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m 역류한 불이 등에 내리꽂혔다…민원이 그 화상보다 더 아파
치료받다 기절하기도 하는 화상 드레싱
“사이렌 시끄럽다” 민원이 더 큰 후유증
‘민원’
지난 6월17일 오후 5시45분께. 경기도 수원시 광교 이의119안전센터(이의센터)에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인근 ㄱ아파트 주민이라고 밝힌 민원인은 사이렌 소리로 피해를 입고 있다며 “아파트 입주자 대표인데, 소음 관련 탄원서를 보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후 6월28일 해당 입주자 대표와 관리소장이 이의센터를 방문해 사이렌 소리를 줄여달라는 민원을 제기했다.
수원소방서는 7월4일 간담회를 열어 “사이렌 음향의 일률적 완화는 규정상 어렵지만, 출동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필요 최소한으로 운용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사실이 뒤늦게 보도되면서 민원인들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이의센터에 컵라면을 보내 소방관들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의센터는 앞서도 다른 지역에서 정식 센터 건립을 추진했으나 그곳 주민들이 소음과 교통체증을 우려해 무산되는 등 11년 동안 임시건물 신세였다. 돌고 돌아 지난 5월에야 신청사를 열었는데, 또 소음 민원에 휘말렸다. 민원인 쪽은 “소음 관련해 소방서와 협의한 것이고, 원만히 해결됐다”고 해명했다.
‘6년 전 오후 3시8분’
검은 연기가 건물을 감싸며 소용돌이처럼 솟구쳤다. 지하 5층, 지상 41층으로 예정된 주상복합 건물은 17층까지 지어진 상태였다.
지하 2층에서 인부들이 산소절단기로 철재를 자르다 튄 지름 3㎜짜리 불티가 5.4m 뒤에 쌓여 있던 폴리우레탄 폼 단열재에 옮겨붙었다. 인부들이 하나둘씩 탈출하다 한 사람이 “지하 4층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외쳤다. 이의센터 화재진압팀장인 소방위 장남일(당시 55살)은 지체 없이 연기 속으로 뛰어들었다. 대원 2명이 뒤따랐다.
지하 2층에 진입하던 순간이었다. 어둡던 시야가 확 밝아졌다. 웅크려 있던 화염이 폭발하며 2m가 넘는 역류를 일으켰다. 불이 산소를 소진하며 밀폐된 공간을 높은 압력과 고온 상태로 만드는데, 소방관들이 이 공간을 뚫고 들어가면서 외부의 산소가 한꺼번에 유입되면 폭발이 발생한다. 이를 ‘백드래프트’(Backdraft)라고 한다.
많은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가 ‘소방관의 악몽’이라고도 불린다. “쾅” 하는 폭발음과 함께 화염이 장남일을 훅 덮쳐왔다. “피해!” 선두에 선 장남일의 외침에 대원들은 두세걸음 후퇴한 뒤 돌아 나갔다. 그사이 불은 천장을 타고 돌았다가 다시 아래로 향하면서 돌아서는 장남일을 가로막았다. 대원들보다 겨우 1~2초 정도 움직임이 늦었는데, 그에게만 단열재를 녹인 불덩어리가 등 위로 쏟아졌다.
‘오후 2시46분’
그날은 2017년 12월25일이었다. 장남일에게 크리스마스 같은 휴일 근무는 익숙하다. 직원들과 함께 차를 마시며 “편히 쉬는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가 좀 더 고생하자”라는 말을 건네고 겨우 몇분이 지났을 때였다.
“광교신도시 하동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 전화가 빗발치고 출동 벨이 울렸다. 이의센터에서 화재 현장은 1㎞ 거리. 장남일과 소방관들은 4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확인해보니 최소 10명 이상의 인부가 작업 중이라고 했다.
그 10명이 각자 어디에서 일하고 있었는지, 모두 탈출한 건 맞는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지하에 인부가 있다는데 거기를 그럼 누가 들어가겠어요.” 지난 7월10일 수원에서 만난 장남일이 그날을 돌아보며 말했다.
‘다시 오후 3시8분’
장남일은 등 위로 불덩어리를 덮어쓰고도 몸을 움직였다. 몽롱한 정신 상태와 시야를 가리는 화염 속에서 탈출로를 찾아낼 수 있었던 건 소방 호스 덕이었다. 외부와 연결된 소방 호스를 붙잡고 온 힘을 다해 계단을 올랐다. 그의 방화복 등은 까맣게 불탔다. 손등에 3도, 등에 2도의 중증 화상을 입었다. 응급조치를 한 뒤, 헬기에 실려 화상전문병원인 한림대 한강성심병원으로 향했다.
