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는 무법자?…충전 구역 불법주차에 세차까지
“인력 한계로 단속 어려워, 민원에 의존하는 처지”
“전기차주 의식 문제…관리·감독 시설 필요”
지난 19일 퇴근 시간이 다가오는 오후 5시쯤 서울 시청역 인근 세종대로 앞. 전기차 충전 구역에 전기차 두 대가 충전은 하지 않은 채 줄지어 서 있었다. 그중 한 대 차량에서는 출장 세차 직원으로 보이는 이가 차 트렁크를 열고 내부 정리를 하고 있었다. 작업은 1시간가량 이어졌다. 전기차 충전 구역 앞 표지판에는 전기차 충전 구역 내 계속 주차하는 행위는 과태료 10만 원을 부과한다고 안내하고 있었지만, 직원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다.
서울시 관계자는 “전기차를 충전하지 않고 충전 구역에 주차하는 행위는 법에 따른 충전 방해 행위에 해당한다”면서 “단속은 자치구 권한으로, 자치구에서 단속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중구청 관계자는 “해당 구역은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그린카 반납 구역으로 (전기차가) 늘 주차돼 있어 민원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라면서 “단속 담당 공무원이 한 명뿐이라 수시로 확인하고 있지만, 한계는 있다”고 설명했다.
친환경차 보급 확대를 위해 전기차에 제공하는 충전 공간이 ‘불법주차’ 시설로 전락하고 있다. 전기차에 주어지는 ‘특혜’를 악용하는 사례다. 도로 내 일부 공간을 확보해 제공하는 충전 시설을 사실상 무료 주차장으로 이용하는가 하면 일부는 세차하는 공간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모두 과태료 처분 대상이지만, 단속 여력이 없는 자치단체는 민원 신고에만 의존하는 처지다.
국내 전기차는 서울과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위주로 가파르게 늘고 있다. 올해 8월 말 기준 국내에 등록된 전기차는 총 48만8216대다. 지역별로 경기도가 9만9925대로 전국에서 가장 많고, 서울이 6만7351대로 두 번째다. 인천(3만4094대)까지 더할 경우 수도권 지역 전기차는 총 20만1370대다. 국내 전기차 10대 중 4대 이상이 수도권에 몰려 있는 셈이다.
정부는 앞으로도 전기차를 확대하고 전기차 확대 방안의 일환으로 지속적으로 충전 시설을 늘릴 방침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지난 2017년 1만3676기에 그쳤던 전기차 충전기 수는 지난해 20만5205기로 늘었다. 오는 2030년까지 목표로 한 충전기 수는 123만기 이상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기차 충전 시설을 무료 주차장처럼 이용하는 전기차 소유주가 적지 않다는 점이다. 도심의 부족한 주차 공간 때문에 애를 먹는 휘발유나 경유 같은 내연기관차량 운전자는 전기차 불법주차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구매 시 정부 보조금을 받고 세제 혜택까지 누리면서 도심 한복판에서 충전을 이유로 주차구역도 사실상 무료로 이용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충전을 다 한 뒤에도 장시간 차를 세워두거나, 일부는 충전기를 연결하지 않고 올려만 두는 사례도 있다”며 “사람이 단속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충전기 내 센서를 통해 불법주차를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상 자동차시민연합 대표는 “전기 차주들의 의식 문제”라며 “전기차 보급을 확대해야 하는 지자체로서도 단속 강화에 부담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자체들도 전기차 충전 구역을 주차 공간으로 활용하는 ‘얌체족’ 대응을 위한 다양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부터 세종로와 천왕역 2개 공영주차장에 폐쇄회로(CC)TV로 충전 여부를 확인해 충전 차량에만 주차 요금을 감면해 주는 ‘전기차 충전 주차요금 자동감면 시스템’을 적용했다. 충전 시간과 입·출차 시간을 대조하기 위해서다.
기존 공영주차장의 경우 입구에 설치된 카메라로 전기차 차량번호를 인식한 뒤 출차 시 주차장 출구에서 전기차 충전카드로 충전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요금감면이 이뤄진다. 하지만 이 방식으로는 주차장 이용 시간과 충전시간이 일치하는지 확인할 수 없어 실제 충전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서울시는 현재 수서역, 천호역과 암사1동 공영주차장까지 3곳을 더 추가한 상태다.
중구청도 단속 인력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인공지능(AI) 단속 카메라를 설치해 전기차 충전 구역 단속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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