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심층기획-‘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한국혈통 이어갈 어머니로만 조명
합법체류 엄마도 아이 등록 못하는 현실
―외국인 아동의 출생 등록 문제가 지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허오영숙 대표(허오)=출생 이후 양육의 과정에서 엄마에게만 책임이 전가되는 것은 외국인 미혼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제도가 그렇게 돼 있다. 상대가 외국인일 때 한국 남성은 생부로서 혼외자에 대해 할 수 있는 것이 없고 책임도 없다. 한국에선 외국인 관련 정책이 크게 ‘다문화정책’ ‘동포정책’ ‘외국인노동자정책’ 3가지로 구성되는데 이주여성은 다문화정책, 즉 혼인 관계 내에서 한국인 남성의 아이를 키울 어머니로서만 다뤄진다.
△이자스민 위원(이)=외국인 아동이 혼외자인 경우 생부와 생모, 그 누구도 호적에 올릴 수 없다. 한 베트남 출신 미혼모가 아이를 출생 등록하려고 고아원에 맡긴 일도 있었다. 고아원에 가면 출생 등록을 해주니까 엄마가 아기를 키우고 싶은데도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엄마의 체류 형태가 출생 등록에 영향을 줬다고 볼 수 있을까.
△허오=센터에서 지원한 사례에 비춰보면 합법 체류 상태인데 아이를 등록하지 못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물론 전체를 놓고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단순화할 수 없다는 말이다. ‘체류 자격이 그런 사람’이 ‘그런 일’을 벌이는 게 아니다. 현행 제도는 외국인 노동력을 생각할 때 남성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해 가족이 생길 수 있다는 걸 고려하지 않는다. 여성이 임신해서 출산할 수 있다는 상상을 아예 하지 않는다. 일례로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온 외국인 여성이 체류 기간이 남은 상태에서 한국인 남성과 사이에서 아이를 낳아도 출생 등록을 할 수 없다.
△허오=출생 등록을 하려면 생부의 친자 확인이 필요한 게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국의 가족관계등록법은 한국인이 포함돼야만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니까 혼인 관계에서 출생했으며 부모 중 한국인이 있어야 한다는 두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 전제에선 빈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국내 체류 외국인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해외 이주가 많아지고 있는 사회에서 한국의 폐쇄적인 제도는 문제가 있다. 아무런 공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외국인 미혼모가 아이를 출생 등록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것은 개인의 책임을 강요하는 행태다.
△이=외국인 관련 정책이 지나치게 보수적이다. 조금씩 문이 열리고 있긴 하지만 늦어지는 게 걱정이다. 그동안 외국인 아동은 계속 방치된다. 한국 사회는 유엔아동권리협약과 같은 원칙을 말해선 잘 바뀌지 않고 범죄와 같은 사회적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해야만 들어 준다. 이번에 외국인 아동 출생 등록 문제가 관심받게 된 것도 영아유기·살해 범죄 때문 아닌가.
―해법은 무엇인가.
△허오=외국인 등록이라도 자동으로 이뤄지게 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 6월 국회에서 통과된 출생 통보제는 아기가 태어나면 의료기관이 행정기관에 통보하는 식이다. 마찬가지로 의료기관이 외국인 아동을 출입국외국인청에 바로 통보해 등록되게 하는 것을 고려할 만 하다. 최소한 아이가 어떠한 사회적 존재로도 등록돼 있지 않은 ‘무등록’ 상태로 남겨지는 건 막을 수 있다. 나아가 한국의 여러 제도가 한국인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관점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국인 핏줄 중심의 관점’은 자꾸만 빈 공간을 만든다. 난민 2세로 씨름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한국 국적이 아니라고 대한씨름협회에 선수로 등록하지 못한 ‘김웬디 사건’ 역시 마찬가지다. 헌법의 주어가 ‘국민’으로 돼 있는데, 이를 ‘사람’으로 바꾸면 하위 법령에서도 외국인이라고 배제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이=최소한 임시 신생아번호라도 만들어야 한다고 본다. 외국인 아동을 행정 시스템 어딘가에 등록할 수 있도록 관리번호라도 부여하자는 것이다. 이마저도 기존의 틀을 깨야 하기 때문에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 그러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땜질하는 방식으로는 계속해서 사각지대를 만들 수밖에 없다.
[심층기획 - ‘예고된 비극’ 영아유기]
프롤로그 - 유령아빠, 불행의 씨앗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9604
①[단독] 애 아빠 없이 ‘나홀로 출산’… “극도의 패닉 상태서 범행”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0508352
②‘국가의 부재’ 속에 아기가 떠난 그날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2500544
③벼랑 끝 내몰려 ‘아이 버릴 결심’ 하기까지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00163
④아빠가 먼저 ‘두 사람’을 버렸다…부양 점수 5점 만점에 1.3점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3520264
⑤“엄마를 보호하는 게 영아 지키는 길”… ‘비정한 모정’ 다시 본 그 판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00252
⑥“주민등록 말소, 이사 등 온갖 꼼수”… ‘도망간 아빠’ 찾아 삼만리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897
⑦“책임 안 지면 빨간 줄…‘히트앤드런 방지법’, 왜 안 생기나요?”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5513915
⑧외국인 미혼모와 ‘무등록’ 아동…“아이 성년 되면 생이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19510570
⑨“가부장적 체류 제도가 ‘투명 아동’ 양산…핏줄·혼인 중심 틀 깨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0203
⑩‘살아남은 유기 영아’ 이야기…원가정도, 새 가정도 없다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0512263
⑪“누구에게도 기댈 생각을 못해요”… ‘버팀목’ 없이 고립되는 청년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02617
⑫[좌담회] “예기치 않은 임신은 재난상황…생부에게 더 책임 물어야”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2513086
에필로그 - 이중잣대에 지친, 미혼모들의 속마음
https://www.segye.com/newsView/20230924502371
윤준호 기자 sherpa@segye.com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3개월 시한부' 암투병 고백한 오은영의 대장암...원인과 예방법은? [건강+]
- “내 성별은 이제 여자” 女 탈의실도 맘대로 이용… 괜찮을까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속도위반 1만9651번+신호위반 1236번… ‘과태료 전국 1위’는 얼마 낼까 [수민이가 궁금해요]
- '발열·오한·근육통' 감기 아니었네… 일주일만에 459명 당한 '이 병' 확산
- “그만하십시오, 딸과 3살 차이밖에 안납니다”…공군서 또 성폭력 의혹
- “효림아, 집 줄테니까 힘들면 이혼해”…김수미 며느리 사랑 ‘먹먹’
- ‘女스태프 성폭행’ 강지환, 항소심 판결 뒤집혔다…“前소속사에 35억 지급하라”
- 사랑 나눈 후 바로 이불 빨래…여친 결벽증 때문에 고민이라는 남성의 사연
- "오피스 남편이 어때서"…男동료와 술·영화 즐긴 아내 '당당'
- 예비신랑과 성관계 2번 만에 성병 감염…“지금도 손이 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