는 식으로 짜깁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경찰이 도심 불법집회 혐의로 민주노총 건설노조에 대한 압수수색에 들어간 지난 6월9일 압수수색이 진행되고 있는 서울 대림동 건설노조 사무실 앞에서 조합원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권도현 기자

정부 탄압 이후 노조원 수도 줄고 있다. 강원 원주 지역의 노조원은 1년 전 320명에서 현재 170명으로 쪼그라들었다. 기존 노조원들은 일자리를 찾아 경기 평택, 김포 등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김 지대장은 최근 여러 조합원으로부터 ‘왜 조합비를 내는데 일감을 주지 않냐’는 항의를 듣기도 했다.

김 지대장은 “노조원이 40% 이상 줄었다. 노조비만 내고 일거리가 없어 활동하지 않는 조합원도 적지 않다”며 “어렵게 현장을 따내도 100~200명이 일하는 대형 작업장은 아예 뚫지 못하고 소규모 공사장에서 짧게 일하고 빠지는 식”이라고 했다. 김준태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건폭 몰이 이후로 전체 조합원 수가 10% 이상 줄었다. 아예 일을 못 할 바에는 돈을 조금 떼이더라도 하도급 팀에 들어가서 일자리를 찾겠다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불법 하도급과 안전사고가 늘어났다

김상윤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청년위원장은 최근 주변 조합원으로부터 “다시 ‘노가다’꾼이 된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과거에는 ‘오야지’나 팀장에 의한 불법 하도급으로 인력수급이 이뤄졌다. 사고가 발생하면 119를 부르는 대신 협력 회사로 데려가 응급처치를 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노조가 생긴 뒤 이런 풍토가 개선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다시 10년, 20년 전으로 후퇴한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일용직으로 일할 때는 문제를 제기하려 해도 사업주가 상시 해고할 수 있어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며 “노조 활동을 하면서는 발언권이 생겼다. 노조원끼리 ‘시키면 아무 일이나 막 하는 노가다가 아닌 건설노동자’라고 말하곤 했다. 지금은 그 자존심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고 했다.

노조가 줄어든 자리는 불법 하도급이 채우고 있다. ‘건설사의 업무관리 태도가 달라진 점 있냐’는 질문에 네 명 중 세 명(77.2%)이 ‘그렇다’고 했다. ‘현장에 불법 다단계 하도급 통해 고용된 노동자가 많아졌다’(35.1%)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지난 5월 29%보다 6.1%포인트 늘었다.

이어 ‘작업 속도를 높일 것을 강요’(17.3%) ‘작업 물량이 남았음에도 현장에서 나갈 것을 요구’(16.5%) ‘안전 규정을 무시하는 일이 잦아졌다’ (12.3%) 순이었다. 사측이 이중계약서를 요구하거나 유급휴일수당, 여성조합원 채용을 거부한다는 답변도 있었다. 이 팀장은 “노조는 일종의 감시자다. 노조가 없으면 사측은 급식소·쉼터도 만들지 않다가 노동부에서 시찰을 나온다고 하면 급하게 천막을 치곤 했다”고 했다.

민주노총 건설노조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 8월2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현장에 폭염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권도현 기자

건설현장은 더 위험한 곳이 됐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2.5%)은 최근 안전사고 빈도가 늘었다고 했다. ‘줄었다’는 응답은 2.8%에 그쳤다. 미숙련 노동자 증가로 인한 사고(49.6%), 공사기간 단축을 위한 ‘빨리빨리’ 작업 강요로 인한 사고(44%) 순으로 많았다. 이 팀장은 “노조는 일하는 기간으로 월급을 계산하는데 도급팀은 하루 할당량으로 계산한다.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 안전보다는 속도를 중시하게 된다”며 “심적으로 늘 쫓기는 마음을 가지고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노조에 있는 숙련공들이 일터에서 빠지면서 안전사고 위험성이 높아졌다. 외국인 노동자들의 경우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점도 사고 가능성을 높인다”고 했다.

노동자들의 평균연령도 높아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5~6년 전 청년층 유입이 많을 때 건설노조에 들어왔다. 현장이 체질에 맞았고 벌이도 일반 회사에 다닐 때보다 많았다. 같이 들어온 청년들이 하나둘씩 결혼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그러나 최근 분위기는 다르다. 김 위원장은 “노조 가입을 문의하는 청년이 눈에 띄게 줄었다. 현 조합원들도 이직을 고민하는 경우가 꽤 있다”면서 “우리 지부에 20% 정도가 청년이었다면 지금은 5%도 안 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정부도 노사 관계가 건전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할 것이다. 노동자와 회사는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건 상식 중의 상식”이라며 “정부가 나서서 노동조합을 배제하고 값싼 외국인 인력으로 대체하는 게 좋은 노사관계인지 되묻고 싶다. 없는 일자리를 만들어달라는 게 아니라 노사가 문제를 풀어갈 수 있는데 억지로 막지 말아 달라는 것”이라고 했다.

김세훈 기자 ksh3712@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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