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기의 과학카페] 암에 걸리지 않는 '이 동물'의 장수 비결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2023. 9. 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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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동부에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는 노화의 징후를 보이지 않아 수명이 길고(아직 정확히 모른다) 암도 거의 걸리지 않는다. 위키피디아 제공

오늘날 대략 6500종의 포유류가 존재하는데 그 생김새만큼이나 수명도 다양하다. 대체로 덩치가 클수록 오래 살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박쥐가 대표적인 예로 비슷한 덩치인 다른 포유류보다 대여섯 배는 오래 산다. 영장류 역시 오래 사는 편으로 그 가운데 유인원은 더 오래 살고 유인원 가운데 사람은 수명이 더 길지만, 경향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설치류 가운데 예외적인 종이 있다. 바로 벌거숭이두더지쥐로 비슷한 덩치인 생쥐에 비해 10배 이상 오래 산다. 생쥐의 최대 수명이 4년인 것에 비해 실험실에서 40년 넘게 사는 벌거숭이두더지쥐도 있다.

어쩌면 사람보다 수명이 더 길지도 모르겠다. 생쥐의 수명이 약간 짧은 편이기는 하지만(크기로 예상한 수명은 6년) 벌거숭이두더지쥐가 예외적인 존재이고 현재 많은 과학자가 장수의 비결을 연구하고 있다.

● 암에 거의 안 걸리는 이유

벌거숭이두더지쥐에게는 어쩌면 더 놀라운 특성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암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수년 전 한 개체에서 암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 마리도 없었을 정도다. 평생 암에 걸릴 가능성이 3분의 1인 인간에게는 너무나 부러운 존재다.

지난 2009년 미국 로체스터대 연구자들은 그 비결이 초기 접촉 억제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접촉 억제(contact inhibition)란 세포가 서로 가까워지면 분열을 멈추는 현상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접촉 억제가 민감하게 일어나 암세포가 생겨도 제대로 증식하지 못해 암조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히알루론산은 두 당분자가 결합한 이당류(위)가 단위체인 고분자로 n 값에 따라 저분자량과 고분자량으로 나뉜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히알루론산은 n이 2만 이상인 고분자량이 대부분이다. 위키피디아 제공

4년 뒤인 2013년 연구자들은 초기 접촉 억제에 관여하는 생체분자가 다당류인 히알루론산(히알루로난으로도 부름)임을 밝혔다. 화장품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히알루론산을 들어봤을 것이다. 수분을 많이 머금는 고분자로 피부 보습에 좋다는 성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몸도 히알루론산을 만드는데, 피부의 중심인 진피에 많이 분포한다. 특히 세포 사이의 공간인 세포밖기질에 풍부하다. 매끈하고 탄력있는 피부는 진피에 콜라겐, 엘라스틴 단백질과 함께 히알루론산이 적절히 배치된 결과다. 나이가 들면 이 세 분자의 양이 줄어들고 상태도 나빠지면서 진피의 구조가 무너지고(바람 빠진 풍선처럼) 그 결과 피부가 주름지고 처진다.

이처럼 사람은 물론 생쥐에도 히알루론산이 있는데 어떻게 벌거숭이두더지쥐의 히알루론산만 암이 생기는 걸 막을 수 있을까. 히알루론산은 두 당분자가 결합한 이당류를 단위로 한 선형 고분자인데 크기에 편차가 있다.

사람의 히알루론산은 분자량 범위가 50만~200만 달톤이고 생쥐도 비슷해서 50~300만 달톤인데 비해 벌거숭이두더지쥐는 600~1200만 달톤으로 훨씬 크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경우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벌거숭이두더지쥐는 히알루론산의 절대량도 더 많다. 이를 분해하는 효소의 활성이 낮기 때문이다.

벌거숭이두더지쥐는 어쩌다 이렇게 독특한 히알루론산 특성을 지니게 진화했을까. 이는 지하에서 굴을 파는 생활방식을 택한 결과로 보인다. 비좁은 굴을 돌아다니려면 피부가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이 있어야 하는데 고분자 히알루론산이 이런 물성을 부여하기 때문이다. 암 억제 효과는 부산물인 셈이다. 

