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서 시작한 파리바게뜨…이제는 빵이 혐오스러워”
파리바게뜨 제빵노동자 20명에게 물어보니
“청년·여성노동자 갈아서 만든 빵”…입 모아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쇼케이스랑 매대에 있는 빵 보면 되게 혐오스럽다.”
14년 전, 파리바게뜨의 신입 여성 제빵기사 A씨에게 퇴사를 앞둔 선임 제빵기사가 말했다. A씨가 이유를 묻자 선임은 말을 이었다.
“내가 내 시간이랑 바꿔서 이 직업을 했는데 내 가족들한테 잘하진 않았어.” 선임은 출근일에 대체 근무자를 구하지 못해 부모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고 했다. “진짜 거짓말 안 하고 빵 보면 내 행복이랑 바뀐 것 같아. 너무 혐오스러워.”
A씨는 이제 어느덧 14년 차가 됐다. 과거 울면서 퇴사한 그 선임과 같은 경력이다. A씨는 “그때는 이해를 못했는데 제가 지금 그러더라”라며 “내가 이거 왜 하고 있지 하는 마음이 들 때 잡아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런 사람들도 다 나갔다”고 했다.
박선영 중앙대 중앙사회학연구소 연구원은 20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프랜차이즈 베이커리 제빵기사 실태조사 토론회’에 참석해 이 같은 내용이 담긴 노동실태 보고서를 발표했다. 토론회는 한국여성노동자회와 파리바게뜨힘내라공동행동, 윤미향 무소속 의원,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주최했다.
박 연구원은 파리바게뜨 노동자 20명을 대상으로 구술 인터뷰를 진행했다. 경력은 1년 차부터 17년 차까지 다양하다. 19명이 여성이고 1명은 남성이다. 남성 직원은 현재 퇴사했다.
박 연구원이 만난 제빵기사들은 ‘청년 여성 노동자를 갈아서 빵을 만든다’고 입을 모았다. 8년차 B씨는 “(나는) 요식업 경력도 있고 요리를 오래 했으니까 손도 되게 빠른 편인데, (내가) 혼자 할 수 있는 양이 아닌데 1명에게 시킨다”고 했다.
제빵기사들은 매일 9시간 안에 50~100종 정도의 빵을 400~900개 만들어야 했다. 항상 시간이 촉박하지만 점주들이 추가연장수당을 주기 싫어하기에 연장노동을 신청하기도 어렵다. 어떻게든 정해진 근무시간 안에 물량을 처리하거나, 알음알음 짧은 무급 추가노동을 한다고 했다.
인터뷰에 참여한 모든 제빵기사는 ‘아파도 쉬기가 어렵다’고 했다. 제빵기사 C씨는 “다리를 다쳐 반깁스했는데, 지원기사가 없어서 끝날 때까지 울면서 일을 했다”고 했다. 17년 차 제빵기사 D씨(A)는 “2017년에 한 기사가 근무 중에 유산했다”며 “하혈을 했는데, ‘사람 구할 테니 기다리라’고 해서 3시간을 매장에서 대기하며 일하다가 유산했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본사-매장의 도급구조가 ‘최소 인력 최대 노동’을 조장한다고 봤다. SPC그룹은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을 파견 형태로 사용해 왔다. 2017년 고용노동부로부터 불법파견 판정을 받은 뒤에는 자회사 ‘PB파트너스’를 설립해 제빵사들을 직고용했다. 가맹점주들은 제빵기사들을 배정받으며 PB파트너스에 도급비를 낸다. 박 연구원은 자회사가 설립된 후 새로운 운영·관리시스템이 작동해 도급비가 1.5~2배 증가했다고 했다. 비용이 오른 만큼 점주들이 제빵기사들에게 과도한 노동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제빵 업계가 여성 집약적 산업이 된 건 저임금·과로 등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라고 박 연구원은 분석했다. 파리바게뜨의 제빵기사 중 70~80%가 여성이다. 처음에는 남성 제빵기사들이 더 많았는데, 파리바게뜨가 협력사를 통해 제빵기사를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건이 열악해지자 남성 노동자들이 나가고 여성 노동자 비중이 늘었다. 박 연구원은 “남성들이 나간 열악한 일자리를 여성들이 채워가며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는 여초 사업장이 돼 갔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노동법 위반에 대한 엄격한 근로감독, 정확한 생산시간을 반영한 인력배치기준 마련 및 생산공간 설계가 필요하다”며 “탄압이 아닌 소통과 협력의 노사관계가 필요하다”고 했다.
SPC그룹의 노조 탄압과 부당노동행위에 항의하며 53일간 단식농성을 했던 임종린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파리바게뜨 지회장은 “회사는 ‘전체의 이슈가 아니다’라고 말할 게 뻔하지만, 단 한 사람이라도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면 그건 당연히 개선해야만 하는 것”이라며 “회사는 토론 내용을 경청하고 노동자들과 성실히 대화하길 바란다”고 했다.
조해람 기자 lenn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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