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 예산삭감 사태에 '민영화 시작이냐' 우려까지
연합뉴스 단말기이용로 예산도 줄삭감…정부 기조 따라
[미디어오늘 김예리 기자]
“공영언론을 하지 말라는 것으로밖에 읽히지 않는다.”
정부가 공영방송 예산을 대거 삭감 편성한 가운데 연합뉴스를 상대로도 전례 없는 지원 축소에 나섰다.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원 예산 중 80%를 삭감 편성한 데다 국회·법원 등 정부 기관들이 별도로 편성하던 뉴스단말기 이용료 예산도 정부 방침에 따라 대거 삭감한 뒤 국회에 제출해 축소 폭이 더 커질 수 있다. 구성원들은 “공영언론 옥죄기를 넘어 언론으로서 역할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반응이다.
정부는 내년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원 예산으로 50억 원을 편성해 지난 1일 국회에 제출했다. 정부는 연합뉴스에 공적 역할 수행비용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문화체육관광부 미디어정책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올해 집행한 278억6000만 원에서 일부 공적 기능 비용 예산을 제외하고 대부분(82%)을 깎은 것이다.
정부는 문체부 예산 외에 연합뉴스에 단말기와 뉴스통신서비스 이용을 명목으로 지급하던 예산도 대거 삭감한 안을 제출했다. 연합뉴스는 정부 기관과 전국 지자체로부터 '단말기 이용료(뉴스통신서비스)' 명목으로 100억 원 가까운 예산을 지급받고 있다. 연합뉴스의 프리미엄 애플리케이션 서비스와 전용 단말기를 이용하는 비용이다.
230억으로 안 그칠 듯…
단말기 이용료도 속속 전액 삭감한 정부기관들
정부기관 가운데 현재까지 대외적으로 확인된 단말기 이용료 삭감 편성 규모는 총 32억 4100만 원이다. 헌법기관인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중앙과 시도 선관위가 집행하던 연합뉴스 단말기 이용료를 올해 총 9억1200만 원에서 내년 0원으로 전액 삭감했다고 밝혔다. 국회 사무처도 같은 항목으로 지출하던 10억3300만 원을 전액 삭감한 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법원행정처도 행정처와 전국 각급 법원에 편성하던 관련 예산안을 올해 12억9600만 원에서 전액 삭감해 편성했다고 밝혔다. 이들 중 다수 기관의 예산안이 기획재정부 검토를 거치며 전액 삭감으로 바뀌었다.
연합뉴스 내에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역할에 근본 의문을 제기하는 삭감폭'이라는 반응이다. 연합은 연합뉴스 지원금을 해외특파원과 외국어뉴스서비스 등 국가기간뉴스통신사의 공적 기능에 드는 비용으로 사용해왔다. 단말기 이용료를 포함해 정부가 연합뉴스에 지급하는 예산은 연합뉴스 매출(지난해 기준 1828억여원) 가운데 25~30%를 차지한다.
정부 완강한 삭감기조, 지자체·기업까지 미치나
정부의 다른 공영방송 예산도 대거 삭감된 데다 연합뉴스의 경우 전 부처와 유관기관에 걸쳐 대대적 삭감 편성이 이뤄진 점을 보면, 국회 예산 심의 과정에서 복원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중앙행정기관 외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기업들도 총 70억 원 안팎의 예산을 지급하고 있는데 이들 가운데서도 다수가 정부여당 기조를 따라 해당 항목 예산을 대거 삭감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성 사장은 지난 4일 “대규모 삭감안은 뉴스통신진흥법 제정 취지에 부합하지 않고,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 의무와 역할 수행 자체를 어렵게 한다”며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성 사장은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예산을 바탕으로 60여명의 해외 취재망과 6개 외국어뉴스를 서비스하는 90여명의 취재망을 구축”하고 있다며 “중앙과 지방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150여명의 전국적인 취재 인프라, 재난뉴스통신의 기능, 750만 재외 한인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재외동포 전담 취재조직을 운영하는 것도 법에서 부여한 (연합뉴스의) 공적 기능”이라고 했다.
“국가기간통신사 지위 흔드나, 민영화 우려도”
A기자는 “이 정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정부가 공영언론 (역할)에 대한 개념이 없다. (내년 삭감 폭은) 연합이 구조조정으로 공영언론이 하는 서비스를 자체적으로 손보는 수준이 아니다. 공영언론 서비스 자체를 계속 하느냐, 마느냐를 논해야 할 수준”이라고 했다.