한 분자를 이루는 이당류 단위가 많을 뿐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이라고 해도 물리적 특성이 다를 뿐 생리적 특성은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고분자량 히알루론산만이 초기 접촉 억제 신호를 매개하기 때문이다.

후속 연구 결과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은 염증 억제 효과도 있고 항산화 특성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놀랍게도 저분자량 히알루론산은 반대 특성을 지녀 염증과 암을 촉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히알루론산은 이런 작용을 통해 노화 속도와 수명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생쥐의 수명이 짧고 잡아먹힐 위험성이 없는 실험실에서 자연사할 때까지 키우면 다수가 암에 걸리는 것도 히알루론산의 차이가 큰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 변이 생쥐 건강하게 오래 살아

최근 학술지 ‘네이처’에는 벌거숭이두더지쥐에서 고분자 히알루론산을 만드는 효소인 HAS2의 유전자를 집어넣은 생쥐의 특성을 보고한 논문이 실렸다. 2009년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초기 접촉 억제를 밝힌 로체스터 연구진의 후속 결과다.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유전자를 받은 생쥐(이하 변이 생쥐)의 몸에서는 실제 고분자 히알루론산이 꽤 만들어졌지만  암 위험성이나 수명, 노화 등에는 영향을 미쳤다.

고분자량 히알루론산(HMW-HA)을 만드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HAS2 유전자를 넣은 변이 생쥐는 노화가 늦춰져 오래 산다. 고분자량 히알루론산가 노화와 관련된 산화 스트레스와 장벽 누수, 면역계 활성화(만성 염증)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네이처 제공

변이 생쥐가 암으로 죽은 비율은 57%로 대조군의 70%보다 낮았다. 특히 27개월 이상 살다 죽은 경우 변이 생쥐는 49%로 대조군의 83%보다 훨씬 낮았다. 한편 수명은 4.4% 더 길었다.

특이한 점은 수컷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반면 암컷에서는 9% 더 길었다는 점이다. DNA 메틸화 패턴을 통해 분석한 노화 속도는 변이 생쥐가 20% 쯤 늦었다. 그 결과 골밀도 등 생체나이의 지표가 더 젊게 나왔다.

이런 변화를 일으킨 생리 메커니즘을 분석한 결과 크게 두 가지 원인이 밝혀졌다. 먼저 염증 억제로 면역계 노화로 생기는 만성 염증이 적었다. 다음으로 변이 생쥐는 장벽이 더 튼튼했다. 늙을수록 점액 분비가 줄어들면서 장벽 누수가 생기고 장내미생물의 조성도 유해균이 늘어나는 쪽으로 바뀌는데 변이 생쥐에서는 이 과정이 늦춰졌다.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이 점액 분비를 촉진한 결과다. 

그럼에도 변이 생쥐의 결과는 벌거숭이두더지쥐에는 한참 못 미친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의 양이 벌거숭이두더지쥐 수준에는 못 미쳤다”며 “히알루론산을 파괴하는 효소의 활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일 이 효소의 활성을 낮춘다면 효과는 더 극적일 것이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에서도 고분자량 히알루론산이 효과가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실제 골관절염의 발생은 관절 윤활액 속의 고분자량 히알루론산 농도가 줄어들고 저분자량 히알루론산 농도가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번 생쥐 실험을 사람을 대상으로 할 수는 없지만 만일 한다면 아마도 변이 생쥐와 비슷한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흥미롭게도 고분자 히알루론산은 이미 써본 경험이 있다. 대표적인 피부 시술인 필러의 성분으로 쓴 것이다. 다만 점도가 너무 높아 시술 후 피부 상태가 좋지 않아 지금은 저분자 히알루론산을 쓴다고 한다. 저분자 히알루론산의 부정적인 생리 효과를 생각하면 반가운 변화는 아니다.

수십 년 뒤 미래에 배아를 대상으로 게놈 편집이 일상화된다면 인간의 HAS2 유전자 발현을 높이고 분해 효소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 조작을 통해 암에 잘 안 걸리고 천천히 늙는 신인류가 나오지 않을까.

※ 필자소개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고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직접 쓴 책으로 《강석기의 과학카페》(1~7권),《생명과학의 기원을 찾아서》가 있다. 번역서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 《프루프: 술의 과학》을 썼다.

[강석기 과학 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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