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일해도 어제 입사자와 같은 급여, 면담 요구에 돌아온 건 '수갑'

2023. 9. 20.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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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현장기록 프로젝트 ①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생애 첫 투쟁기

[이혜정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다수인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는 투쟁으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투쟁하지 않으면 고용불안, 저임금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비정규직이라는 위치 때문에 그렇습니다. 서울지부에는 여성노동자가 대다수인 사업장이 많습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겪는 차별 속에는 성별과 연령의 문제도 개입되어 있습니다.

서울지부는 이러한 구조적 문제들을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로 담아내고자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와, 연대하는 학생들의 목소리, 각자의 고민과 실천 내용, 또 노동자 투쟁의 경험이 삶 속에서 어떻게 자리하고 있는지까지 조금 더 깊은 이야기들을 듣고, 나누려 합니다. 공공운수노조의 기고를 통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삶을 들여다봅니다. 편집자

난생 처음 수갑을 찼다. 드라마나 영화 속 소품이 아닌, 실물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서늘하고 단단한 것이 양 손목에 채워졌다. 양 손을 구속했을 뿐인데 서늘하고 단단한 바닥에 내동댕이쳐진 것처럼 선명한 모욕감이 차올랐다.

경찰들이 데려간 정형외과는 학원이 많은 건물에 있었다. 하교 시간이라 엘리베이터는 학생들로 만원이었다. 묵직한 수갑에 손목 뼈가 쓸리고 아파 가슴 쪽으로 양 손을 올리자 옆에 서 있던 학생의 몸에 닿았다. 수갑의 체인이 "절그럭" 하는 소리를 냈다. 순간 얼굴이 뜨거워졌다.

병원 대기실에는 내원인들이 앉아있었다. 경찰은 갑자기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수갑을 풀어주겠다고 했다. 수갑 가리개를 벗기자 은색의 수갑이 드러나보였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큰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함께 치료를 받은 동료는 물리치료실에서 내내 울음을 삼켰다고 했다. 온몸에 깁스와 부목을 댄 채로, 동료와 "(경찰서로) 돌아갈 때는 여자화장실에서 수갑을 채워달라고 하자"며 귓속말을 나누었다.

그런데 수갑을 차지 않고서는 병원을 갈 수 없다던 경찰은, 규정상 그래야만 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하던 경찰은 경찰서로 돌아가는 길에 수갑을 다시 채우지 않았다. 동행했던 경찰들은 한참 앞장서 걸었다. 다리를 절뚝이느라 속도를 낼 수 없어 경찰들과 거리가 벌어지나 싶어 잰 걸음으로 걸어도 따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우리가 도주의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지 않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수갑은 대체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던 것인가. 선경(가명)씨는 이 일련의 상황들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9월 13일, 양천구청에서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던 양천문화재단 소속 사서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이혜정

인권을 짓밟는 '인권 경찰', 대화 요구 차단하는 '열린 구청'

선경씨는 6년 차 도서관 사서노동자다. 양천문화재단 소속 사서로 일한 지는 3년 됐다. 웬만하면 하고 싶은 말은 삼키는 성격이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없어도 사과하는 일이 많았다. 선경씨의 삽십 평생은 특별히 내세울 건 없지만 남에게 폐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한 삶이었다. 유치장에서 잠을 자리라고는, 수갑을 차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도 양천구청장을 면담하기 위해 단 15분도 채 되지 않는 시간 동안 구청에서 앉아있었던 것만으로 이런 일들을 겪을 줄은 몰랐다.

처음으로 낸 목소리였다. '옳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했다. "명절 수당은 원래 없다"는 것이, "장기근속수당은 못 준다"는 것이 '차별'이라는 것을, '착취'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선경씨와 동료들은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재단에, 그리고 구청에 "왜?"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

"우리 이야기를 전혀 들어주지 않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어요."

단지 구청장 면담을 하게 해달라는 것이었기에, 경찰들이 "못 나가게 막아!"라고 외치며 한꺼번에 달려들 때 영문을 알지 못했다. '열린 구청'이라고 홍보하는 양천구청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여성 경찰들이 연좌하고 있던 6명의 여성 사서노동자들을 에워쌌고, 그 바깥은 방패를 든 남성 경찰들이 한 겹 더 에워쌌다. 외딴 섬처럼 그들은 순식간에 외부로부터 고립되어버렸다.

"우리가 외치는 소리를 다른 사람들이 못 듣게 하려고 그랬는지, 남성 경찰들이 방패로 바닥을 쾅쾅 내려쳤어요.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꼭 붙어 앉아있던 서로의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였어요."

