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장이 책임지게”…노란봉투법, 9월엔 통과?
최근 국회에서 가장 뜨거운 법안, 바로 '노란봉투법(노조법 2조· 3조 개정안)'입니다.
야당이 오는 21일 본회의 상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국회 밖 싸움도 치열합니다.
노동계 연합단체인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는 지난 6일부터 국회 앞에서 "민생 법안인 노조법 개정안을 처리하라"며 장외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은 릴레이 발언을 하며, 노란봉투법이 9월 본회의에서 통과되지 않는다면 국회에 책임을 묻겠다고 거듭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경영계는 국회의원 전원에게 노란봉투법에 대한 우려를 전달했습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국회의원 298명 전원에게 이메일과 우편으로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 청구마저 봉쇄된다면 산업 현장은 무법천지가 될 것'이라며 '노조법 개정안은 경제의 근간이 되는 제조업 생태계를 뿌리째 흔들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 노란봉투법, "'진짜 사장' 과 교섭할 수 있게"
노란봉투법, 어떤 법이길래 이렇게 다들 촉각을 곤두세우는 걸까요?
먼저 개정안의 핵심은 하청 노동자가 ‘진짜 사장’인 원청과 교섭할 수 있도록 ‘사용자’ 개념을 확대하는겁니다.
현행법은 사용자를 근로계약 주체가 되는 '사업주, 사업의 경영담당자'를 사용자로 보고 있습니다.
개정안은 여기에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를 추가했습니다.
원청의 결정에 따라 노동조건이 바뀌지만, 원청과 단체교섭을 할 수 없는 하청·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 노동권을 보장한다는 취지입니다.
하지만 경영계는 하청 노동자들이 자신과 직접 계약을 맺은 업체와 대화가 안 되면, 더 이상의 협상 노력 없이 너도 나도 원청에 교섭을 요구하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우려합니다.
또 지금도 소송 등을 통해 실제 사용자를 따져볼 수 있는데, 굳이 법까지 만들 필요가 있는지 되묻습니다.
■ '노동권 보장' vs '불법 파업' 조장
노란봉투법 핵심 내용 (2023.5.24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대안)
① 근로계약 체결의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할 수 있는 지위에 있는 자도 그 범위에 있어서는 사용자로 볼 수 있도록 현행 사용자의 범위를 확대한다.
②노동쟁의의 대상을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사항에서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확대하여 정당한 쟁의행위의 범위가 확대될 수 있도록 한다.
③법원이 조합원 등의 쟁의행위 등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하는 경우 그 손해에 대하여 각 배상 의무자별로 각각의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범위를 정하도록 한다.
④쟁의행위 등으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서는 신원보증인의 배상책임을 면제한다.
또 쟁점이 되는 부분은 노동자 쟁의에 대한 '배상 책임' 부분입니다. 이제까지는 파업에 참여한 노조원 개인에 대해, 파업을 결정한 노동조합과 똑같이 배상 책임을 져왔습니다. 이에 따라 노동자 개인에게 수억 원의 손해배상금이 청구되기도 한겁니다.
하지만 개정안은 '손해배상 의무자별로 귀책사유와 기여도에 따라, 개별적으로 책임 범위를 정해야 한다’고 새로 규정합니다.
최근 이에 부합하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법원이 노란봉투법에 대해 힘을 실어준 것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기도 했습니다.
앞서 현대자동차는 2010년과 2013년 울산 공장을 점거해 불법 파업을 벌였다며, 노동조합뿐만 아니라 노조원들에게도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심과 2심은 "정당성 없는 불법 파업"이었다며 현대차 손을 들어줘, 조합원 4명이 20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하지만 지난 6월, 대법원은 앞선 판결을 뒤집었습니다. 파업 책임을 지는 주체는 원칙적으로 노동 조합이고, 조합원 개인의 배상 액수는 노조에서의 지위나 역할, 파업 참여 정도 등을 고려해 개별적으로 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겁니다.
전체적으로 파업 노동자에 대한 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판결이 나오면서, 노란봉투법 핵심 취지와 유사하다는 평이 나왔습니다.
이 같은 내용에 대해 경영계는 불법 파업을 조장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습니다. 손해에 대한 책임 비율을 어떻게 입증할 건지 기준이 없기 때문에, 배상이 제한되고 파업이 과격해질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 노란봉투법, 9월엔 진짜 통과?
논란의 노란봉투법. 논의가 시작된 건, 2009년 쌍용차 파업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파업 이후 법원은 쌍용차 노조 조합원들에게 회사와 경찰에 47억 원가량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이에 한 시민이 월급 가압류 등으로 고통받는 쌍용차 노동자들을 돕겠다며, 4만 7천 원을 '노란 봉투'에 담아 언론사에 보낸 뒤 모금 운동이 이어졌고, 파업에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막아야 한다는 입법 운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법안 발의 이후에도 한동안 논의는 제자리걸음이었습니다.
잊혀져 가던 노란봉투법이 다시 등장한 건 지난해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이었습니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열악한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에 나섰던 하청 노동자들에게 470억 원가량의 손배청구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그 뒤 21대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새로 발의했고, 이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다시 이뤄진겁니다.
꽤 긴 시간 동안 제자리 걸음이었던 노란봉투법, 이번엔 다를까요?
"(국회) 본회의 상정이요? 글쎄요. 거부권 행사하면 방법 있나요?" 노란봉투법의 운명을 두고, 한 노동계 관계자는 체념한 듯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당 측이 오는 21일 본회의에 노란봉투법을 상정하겠다고 했지만, 여권이 필리버스터 등의 방식으로 사실상 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만큼 가능하겠냐는 얘기였습니다.
또 대통령 역시 노조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되면, 거부권을 행사하겠다는 방침을 시사한 바 있습니다.
각자의 입장에 따라, 노란봉투법이 노동권을 보장할지, 과격한 파업 등을 야기할지 해석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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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진 기자 (ejch@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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