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과학 학회들 "연구비 예산 삭감 철회하라" 집단 반발

최상국 2023. 9. 20.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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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과 집중' 정책은 연구다양성 훼손, '국제협력 대폭 강화' 에 우려
"연구자 서명운동 개시, 정부·국회 방문 등 활동 진행"

[아이뉴스24 최상국 기자] 국내 30개 기초과학 관련 학회가 모인 기초연구연합(회장 정옥상 부산대 교수)이 "내년도 기초연구사업 예산 삭감을 철회하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초연구연합(이하 '연합')은 "기초연구 예산의 삭감과 사업내역조정은 심각한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며 "삭감 철회 및 신중한 사업내역 조정, 기초연구비의 안정적 확보를 위한 제도 마련을 요청"했다.

정부는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 예산안을 올해보다 16.6%(3조 9천억원) 삭감해 국회에 제출했다. 이 중 기초연구사업 예산은 약 6%인 1537억원이 감액됐다.

연합은 "예산요구안 등 관련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초연구사업 예산 총액의 감소도 문제이지만 '선택과 집중', '국제협력 대폭 강화'라는 정부의 정책기조에 따른 사업내역 구조조정은 더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연합에 따르면 과기부와 교육부 소관의 개인기초연구사업은 연간 수천만원의 소액부터 7억원 이상의 우수연구과제까지 여러 단계로 구성돼 연구자들이 신진-중견-리더 연구자로 발전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사업으로 연구자들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내년 예산 사업내역을 보면 1억원 미만 연구과제에 대한 신규과제가 중단된다. 연합은 "이는 상당수 신진연구자들의 첫 계단이 무너짐을 의미하며, 연구비의 일시적 단절로 인해 임시로 의지할 계단이 필요한 중견연구자들의 연구 지속에도 상당한 타격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연합은 "특히 비전임연구자를 지원하던 (교육부의) 창의도전사업 신규지원이 중단돼 미래 연구인력 양성에 있어 심대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며 예산 삭감과 선택과 집중 정책으로 인해 총 과제 수가 줄어듦으로써 기초연구의 중요한 가치 중 하나인 연구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연구자 풀이 감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제협력사업이 광범위하게 추진되는 것에 대한 문제도 지적했다. 과기부의 집단기초연구사업인 '선도연구센터' 지원사업은 이번 예산안을 통해 '글로벌 선도연구센터'로 명칭이 변경되고, 개인과제의 경우에도 2억원이 넘는 신규중견과제에는 모두 '글로벌'이 붙었다.

연합은 "국가별 기술 패권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국제 공동연구에 있어서도 사업의 성격과 참여방식, 소요자원의 분담 문제, 연구결과에 대한 권리문제 등이 한층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충분히 준비되지 않고 성급하게 추진되는 국제협력사업은 우리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연구개발 예산의 낭비와 대한민국 과학기술 패권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연합은 "기초연구 예산의 삭감을 철회하고, 기초연구사업의 급속한 구조 조정을 재고할 것과 차제에 기초연구비의 안정적 확보를 담보할 수 있는 법적 제도를 마련할 것을 정부와 국회에 요청'한다면서, 성명서 발표 후 연구책임자, 박사후 과정, 대학원생을 위시한 일선 연구자들의 서명 작업을 진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기초연구연합은 국내 30개 기초관련 학회·협의회가 모인 협의체로 2017년에 만들어진 일선 과학자들의 모임이다. 이날 성명서 발표에서 27개 회원학회가 참여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이 9월15일 세종시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청사 앞에서 국가연구개발예산 삭감저지를 위한 총력결의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과기연대회의]

이하는 기초연구연합 성명서 전문

국가 연구개발 예산안이 전년 대비 16.6%, 3조 9천억원이 삭감되어 국회에 제출되었다. 기초연구사업도 삭감의 칼날을 피하지 못해 1,537억원 감액이 결정되었다. 이와 함께 예고된 급격한 구조 조정은 매우 심대한 부정적 영향이 우려되어 반드시 재고가 필요하다.

기초연구사업은 연간 수천만원의 소액부터 7 억 이상의 우수연구자 과제로 구성되어, 연구자들이 신진-중견-리더연구자로 발전하도록 정교하게 설계된 사업으로 연구자들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해왔다. 기초연구사업은 연구자들의 창의적 연구를 지원하는 경쟁적 지원체계로서, 타 연구사업들에 비해 연구비 대비 국제 논문, 특허출원, 기술료에서 우수한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R&D 효율성 또한 입증되었다. 이렇듯 대한민국 과학기술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사업에 예산 삭감과 급격한 구조조정이 단행된다면 다음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첫째, 1억원 미만 연구과제에 대한 신규지원이 중단된다. 소규모 실험실에서 이루어지는 연구 및 다양한 분야 연구자들의 연구가 단절되어 연구 생태계가 훼손될 것이다.

둘째, 비전임 연구자를 지원하던 창의도전사업의 신규지원이 중단된다. 미래 연구인력 및 역량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을 초래할 것이다.

셋째, 세계적으로 우수한 연구성과를 내고 있는 리더, 중견, 선도연구센터, 기초연구실 등 계속과제의 연구비가 10~40% 삭감된다. 연구성과와 연구 경쟁력의 감소가 불가피하다.

넷째, 국제협력사업(글로벌)이 주요기초연구 사업에 획일적으로 추진된다. R&D 예산의 낭비 및 대한민국 과학기술패권의 약화를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국내 기초과학학회 및 협의회의 연합체인 기초연구연합회는 회원 학회 및 소속 연구자들과 함께, 정부와 국회에 다음 사항을 요구한다.

하나. 기초연구사업 연구비 예산 삭감을 철회하라.

하나. 꾸준한 노력으로 구축되어 온 기초연구사업 포트폴리오의 급속한 변경을 재고하고 지속적 연구가 가능한 정책을 수립하라.

하나. 현장 연구자들의 목소리를 경청하여 기초연구비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한 법적 제도를 마련하라

2023년 9월 18일 기초연구연합

대한구강생물학회, 대한기초의학협의회, 대한기초치의학협의회, 대한면역학회, 대한생리학회, 대한약학회, 대한지질학회, 대한화학회, 생화학분자생물학회, 한국결정학회, 한국기상학회, 한국구조생물학회, 한국뇌신경과학회, 한국단백질학회, 한국동물분류학회, 한국미생물학회, 한국생물과학협회, 한국생물물리학회, 한국생명정보학회, 한국생태학회, 한국식물학회, 한국우주과학회, 한국유전학회, 한국조류학회, 한국유전체학회, 한국지구과학회, 한국통합생물학회.

/최상국 기자(skcho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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