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김행 “강간 당해 아이 낳아도 사회적 관용 있어야”

이두리 기자 2023. 9. 20.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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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위키트리 방송에서 주장
김행 측 “여성 자기결정권 부정 의미가 아니야”
김행 여성가복부 장관 내정자가 18일 서울 종로구 이마빌딩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2012년 위키트리 유튜브 방송에서 “낙태(임신중지)가 금지된 필리핀에서는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하고 도망쳐도 코피노(한국인 남성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다 낳는다”면서 “너무 가난하거나 강간을 당해 임신을 원치 않을 경우에도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tolerance·관용)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으로 20일 확인됐다. 가톨릭 국가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최대 6년의 징역형에 처한다. 김 후보자 측은 “여성이 자신의 제반 여건 하에서 출산 및 양육을 결정한 경우 그 결정과 모든 생명은 존중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언급했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자신이 창립한 온라인 뉴스 사이트 위키트리의 2012년 유튜브 방송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낙태죄’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한 직후 촬영된 방송에서 “여성단체가 (낙태죄 합헌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 이유는 헌재에서 합헌 결정을 했어도 우리가 쉽게 낙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며 임신중지가 엄격하게 금지된 필리핀의 사례를 소개했다.

김 후보자는 “필리핀에서는 산모가 낙태를 하러 오면 의사가 신고해서 다 잡혀가고 징역형을 받는다”면서 “한국인 남자들이 필리핀 여자를 취해서 도망친 후 낳은 코피노들이 많은데, (낙태할) 방법이 없으니까 코피노를 낳아도 사회가 그 아이를 관용적으로 받아들여 준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나라 같으면 외국 사람이랑 잘못된 아이를 낳으면 버리거나 입양을 하거나 낙태를 할 텐데 필리핀은 그러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 후보자는 “강제적으로 제도를 정비한 것”이라며 “임신을 원치 않지만, 예를 들어서 너무 가난하거나 남자가 도망갔거나 강간을 당한 경우라도 여자가 아이를 낳았을 때 사회적·경제적 지원 이전에 우리 모두가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톨러런스가 있으면 여자가 어떻게든 아이를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왜 싱글인 주제에, 강간당한 주제에 아이를 낳냐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보니 아이를 낙태하거나 버리거나 입양시키고, 그래서 한국에서 입양이 많은 것”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자는 당시 방송에서 “낙태죄 합헌 판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는데 하나는 여성계의 반발이고, 하나는 대부분 병원에서 낙태 수술을 해주고 있다는 점”이라며 “(낙태죄가) 현실과 너무 동떨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명을 가졌으니까 (태아가) 세상에 나와서 빛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 인권적 측면에서 중요하다”면서도 “그 반대편에서는 원치 않은 임신을 했을 경우 아이를 잉태한 여성의 인권은 무엇이냐(고 물을 수 있다)”며 낙태죄에 대한 ‘중립적’ 견해를 드러내기도 했다.

국민의 90% 이상이 가톨릭 신자인 필리핀에서는 임신중지 여성을 2년에서 6년 사이의 징역형에 처하고 있다. 임신중지 수술을 하거나 지원한 의사와 간호사 역시 처벌 대상이다. 이러한 엄격한 낙태죄는 필리핀 여성들을 위험한 불법 임신중지 수술로 내몬다. 필리핀 ‘안전한 낙태 옹호 네트워크’(PINSAN)의 2020년 연구에 따르면 필리핀에서는 매년 126만 건의 불법 낙태가 이뤄진다. 매년 1000명 이상의 필리핀 여성이 제도 밖 임신중지 수술의 합병증으로 인해 사망한다. 필리핀의 헌법기관인 필리핀인권위원회(PCHR)은 지난 1월 “낙태권과 신체자율권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낙태할 권리’를 지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김 후보자는 지난 15일 인사청문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는 도중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임신중단에 대한 후보자의 입장이 궁금하다’는 질문에 “여성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포장 뒤로 감춰진 낙태의 현주소를 여쭙고 싶다”며 “경제적 능력이 안 되거나 미혼 부모가 될지 모르는 두려움, 청소년 임신 등 어쩔 수 없이 낙태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낙태’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넣을 수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기독교 신자인 김 후보자는 과거 한 교회에서 간증하며 “아이의 낙태권은 엄마인 저에게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을 회개했다”고 한 적도 있다.

2019년 4월 헌법재판소는 형법상 임신중지를 전면 금지한 처벌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재는 당시 “임신한 여성이 임신 유지·종결을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선택한 인생관·사회관을 바탕으로 깊은 고민을 한 결과를 반영하는 전인적 결정”이라며 “태아가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임신 22주 내외에 도달하기 전이면서 여성이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보장되는 시기의 낙태에 대해서는 국가가 생명보호의 수단 및 정도를 달리 정할 수 있다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

경향신문은 김 후보자의 발언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김 후보자에게 수차례 연락했으나 닿지 않았다. 여성가족부 관계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건 10년 전 발언”이라며 “김 후보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한 것이 아니고 청소년 임신이나 미혼 임신의 경우, 사회적인 편견이나 비난 때문에 원치 않는 낙태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생명을 존중하는 출산이 이뤄질 수 있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취지였다고 말했다”이라고 설명했다.

김 후보자 인사청문회준비단은 설명자료를 내고 “과거 방송에서의 발언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부정하는 의미가 전혀 아니며, 낙태 자체의 찬반에 대해 본질적으로 다룬 내용도 아니다”며 “출산과 양육의 의지가 있음에도 경제적 어려움이나 사회적 편견 등을 이유로 생명을 포기하는 일이 없도록 함께 보듬고 키우는 사회적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고 전했다. 또한 “임신중절 관련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다만 모든 생명은 소중하므로 청소년이나 미혼모 등에 대해 국가적 책임을 강화해서 이들이 출산의 의지가 있음에도 사회적·경제적 요인으로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국가가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김 후보자는 전날 자신에 대한 의혹·검증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며 도어스테핑(출근길 문답)을 중단했다. 그는 “소셜뉴스(위키트리)는 굉장히 작은 회사임에도 확인되지 않은 기사가 나가지 않게 하고 있다”며 “청문회 때까지 어떤 의혹보도도 중지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김희서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내고 “김 후보자가 낙태금지에 대해 필리핀 정서의 필요성을 말한 사실이 드러났다”면서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여성 기본권 부정과 반헌법적 입장은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가장 결정적인 결격사유”라고 말했다.


☞ 김행 “임신중단,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뒤엔…” 사실상 반대?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151341001

이두리 기자 red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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