방패 소리에 온 몸이 웅웅 울렸다. 시야도 전혀 확보되지 않은 공간 속에서 여섯은 서로를 붙든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반 평도 안 되는 공간이 혼란과 공포로 가득 찼다. 순간 경찰의 다리 하나가 쑥 들어와 선경씨 무릎을 밟았다. "발로 밟지 마세요!"라고 계속 소리쳤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앞에 있는 경찰이 무릎을 밟은 채로 뒤에 있는 경찰들이 선경씨의 양 팔과 손목을 붙들고 끌어냈다. 엄청난 힘으로 무릎이 눌리면서 날카로운 통증이 퍼졌다. 양 발이 허공에 뜬 순간 통증이 심한 다리는 힘이 들어가지 않아 바닥에 축 쳐졌다. 신발 앞코가 바닥에 쓸리면서 말 그대로 질질 끌려나갔다.

"통증도 심했지만, 무엇보다 상의가 가슴 쪽까지 올라간 상황이었어요. 마음이 급해서 "옷 좀 내려주세요!"라고 소리를 질렀는데 그 상태로 끌어내더라고요."

사람들도 많은 공간에서 경찰이 캠코더로 이 장면을 촬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성적 불쾌감이 밀려왔다. 옷을 내리려고 본능적으로 사지를 허우적거렸지만 소용없었다. 후문 밖으로 나와서야 경찰은 선경씨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호송차로 이동해 양천경찰서에서 내리는 순간,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지 않으려고 선경씨는 무심코 오른손을 들어 머리를 가렸다. 그랬더니 경찰이 손을 내리라고 하면서 강제로 선경씨의 손을 잡아 아래로 끌어내렸다. 선경씨의 왼손목은 단단히 경찰에 붙들린 채였다. 경찰은 선경씨의 온몸이 구속되어 있다는 것을 매 순간 확인시켰다. 선경씨는 심한 무력감을 느꼈다.

있다는 법들은 애써 지키려 노력해왔는데, 그 날 경찰이 이야기하는 '법'은, '규정'은 선경씨가 알던 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목소리를 내게 된 과정에도, 그 목소리가 묵살당한 시간들에도, 이 기막힌 폭력들에도 선경씨가 평생을 믿고 살아온 '상식'조차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진 양천경찰서 앞에는 "인권이 최우선 가치"라고 적힌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9월 13일, 양천구청에서 구청장 면담을 요구하던 양천문화재단 소속 사서노동자들이 경찰에 의해 연행되고 있다. ⓒ이혜정

9월 13일, 사서노동자들이 양천구청으로 간 이유

9월 13일, 양천구청 1층 로비에서 노동자 9명이 구청장 면담을 요구했다. 양천구는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인사, 보수, 정원 등 사실상 노동조건에 대한 거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은 작년 노동조합을 만들고 1년 반 동안 양천문화재단으로부터 "재단은 구청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양천구청장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0년을 일해도 기본급은 최저임금 수준이고, 장기근속수당이 없어 어제 입사한 이와 10년을 일한 이가 급여가 같은 이 기막힌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다. 더 이상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이 도서관에서 저 도서관으로 떠돌며 불안정하게 일하고 싶지 않았다.

2019년 '서울시 공공도서관 위탁 및 고용실태조사'에 따르면 설문조사 응답자 중 3분의 2 이상이 여성(81.5%)였고, 20-30대 응답자가 전체 72.4%에 달했다. 서울시 사서노동자의 대다수는 20-30대 여성노동자라는 이야기다. 여성이 다수인 다른 직군들과 마찬가지로 도서관 사서직군 역시 공교롭게도 임금은 최저임금에 맞춰져 있었다.

▲9월 13일, 양천구청 앞에서 양천문화재단 소속 사서노동자들이 양천구청장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이혜정

당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사서노동자들은 저임금뿐만 아니라 고용불안에도 시달리고 있었다. 2019년 기준으로 민간위탁 사서 초임 기본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직의 주요 원인이 바로 이 고질적인 '저임금'이었다. 사서노동자가 겪는 인권침해와 부당대우는 더욱 심각했다. 2019년 실태조사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듯이, 사서노동자들에게는 화장실 청소라거나 주차 업무 등 본인 업무 이외의 다른 부가적인 일의 수행(60.1%)이나, 업무와 관련없는 재단 및 법인 행사나 프로그램 참여(45%)가 강요되고 있다. 또한 이용자들로부터 경험하는 성희롱, 폭언 등의 감정노동도 심각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모든 문제들 한가운데에서,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이 진짜 사장 양천구청에 요구한 것은 정말 소박한 것이었다. '2024년 명절상여금 기본급의 각 30%와 장기근속수당 신설(단, 지급시기는 추후 논의)'이 요구 내용의 전부다. 양천문화재단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 최하위 수준임에도 양천구청장은 노동자들의 이 소박한 요구조차 들어주지 못하겠다며 버티고 있는 것이다.

15분 간 구청 내에 앉아있던 9명이 퇴거불응죄?

