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 대표' 마이클이 사직한 이유
김상민 변호사의 '스토리 노동법'
굴지의 글로벌 기업 임원 마이클(가명)은 어느 날 한국법인의 대표이사로 발령받았다. 한국이 처음인 마이클은 설레는 마음으로 첫 출근을 하여 주요 임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매출과 영업이익 등 재무 현황, 생산공장 운영 현황, 인력 운영 현황, 사업계획 등을 보고 받으면서 한국법인을 이끌어갈 청사진을 구상한다.
얼마 후 마이클 앞으로 노동청의 시정명령이 날아든다. 시정명령의 내용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을 위반했으니 이를 시정하는 차원에서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라는 것이었다. 아니 한국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법을 위반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깜짝 놀란 마이클이 직원들을 통해 알아보니 도급계약을 체결하여 협력업체에 업무를 맡겼는데, 한국에서는 도급계약을 체결하였더라도 그 실질을 파견법이 규율하는 근로자파견으로 보는 경우가 많고, 근로자파견이 금지되는 생산업무에 파견근로자를 사용하였으니 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마이클이 자문 변호사에게 문의하자, (i)시정명령을 이행하면 그것으로 사건은 종결되고, (ii)시정명령을 불이행하면 과태료 부과 → 과태료 미납 시 형사입건 및 대표이사는 피의자로 소환조사의 흐름으로 진행된다는 설명을 들었다. 대표이사가 되기 전에 도급계약이 체결되었고, 당연히 알 수 없었던 것인데 내가 왜 형사입건이 되느냐고 억울함을 호소하였지만, 한국에서 대표이사가 노동법 위반 혐의를 받을 때 잘 몰랐다고 항변해봐야 별로 의미가 없고 출국금지 안당하면 다행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이와 별도로 마이클에게 체불임금 혐의로 형사고소가 들어왔으니 노동청에 출석하라는 소환장이 전달된다. 최근 권고사직을 받아들여 사직한 직원에게 퇴직금이 일부 미지급되었다는 내용인데, 자초지종을 알아봤더니 퇴직금 지급을 담당하는 직원이 실수로 퇴직금 산정을 잘못하여 과소지급되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그리고 당초 진정으로 접수되어 시정명령이 내려왔고 회사는 시정명령을 이행하여 사건이 종결되는 줄 알았으나, 회사에 감정이 좋지 않았던 직원이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하여 형사입건이 되었기 때문에 대표이사에게 소환장이 날아온 것이었다. 마이클은 직원이 실수로 퇴직금을 과소산정한 것도 대표가 불려가 조사받고 형사책임을 지는 게 말이 되느냐고 호소하지만, 이미 그런 예가 있고 기소유예나 선고유예를 받는 게 최선이라는 말에 황당할 뿐이다.
숨 돌릴 틈도 없이 이번에는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이 문제된다. 마이클은 근로자참여법상 사업장에 노사협의회 설치 의무가 있고 분기마다 1회씩 개최를 해야한다는 것은 이미 보고받아 알고 있고, 법을 잘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았는데 법 위반이라니 이건 또 무슨 일인지 당황스럽다. 노동청에서 내린 시정명령의 내용은 이렇다. ‘근로자참여법상 노사협의회는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설치하여야 한다. 회사에 생산공장별로 노사협의회가 설치되어 있는데, 근로조건은 전사 단위로 결정되므로, 노사협의회는 전사단위로 설치되어야 하고, 전사 단위 노사협의회가 설치되어 있지 않아 법 위반이니 시정을 하라’는 것이다. 마이클은 전국에 여러 생산공장이 있고, 직원도 많아서 생산공장별로 노사협의회를 설치하는 것이 직원들의 목소리를 더 잘 듣고 경영에 더 반영되도록 하는 것이 법의 취지에도 부합하는 것이라고 주장해보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반응에 절망한다. 시정명령에 불응하면 형사입건 되는 것은 이미 파견법 사건에서 학습을 했기 때문에 시정명령을 이행하기로 결정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이번에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동조합법)이 문제다. 회사는 위탁계약을 체결하여 개인사업자들에게 영업을 위탁하였는데, 이분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라고 주장하면서 단체교섭을 요구하였고 마이클은 개인사업자가 어떻게 근로자가 될 수 있느냐며 단체교섭을 거절하였다. 그러자 단체교섭 거부의 부당노동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고소가 된 것이다. 마이클은 이러한 개인사업자들이 노동조합법상 근로자가 맞는지, 그래서 적법하게 노동조합을 구성할 수 있는지 따져보지도 않고 바로 형사입건되어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며 억울해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센 것이 하나 남았다. 중대재해처벌법이다. 수리업무를 하던 직원이 작업 중 사망하였는데, 원래 내일 해야 하는 일임에도 오늘 근처에 간 김에 스카이차도 부르지 않고 고소 작업을 하다가 추락한 사고이다. 고인에 대한 애도와는 별도로 누가 보더라도 개인 과실이 명백한 사건임에도 마이클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노동청, 검찰에 불려가 조사를 받는다.
마이클은 한국에서 대표이사를 하다가 노동법 위반으로 조사받느라 괴롭고, 형사처벌을 받아 고국에도 돌아가지 못할까 두려워하다가 결국 대표를 그만둔다.
이상의 마이클의 경험담은 가상의 이야기지만, 각각의 사건들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고 실제 있었던 일이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것 때문에 피의자로 입건되고 수사를 받는 것, 직원의 실수에 대해서도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너무 한 것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매사 형벌로 해결하려는 우리나라 노동법의 형벌 만능주의 때문에 일어난 일들로 법이 그러니 어쩔 수 없고, 수사기관을 탓할 수만도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워낙 비일비재해서 둔감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노동법은 외국인의 눈에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을까, 노동법은 속지주의 성격이 강하여 특수한 상황이 있다고 하지만 글로벌 스탠다드에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대표이사를 형사처벌한다고 겁을 주어 법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상책인지, 실제로 그렇게 하면 법을 잘 지킨다는 과학적 근거가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상민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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