이 기자는 정부 의도에 관해 “다른 방송사들에 하듯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뉴스통신진흥회 이사장이나 연합뉴스 사장에게 나가라는 뜻을 알리는 의도로 보이지 않는다”며 “사장을 교체하려고 한다면 (다른 방법이) 오히려 쉬울 것이고 이런 식으로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일각에선 국가기간통신사 제도 자체를 흔드는 '민영화'의 시작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하고 있다. 연합뉴스 소유 구조는 뉴스통신진흥법에 근거를 둔 연합뉴스 경영감독기구 뉴스통신진흥회가 전체 주식의 30.8%(최대 주주)를 가지고 있다. 이어 KBS가 27.8%, MBC가 22.3%, 전국 일간지 등으로 구성된 기타 주주가 19.2%를 보유하고 있다.
B기자는 “일각에서는 연합뉴스가 이참에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지위를 포기하고 언론사업 시장에 뛰어들자는 주장도 만만찮다”며 “(예산 삭감에 힘 입어) 그런 우려가 나중에 경영진 교체 시기에 현실화하지 않을까. 정부 예산 편성과 대통령실 결정이 결국 언론 생태계마저 흔들어버리는 효과를 정부는 뼈아프게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희망퇴직·비정규직 감축
개편서 외국어뉴스·북한뉴스 축소
연합뉴스 경영진은 전례 없는 전방위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연합뉴스가 해온 주요 공적 기능 사업을 축소하는 방향이다. 사내 비정규직·프리랜서 고용을 '정리'하고 특히 공적 기능에 속하는 특파원을 계약이 만료되는 대로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현지 프리랜서와 계약하던 통신원 제도도 감축하고 있다. 외국어뉴스서비스도 축소하겠다고 밝혔다. 연합뉴스는 지난 14일 만 55세 이상으로 임금피크제 적용 사원들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는 지난 18일자로 기능 축소를 골자로 하는 조직개편안을 시행했다. 사장 직속 미디어전략홍보부와 비서팀, ERP팀을 폐지하고 관련 기능을 기획조정부와 인사교육부, 총무부로 옮겼다.
편집총국에선 국가기간뉴스통신사 기능이던 한반도뉴스와 외국어뉴스 서비스를 축소한다. 한반도뉴스본부장직을 폐지하고 정치 부국장 산하로 옮겼다. 북한콘텐츠팀을 폐지하고 북한뉴스모니터링팀이 관련 업무를 대신하기로 했다. 영문외교안보부를 영문뉴스부로 통폐합, 중국어뉴스팀·일본어뉴스팀·아랍어뉴스팀·스페인어뉴스팀·프랑스어뉴스팀을 폐지하고 이를 신설 다국어뉴스부로 통합했다. 디지털 콘텐츠취재팀과 영상뱅크, 팩트체크&이슈부도 폐지한다.
성기홍 사장이 선제적 구조조정에 나서기 앞서 경영 현황과 전망을 구성원과 투명하게 공유하는 것이 순서라는 지적도 나온다. C 기자는 “회사는 한 번도 삭감 금액을 정확한 숫자로 밝힌 적이 없다. 두루뭉술하게 '229억 원, 최대 300억 원까지 이를 수 있다'는 식으로 얘기해왔다. 연합뉴스에서 300억 원의 매출이 날아가면 (회사 경영이) 완전히 날아가는 셈인데, 구성원들에게 공유하는 것이 먼저 아닌가. 상황이 왜 이렇게 돌아가는지 답답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구성원은 경영진이 우선 국가기간통신사의 공적 기능을 강조하는 적극적인 대정부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B 기자는 “연합뉴스가 수행하는 공적 기능은 특정 미디어기업이 아니라 한국 언론 전체가 공유하는 자산이다. 그런데 이런 방향의 이야기보다는 회사 자체 존립에만 집중해 논의가 좁아진 것 같다”며 “추후 국가기간통신사 지위에 관한 논의를 심각하게 해야 할 필요가 생길 수 있다. 경영진이 선제적으로 공영언론에 확고한 의지를 보여야 하는데 아쉽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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