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보금자리론 축소 파장…집 값 떨어지나?
특례보금자리론은 올해 금융시장의 대표적인 히트상품입니다.
지난 1월 말 상품 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7개월여 만에 대출 신청액이 1년 공급 한도의 90%를 넘어설 정도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최근 가계대출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서울 등에서의 아파트값 상승세가 꺾이지 않자 정부는 이달 27일부터 특례보금자리론 신청 자격을 강화해 대출 가능 대상을 축소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특례보금자리론을 비롯한 '과다 대출'이 최근 집값 상승의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됐다고 보고 대출 정책을 일부 규제 쪽으로 방향을 튼 것입니다.
특례보금자리론 축소가 상승세를 타던 주택 시장에 잔정제가 될 것인가?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해 금리 인상에 따른 극심한 거래 절벽이 지속되자 주택 구매나 대출 갈아타기가 필요한 실수요자를 위해 올해 1월 30일 정부가 출시한 정책 모기지 상품입니다.
9억 원 이하 주택을 대상으로 연 4%대의 금리로 최장 50년, 최대 5억 원까지 대출을 해줬습니다.
무주택자는 물론 1주택자도 신규로 집을 구매해 일시적 2주택자가 되는 경우 기존 주택을 3년 내 처분하면 대출이 가능합니다.
중도상환 수수료도 없습니다.
이 대출은 가장 큰 매력은 1억 원 초과 대출자에게 적용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40% 규제가 제외된다는 점입니다.
이 때문에 소득이 모자라도 대출 한도를 최대로 늘릴 수 있었습니다.
시중은행보다 낮은 금리까지 등에 업은 특례보금자리론은 출시 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초반에는 기존 대출 상환 목적의 대출이 많더니 급매물 거래가 증가한 3월부터는 주택구입 목적의 대출이 크게 늘었습니다.
한국주택금융공사(HF)에 따르면 특례보금자리론은 지난 8월말 기준 유효 신청금액이 총 35조4천107억 원으로, 출시 7개월 만에 목표금액(39조6천억 원)의 90%를 채웠습니다.
이중 신규 주택구입 목적으로 대출을 받은 경우는 전체의 61.1%인 21조6천395억 원, 신청 건수로는 전체(22만5천73건)의 58.4%인 총 12만2천801건에 달합니다.
현재 거래 신고 추이로 볼 때 아직 신고기한이 남은 8월 전국 주택 매매거래량은 7월(4만8천170건)보다는 많고 6월(5만2천592건)보다는 약간 줄어들 것으로 추정됩니다.
8월 거래량을 5만 건 정도로 추정하면 특례보금자리 판매 이후 2월부터 8월까지 전국의 주택 매매 거래량은 약 37만3천 건이며, 이 중 33%가 특례보금자리론을 이용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정부가 이달 27일부터 '주택가격 6억 원 이하, 부부 합산소득 1억 원 이하'의 우대형 상품은 놔두고 6억 원 초과∼9억 원 이하에 해당하는 일반형 상품은 판매를 중단하기로 한 것은 이처럼 특례보금자리론을 받아 집을 산 사람이 예상보다 많아져 집값 상승의 단초가 된다고 봤기 때문입니다.
실제 올해 아파트 거래시장은 기준금리 동결과 함께 특례보금자리론 효과를 톡톡히 누렸습니다.
지난해 2∼8월 8천129건이던 서울 아파트 거래량(서울부동산정보광장 기준)은 올해 같은 기간 2만3천56건으로 184% 증가했습니다.
한국부동산원 통계에서 연초 하락세가 짙던 서울 아파트값도 5월 넷째주부터 상승 전환해 지난주까지 17주 연속 올랐습니다.
특히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 지수는 규제지역을 대거 해제한 1·3대책으로 1월에 1.10% 오른 뒤 특례보금자리론이 본격적으로 판매된 2월에 올해 최고치인 2.14%가 상승하는 등 1∼7월 누적 11.17% 상승했습니다.
서울에서 시작한 상승세는 경기·인천을 넘어 현재 지방으로 확산하는 분위기마저 감지됩니다.
이자 부담을 덜어주고, 실수요자의 내집 마련을 도와 침체한 주택 거래를 살리려고 시작한 정책이 집값에 부담을 주는 하나의 요인이 된 것입니다.
다만 특례보금자리론은 아파트값이 높은 서울 아파트 시장에선 9억 원 이하 저가보다 9억∼15억 원 이하 중고가 거래 비중 확대에 더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다주택자에 대한 규제로 '똘똘한 한 채' 선호도가 높아진 가운데 특례보금자리론으로 늘어난 수요를 발판삼아 9억 원 이하의 집을 팔고, 주거지·주택형 상향에 나서 좀 더 비싼 아파트로 갈아타는 연쇄작용이 일어난 것입니다.