양천문화재단 사서노동자들은 단 15분 만에 기습적으로 연행되었다. 바닥에 앉아있던 여성노동자 6명은 경찰이 한 사람씩 팔을 비틀고 발목을 짓밟아가며 연행하는 과정에서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퇴거명령에 불응했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단 15분 만에 일어난 일이며, 또한 소란스러운 와중이어서 퇴거 명령을 들을 수도, 들을 겨를도 없었다고 했다. 반복적으로 퇴거 명령을 하지도 않았을뿐더러, 할 겨를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토록 긴급하게 현행범 체포를 하기 위해서는 도망이나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야 한다. 면담 요구를 하던 노동자들에게는 전혀 해당되지 않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면담 요구를 목적으로 개방된 관공서를 들어가려다, 혹은 들어가 농성을 이어간 노동자들에 대해서도(서울고등법원 2023. 4. 6. 선고 2022노409 판결 등) 퇴거불응죄에 대해 연거푸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하물며 15분간 면담 요구를 한 노동자들에게 퇴거불응죄가 적용될 수 있겠는가?

경찰의 공권력 남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양천경찰서 정보과의 주선 및 양천구 행정지원국장의 추진으로 제안된 실무협의(교섭)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던 이성균 서울지부 지부장을 기습적으로 연행했다. 경찰은 단 6분 만에 3차까지 연거푸 해산명령을 내렸고, 해산명령 불이행으로 지부장을 연행한 것이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처럼, 지부장을 경찰이 주선한 교섭 자리로 이동케 해서 경찰이 현행범 체포하는 이 기막힌 상황을 어느 누가 납득할 수 있을까. 상황이 이럴 진데 경찰은 중한 범죄를 저지른 것 마냥 연행된 10명의 노동자들의 핸드폰마저 압수수색했다.

그리고, 연행 과정에서 경찰의 폭력에 의해 부상을 입은 노동자들에게 경찰은, 수갑을 차지 않고서는 병원을 갈 수 없다고 했다. 남에게 싫은 소리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살아온 6년차 사서노동자 선경씨가 수갑을 차게 된 이유다. 이 모든 일이 2023년 서울 한복판에서 일어났다.

▲9월 15일 11시, ‘면담 요구 노동자들 쫓아낸 양천구청, 교섭 나선 노조 지부장 연행한 양천경찰, 인권유린 노조탄압 규탄 긴급 기자회견’에서 노동, 법률, 시민사회 단위 참가자들이 규탄발언을 이어가고 있다. ⓒ이혜정

"우리도 인권이 있잖아요"

병원에서 경찰서로 돌아오는 길에 선경씨와 동료 미영(가명)씨는 서로 힘을 북돋기 위해 농담을 주고받았다. 모욕감과 무력감이 뒤범벅된 서로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그랬다.

"우리 물리치료 받고 나오니 걸음이 조금 빨라지지 않았어요?"

선경씨가 남은 기운을 짜내 조금 웃었는데, 갑자기 미영씨가 울음을 터뜨렸다. 당황한 선경씨가 앞을 보니 바로 앞 경찰서 유리문 너머에서 미영씨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놀란 얼굴로 온몸에 깁스를 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그 장면이 잊혀지지가 않아요. 두 분이 문에 바짝 붙어서서 충격을 받은 얼굴로 미영 선생님을 바라보고 계셨거든요. 그 얼굴만 떠올리면 눈물이 나요."

미영씨의 부모님 뒤에는 선경씨의 부모님들도 놀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 서로를 다독일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유치장으로 들어가는 길에 "우리 선경이 아니야? 선경이 몸이 왜 저래?"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선경씨와 미영씨가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는데, 경찰이 이야기했다.

"돌아보지 마세요. 말 걸지 마세요. 들어가세요."

도대체 우리가 무얼 그리 잘못한 것일까. 내내 그 생각이 선경씨의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단 누구에게나 '열린 구청' 내에서 15분간 구청장 면담을 요구한 것이, 남들 다 받는 명절상여금을, 장기근속수당을 달라고 요구한 것이 이 모든 모욕과 폭력을 견뎌야 할 만큼 큰 죄인가.

48시간 동안 부상을 당한 몸으로 바닥이 딱딱한 유치장에 얇은 모포만 두르고 누워 있자니 통증은 더 심해졌다. 온 몸이 지쳐갔다. 눈만 감으면 한꺼번에 달려들던 경찰들의 다리며, 손 같은 것들이, 비명을 지르던 동료들이, 온 몸에 가해지던 폭력의 감각들이 생생하게 살아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가만히 누워 그저 '언제쯤 나갈 수 있을까'만 생각했다.

"우리도 인권이 있잖아요."

내내 담담하게 이야기하던 선경씨는, 그만 목이 메었다.

"미영 선생님의 부모님과 마주쳤던 그 장면은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아요."

'열린 구청', '열린 구청장실'을 홍보하는 양천구청은 노동자들의 15분간의 대화요구에 48시간 구금으로 답했다. 이 모든 과정 속에서 인권도 법치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9월 13일, 사서노동자의 손목에 채워진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 그리고 양천구청장이 반복해 강조하는 '법치'가 아닌, 선명한 탄압과 폭력이었다.

[이혜정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조직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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