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검찰·방통위·대통령실 '총동원'된 KBS사장 해임 '작전'

노지민 기자 2023. 9. 20.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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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위 수사가 KBS 이사 해임으로…용산발 수신료 옥죄기
여권 과반 KBS 이사회, '속전속결' 해임제청…근거는 '허술'

[미디어오늘 노지민 기자]

윤석열 정부에서 첫 공영방송 사장이 해임되기까지의 과정은 공영방송 이사회의 독립성, 공영방송 재원 근간에 대해 쌓여온 법적 판단과 사회적 합의가 무너지는 순간들의 연속이었다. 길게는 1년 3개월, 짧게는 3주에 걸쳐 벌어진 KBS 사장 해임 사태는 잘못된 관행이 적당한 선의에 기대어 유지될 수 없다는 교훈을 남겼다.

방통위 수사가 KBS 이사 해임으로…용산발 수신료 옥죄기

현 정부 들어 처음 KBS 사장 해임 시도로 간주된 사건은 윤석열 정부 한 달 차였던 지난해 6월, KBS 내의 소수노조와 보수성향 단체들이 제기한 국민감사 청구였다. 과거 감사원이 2008년 뉴라이트 계열 단체들의 국민감사 청구에 따라 특별감사를, 2017년 KBS노조가 청구한 KBS 이사진 법인카드 사적 사용 의혹에 대한 감사를 진행한 결과가 정연주·고대영 전 사장 해임으로 이어진 전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의철 사장 임명과정, 신사옥 신축 계획 중단 등 5가지 사유에 대한 감사는 '청구 항목에 대한 중대 위법이 없다'는 결론으로 지난 5월 마무리됐다. 세 차례 감사 기간을 연장한 끝에 9개월 만에 나온 결과였다. 감사원은 후보자 결격사유(정당가입 여부) 확인 절차를 마련하고, 계열사(몬스터유니온) 관리를 적정하게 하라는 등 감사항목 외 사안들에 대한 통보, 주의를 권고하는 데 그쳤다.

▲감사원 ⓒ연합뉴스
▲방송통신위원회. 사진=미디어오늘

대신 방송통신위원회 감사 결과가 KBS 이사회 구도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방통위 감사를 진행하던 감사원이 지난해 9월,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당시 점수조작 의혹이 있다며 이를 검찰에 넘기면서다.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는 3년 전 재승인 심사위원장이었던 윤석년 KBS 이사를 올해 3월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이 사건으로 KBS 이사 추천권이 있는 방통위원장(당시 한상혁)이 5월 말 면직되었고, 여권 방통위원 2인의 해임제청과 윤석열 대통령 재가로 7월 윤 이사가 해임됐다. 윤 이사는 즉시 해임처분 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김 사장이 해임된 지난 12일에야 기각 결정을 냈다.

윤석년 이사가 해임된 다음날부터는 남영진 이사장 해임이 추진됐다. 7월13일 KBS노동조합이 국민권익위원회에 남영진 이사장의 법인카드 비위 의혹(청탁금지법 위반 혐의)을 고발했다. 방통위는 약 한 달 뒤인 8월14일 남 이사장이 KBS 경영 관리감독 의무를 해태하고 권익위 조사를 받아 KBS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이유 등으로 윤 대통령에게 해임을 건의했다. 두 야권 이사 해임, 이후 이어진 여권 보궐이사 선임은 여야 4대7이었던 KBS 이사회 구도를 6대5로 반전시켰다.

▲ 김의철 전 KBS 사장 해임 관련 일지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전례 없이 '불가역적인' KBS 흔들기에 나섰다. 역대 정치권이 KBS 압박 수단처럼 꺼내들었던 TV수신료 분리징수를 대통령실이 직접 여론재판에 올렸다. 대통령실은 전기요금과 통합해 걷어온 수신료를 분리해 걷는 방안을 온라인 설문(국민참여토론)에 올렸고, 댓글과 추천 수를 근거로 분리징수를 위한 시행령 개정을 방통위 등 관계부처에 권고했다. 야당이 과반인 국회에서 통과가 어려운 방송법 개정 대신, 관계부처와 국무회의만 거치면 되는 하위법령(시행령) 개정에 나선 것이다.

연간 수입의 45%가량 차지하는 수신료가 흔들리며 증폭된 KBS 내부의 위기감은 김의철 사장 리더십을 급속히 약화시켰다. 소속 노조를 막론한 구성원들이 퇴진을 요구했던 고대영 사장과는 달랐지만, 정연주 전 사장 때처럼 해임을 강하게 막아서는 움직임도 없었다. KBS PD협회 회원 65%, KBS 기자협회 회원 47.4%가 자체 설문조사에서 김 사장이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답했다. 사장 해임 추진을 비판하는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도 김의철 사장이 무능하다는 평가를 덧붙였다.

