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허위사실 기재해 은행 계좌 만들어도 부실 심사했다면 업무방해 아냐”

대법원. 뉴시스.

예금거래신청서 등을 허위로 기재해 계좌를 만들었더라도 은행 직원이 개설 과정에서 부실하게 심사한 정황이 있다면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대법관 이동원)는 업무방해 및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 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업무방해 부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반면, 원심이 무죄로 본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부분은 인천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대법원은 "예금거래신청서 등에 금융거래의 목적, 접근매체의 양도 의사 유무에 관해 허위사실을 기재하였더라도, 금융기관 업무 담당자가 단순히 허위 답변만을 그대로 믿고 추가적인 확인조치 없이 계좌를 개설해 줬다면 업무방해가 아니다"고 판시했다. 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부분에 대해 대법원은 범죄 이용 수단인 걸 알면서도 접근 매체를 넘겼다면 실제 범행이 안 이뤄져도 래법 위반이라고 봤다. 대법원은 "범죄에 이용될 것을 알았는지는 행위 당시 피고인이 가지고 있던 주관적 인식을 기준으로 판단하면 된다"며 "거래 상대방이 접근 매체를 범죄에 이용할 의사가 있었는지, 실제 피고인이 인식한 범죄를 저질렀는지 고려할 필요는 없다"고 밝혔다.

A 씨는 성명 불상자 B 씨로부터 "주민등록증과 인감을 빌려주면 당신 명의로 법인을 세울 예정인데, 그 법인으로 계좌를 개설해 양도하면 매월 일정한 금액을 주겠다"고 제안을 받았다. A 씨는 제안을 수락했고 B 씨가 자신의 명의로 유령 법인을 설립하자 마치 정상 회사인 것처럼 가장하고 예금거래신청서 등을 허위 작성해 계좌를 설립했다. 이후 A 씨는 OTP 기기, 현금카드 등 접근 매체를 B 씨에게 전달하고 4회에 걸쳐 금품을 수수했다. 또 A 씨는 또 다른 성명 불상자 C 씨가 범죄에 사용하려는 것을 알면서도 현금카드, OTP 기기 등을 대여해 줬고, 또 다른 성명 불상자 D 씨에게서는 "타인 명의 체크 카드를 전달받아 넘겨주면 돈을 주겠다"는 제안을 받아 체크카드를 퀵 서비스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 같은 혐의로 기소된 A 씨에 대해 1심은 징역 1년 2개월을 선고했지만, 2심은 징역 1년으로 감경했다. 2심은 A 씨가 정상적인 회사를 운영하는 것처럼 꾸몄더라도 업무방해라 볼 수 없다고 봤다. 또 범죄에 사용될 것을 알면서도 타인 명의 체크카드 등 접근 매체를 전달했다는 공소 사실에 대해서도 A 씨가 보관한 체크카드는 경찰의 수사협조자가 대포통장 등 접근 매체 수거조직을 검거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것이라 실제 범죄에 직접 사용될 수 없었기 때문에 전자금융거래법 위반도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무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