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행 여가부 후보자 “강간당해도 ‘낙태’ 못하면 사회가 아이 받아들여” [플랫]

플랫팀 기자 2023. 9. 20.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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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12년 위키트리 유튜브 방송에서 “낙태(임신중지)가 금지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하고 도망쳐도 코피노를 다 낳는다”면서 “너무 가난하거나 강간을 당해 임신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tolerance·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최대 6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창립한 온라인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의 2012년 유튜브 방송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한 직후 촬영된 방송에서 “여성단체가 (낙태죄 합헌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이유는 헌재에서 합헌 결정을 했어도 우리가 쉽게 낙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임신중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필리핀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 후보자는 “필리핀에서는 산모가 낙태를 하러 오면 의사가 신고해서 다 잡혀가고 징역형을 받는다”면서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해서 도망친 후 낳은 코피노들이 많은데, (낙태할) 방법이 없으니까 코피노를 낳아도 사회가 그 아이를 관용적으로 받아들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같으면 외국 사람이랑 잘못된 아이를 낳으면 버리거나 입양을 하거나 낙태를 할 텐데 필리핀은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강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한 것”이라며 “임신을 원치 않지만, 예를 들어서 너무 가난하거나 남자가 도망갔거나 강간을 당한 경우라도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 사회적·경제적 지원 이전에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왜 싱글인 주제에, 강간당한 주제에 아이를 낳냐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보니 아이를 낙태하거나 버리거나 입양시키고, 그래서 한국에서 입양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플랫]낙태죄 헌법불합치 ‘입법 공백’ 속 방치된 ‘임신중지 건강권’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2년에서 6년 사이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임신중지 수술을 하거나 지원한 의사와 간호사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러한 엄격한 낙태죄는 필리핀 여성들을 위험한 불법 임신중지 수술로 내몬다. 필리핀 ‘안전한 낙태 옹호 네트워크’(PINSAN)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매년 126만 건의 불법 낙태가 이뤄진다. 매년 1000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이 제도 밖 임신중지 수술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한다. 필리핀의 헌법기관인 필리핀인권위원회(PCHR)은 지난 1월 “낙태권과 신체자율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낙태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 15일 인사청문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는 도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여성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포장 뒤로 감춰진 낙태의 현주소를 여쭙고 싶다”며 “경제적 능력이 안 되거나 미혼 부모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 청소년 임신 등 어쩔 수 없이 낙태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넣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독교 신자인 김 후보자는 과거 한 교회에서 간증하며 “아이의 낙태권은 엄마인 저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회개했다”고 한 적도 있다.

📌[플랫]김행 여가부장관 내정자, 여가부 폐지 “드라마틱하게 엑시트(exit) 하겠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종결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경향신문은 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김 후보자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김 후보자는 전날 자신에 대한 의혹·검증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며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그는 “소셜뉴스(위키트리)는 굉장히 작은 회사임에도 확인되지 않은 기사가 나가지 않게 하고 있다”며 “청문회 때까지 어떤 의혹보도도 중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 이두리 기자 redo@khan.kr

플랫팀 기자 fla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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