▲2023년 6월8일 서울 영등포구 KBS 아트홀에서 김의철 KBS 사장이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KBS

여권 과반 KBS 이사회, '속전속결' 해임제청…근거는 '허술'

KBS 이사회를 통한 사장 해임 절차는 지난 8월부터 본격화했다. 야권 이사들이 해임된 자리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추천했던 헌법재판관 출신 서기석 이사(8월10일), 대표적인 보수성향 언론학자 황근 이사(8월21일) 등이 보궐 이사로 임명됐다. 여권 이사들은 의결 정족수인 6명이 채워지자 서기석 이사를 신임 이사장으로 선임했다. 이후 여권 이사들이 주도한 해임제청안이 8월30일 이사회 의결 안건으로 상정됐다. 김의철 사장 해임은 지난 12일, 이사회가 여야 6대5로 재편된 지 3주 만에 이뤄졌다.

철저히 계획된 듯 진행된 이사회 재편, 해임제청 절차와 달리 해임 근거가 제시된 과정은 허술했다. 김 사장 해임제청에 반대했던 야권 이사들은 해임제청안이 의결되기 직전까지 김 사장 해임 사유가 늘었다 줄었다를 거듭했다며 “졸속과 주먹구구의 전형”이라 주장한 바 있다.

실제 여권 이사들이 김 사장 해임제청 사유로 내세운 항목은 28일 최초 제안 당시 △2년 연속 대규모 적자를 기록한 무능 방만 경영 △불공정 방송으로 인한 대국민 신뢰 상실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 및 무대책 일관 △직원 다수의 퇴진 요구로 인한 리더십 상실 등이었다.

이어 30일 안건 상정 땐 기존 네 가지 항목의 표현이 일부 수정되고 6가지 사유가 추가됐다. 추가된 항목은 △특정 노조 일색의 편향된 인사정책 일관 △고액연봉 상위 직급자 개선 대책 마련 미비 △이사회 보고 없이 부서장 임명 동의 대상을 확대하는 단체협약 체결 △취임 당시 공약 이행 극히 부진 △이사회를 무시한 고용안정위원회 설치 등 강행 △방송통신위원회 남영진 이사장 해임의 근본적 원인 제공 등이다.

▲여야 6대5로 재편된 KBS 이사회 전경. 사진=KBS
▲2023년 9월12일 서울 영등포구 KBS 본관 앞에서 KBS 야권 이사들이 여권 이사들의 김의철 사장 해임제청안 의결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미디어오늘

해임제청 사유가 10가지로 늘어나면서 이에 대한 이사들의 논의도 길어졌다. 애초 6일 해임제청 사유에 대해 토론하고 12일 김 사장 소명을 청취하기로 했던 이사회는, 6일에 이어 11일까지 비공개 임시 이사회에서 추가 토론을 이어갔다. 11일 이사회 논의가 이뤄진 뒤엔 여권 이사들이 추가된 항목 중 '남영진 이사장 해임의 근본적 원인 제공'을 자진 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로도 여권 이사들은 12일 오전 수정된 해임제청안을 제출, 이후로도 재수정안을 제출했다. 이미 11일 김 사장이 10가지 사유에 맞춰 소명서를 제출한 뒤에 해임제청 사유를 변경한 것이다. KBS 이사회가 최종적으로 밝힌 해임제청 사유는 △무능 방만 경영으로 인한 심각한 경영 위기 초래 △불공정 편파방송으로 인한 대국민 신뢰 상실 △수신료 분리징수 관련 직무유기와 리더십 상실 △편향된 인사로 인한 공적 책임 위반 △취임 당시 공약 불이행으로 인한 대내외 신뢰 상실 △법률과 규정에 위반된 임명동의 대상 확대 및 고용안정위원회 설치 등이다. 해임제청안 세부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한 KBS 야권 이사는 “(비공개 회의에서) 이것(수정안)으로 의결하면 사장은 소명이 추가로 필요하다, 방어권과 반론권을 보장하지 않은 상태로 의결하게 된다고 했었다”며 그럼에도 표결이 강행돼 퇴장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사도 “압축되고 합쳐지고 마지막 문항은 빠지는 식으로 졸속적으로 (해임제청안을) 만들었다”며 “재논의 시간을 갖자고 했는데 바뀐 게 없다는 논리였다”고 비공개 회의 당시 상황을 전했다.

변경과 수정을 거듭한 해임제청안이 공개되지 않는 문제도 지적되고 있다. 한 이사는 “해임사유 자체는 공개되어야 한다고 얘기를 했는데 비공개 범위에 그것도 포함된다고 해서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그와 관련해 표결을 하지는 않았다”고 설명했다. 결국 감사원·검찰·방통위 등 정부기관이 '총동원'된 끝에 문재인정부에서 임명된 KBS사장이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상황에서 해임됐다. 김 전 사장이 본인 해임처분에 대한 집행정지 가처분 및 취소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이사회는 20일 차기 사장 후보 임명제청 절차를 위한 안건을 상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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