9억 원 이하 주택은 주로 생애최초 주택구입자나 대출에 여유가 생긴 2030세대가 흡수했습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신고된 서울 아파트 거래량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4분기 6억 원 이하 거래 비중은 46%에 달했고, 6억∼9억 원 이하가 21.3%로 9억 원 이하 거래 비중이 전체의 67.3%를 차지했습니다.
9억∼15억 원 이하 비중은 20.0%입니다.
그러나 특례보금자리론 대출이 시행된 올해 들어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올해 1분기 6억 원 이하 비중은 29.2%로 크게 감소한 반면, 6억∼9억 원 이하는 29.4%로 늘었습니다.
이후 급매물이 대부분 소진되고, 실거래 가격이 상승세로 돌아서자 6억 원 이하 거래 비중은 2분기 24.8%에 이어 3분기 들어 23.9%로 감소했습니다.
6억∼9억 원 이하도 2분기와 3분기 각각 27.4%를 기록해 1분기보다 소폭 줄었습니다.
반면 9억∼15억 원 이하 중고가 아파트는 올해 1분기 거래 비중이 25.8%로 작년보다 늘어났고 2분기 29.3%, 3분기 30.9%까지 비중이 커졌습니다.
시중은행의 대출 금리가 지난해보다 안정되고 15억 원 초과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 허용으로 매수심리가 살아난 것도 중고가 거래 증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올해 특례보금자리론을 비롯한 대출 규제 완화로 싼 집을 팔고 비싼 집으로 이동하는 도미노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며 "작년에 내 집이 안팔려 갈아타기를 못했던 수요들이 올해 많이 움직였다"고 말했습니다.
부동산 시장에는 일단 6억∼9억 원 이하 특례보금자리론 대출 중단 여파로 한동안 주택 거래량이 감소하고 가격 상승세도 둔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습니다.
정부가 지난 7월부터 시중은행이 판매한 50년 만기 주택담보대출에 대해 차주의 상환 능력에 따라 DSR 산정 만기를 40년으로 축소할 것을 요구한 것도 변수입니다.
최근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연 4% 후반대에서 5%대까지 올라서 대출자에게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KB국민은행 박원갑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올해 아파트값 반등은 대출 규제 완화와 매수세 증가가 영향을 미친 만큼 대출이 줄면 수요가 감소하고 아파트값도 소강 상태를 보일 것"이라며 "다만 아직 기대심리가 꺾이지 않은 것으로 보여 당장 약세로 돌아서진 않고 상승세 둔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미드미디앤씨 이월무 대표는 "정부는 최소한 총선 전까지 집값이 크게 오르는 것을 반기지 않을 것이어서 추가 규제가 나올 수도 있다"며 "일단 특례보금자리 축소나 50년 만기 대출 제한은 새 정부 출범 이후 견지해온 대출 완화 정책이 다시 규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신호탄이어서 시장도 당분간은 눈치보기에 들어갈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다만 본격적인 가격 하락을 예측하는 전문가는 많지 않은 상태입니다.
최근 공사비 상승에 따른 분양가 인상이 지속되고, 정부가 공급 부족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더 부채질하는 형국이어서 집값이 쉽게 꺾이진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적지 않습니다.
한국투자증권 김규정 자산승계연구소장은 "올해 상반기 거래량과 가격 상승에 특례보금자리론이 크게 기여했지만 최근들어선 대출 수요가 감소하는 분위기였다"며 "최근 공급 부족 이슈로 2∼3년 뒤 집값 재상승에 대한 불안감도 큰 상태여서 거래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거나 집값이 하락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 당장 26일까지는 소득제한 없이 6억∼9억 원 이하 주택에 대한 특례보금자리론 대출이 가능해 막판 대출 수요가 몰릴 수 있고, 6억 원 이하는 정부 예산 한도를 초과해도 내년 1월 말까지 판매하기로 계속하기로 한 만큼 저가 주택의 수요는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부동산R114 시세에 따르면 전국의 6억 원 이하 아파트 비중은 62.2%로, 6억∼9억 원 이하 주택 비중(18.6%)보다 높습니다.
다만 서울은 6억∼9억 원 이하 주택이 26.6%로, 6억 원 이하(11.4%)보다 높아 전국에서 특례보금자리론 축소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을 전망입니다.
(사진=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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