불은 오후 5시23분에 완진됐다. 29살 인부 1명이 숨졌고, 장남일이 중상을 당했으며, 소방관 1명과 인부 13명이 경상을 입었다. 사람이 있다던 지하 4층에는 아무도 없었다. 숨진 인부는 지하 1층에서 작업하다가 빠져나오지 못했다.
“저희가 지하로 가는 과정에서, 그분을 못 구했어요.” 장남일은 자신의 중증 화상보다 인부의 죽음을 말할 때 더 버거워했다.
‘火印’(화인)
피부가 불에 타 죽어버린 손등과 등에 새살이 나도록 해야 했다. 그렇게 하려면 화상 부위를 소독하고 죽은 피부를 긁어낸 뒤 감염으로부터 상처를 보호하는 드레싱 치료를 매일 해줘야 했다. 드레싱 치료는 극한의 고통을 안긴다. 상처를 긁어내는 과정에서 기절하는 사례도 보고될 정도다.
“그냥 계속 새살이 나오게끔 상처를 긁어내야 하더라고요. 매일매일매일 하는데, 그 과정이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장남일을 치료한 조용석 한림대 한강성심병원 교수(화상외과)는 이렇게 말했다. “중증 화상 환자들은 면역력이 낮기에 드레싱으로 균 수를 줄여야 재생도 되고 패혈증과 다발성 장기부전도 방지할 수 있어요. 통증의 정도는 환자가 느낄 수 있는 고통의 최대 등급이라고 보면 됩니다.”
장남일은 그런 치료를 9개월 동안 입원하며 매일 받았다. 엉덩이 살을 떼어내 손등에 이식하는 수술도 두차례 받았는데, 이식한 피부가 움직임이 많은 손 근육에 적응하지 못해 관절이 굳어가면서 한동안 물건을 집기도 어려웠다. 퇴원 뒤 1년 재활을 했고, 1년 더 통원 치료를 받았다.
그렇게 6년이 흘렀음에도 그의 왼쪽 등에는 갈색의 동그란 화상 흉터가 선명하다. 양쪽 손등에는 다른 주변 피부와 색과 질감이 달라 보이는 이식 자국이 남아 있다. 지금도 그 부위에서 땀이 나지 않아 여름엔 가렵고, 겨울엔 시리다.
“현장에서 탈출하는 과정이 불과 20초였겠지요. 그사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어요. 치료를 받으면서도 그날의 환청이 들리고 2~3개월은 꿈에 나왔어요.”
한겨레가 소방청 자료를 분석해보니 지난해 7월부터 올 6월까지 1년 동안 화상으로 공무상 요양을 신청한 소방공무원은 25명이었다.(오영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1도 화상이나 작은 면적의 화상은 공상을 굳이 신청하지 않는 분위기를 고려하면, 화상 소방관의 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겨레 인터랙티브 뉴스 바로가기
▶디지털 인터랙티브 ‘화인(火印) : 몸에 새겨진 재난’ 페이지는 여기서 볼 수 있습니다 : https://www.hani.com/119/2/
▶‘소방관, 몸에 새겨진 재난’ 전체 기사를 볼 수 있는 웹페이지는 여기 있습니다 : https://www.hani.co.kr/arti/SERIES/1885/
그날의 화인으로 장남일은 염원하던 정년퇴임을 하지 못했다. 복직하고 화재 진압 현장 업무를 지원했는데, 출동 벨 소리를 듣자마자 그날의 탈출 장면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폐소공포증이 생겼고, 소방차를 보고도 흠칫 놀랐다. 결국 정년을 1년 앞둔 2021년 12월 명예퇴직을 택했다.
“저는 소방관이 천직이라 생각하고 정년까지 갈 줄 알았고, 가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명예스러운 건데 중간에 명예퇴직을 하면서 참 이거는 불명예스럽지 않나 싶죠.”
‘불명예, 그리고 훈장’
지역에서 발생한 화재를 진압하다 중증 화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불명예’ 퇴직을 한 장남일과 남아 있는 소방관들에게 이의센터에서 발생한 소음 민원 논란은 그 어떤 부상이나 질병보다 후유증을 크게 남겼다.
그 후유증은 전국의 소방공무원 6만4054명(소방청 2022 통계연보)에게도 무력감을 전했다. “다쳤을 때는 지역 주민들이 돕고 싶다고 인터넷에 글도 많이 올렸어요. 그런데 마음이 달라진 걸까요. 거기서 일하다 이렇게 다친 사람도 있는데, 섭섭하지요.”
하지만 장남일은 소방관으로서의 33년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제가 다친 거는 그냥 진짜, 제가 소방관 생활을 하면서 얻은 훈장이다 생각해요. 제가 다칠 정도로 열심히, 진짜 일을 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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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용 기자 juney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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