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판 사실 숨기고 수능 출제진 활동… 끝나면 다시 ‘문제 팔이’

김유나 2023. 9. 20.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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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모평 출제 교사 24명, 학원에 문제 판매
영리행위 자진신고 322명 중 적발
최고 5억 챙겨… 다수가 억대 받아
사교육 카르텔 정부 대응협의회
교사 4명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
22명엔 청탁금지법 위반 적용도
“한사람이 수능·모평 6차례 관여
판매 문제, 수능 동일 출제 안 돼”
사교육업체 21곳 수사의뢰 방침
2024학년도 수능 출제진 재점검

현직 교사 300여명이 사교육업체 등에 문제를 파는 등 영리 행위를 했다고 교육 당국에 자진신고한 가운데 이들 중 24명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이나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모의평가 출제에도 참여한 것으로 확인됐다. 그 대가로 수년간 약 5억원을 받은 교사도 있는 등 다수가 사교육업체로부터 억대의 수입을 올린 것으로 파악됐다. 교육부는 “이제서야 적발돼 수험생과 국민들에게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제도 개선을 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장상윤 교육부 차관 주재로 ‘제4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를 열고 교사 4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고소한다고 밝혔다. 교육부에 따르면 이들은 학원과 강사에게 문제를 만들어 판 사실을 숨긴 뒤 수능·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것으로 조사됐다. 

202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9월 모의평가가 실시된 지난 6일 한 고등학교에서 고3 수험생들이 배부받은 답안지를 작성하고 있다. 뉴시스
교육부는 또 수능·모의평가 출제에 참여한 이후 문제를 만들어 판 22명(중복 포함)에 대해서는 청탁금지법에 따른 금품 등의 수수금지 의무 위반, 정부출연연법상 비밀 유지 의무 위반 혐의로 수사 의뢰하기로 했다. 22명 중 2명은 고소 대상이기도 하다. 문제 판매 사실을 은폐하고 평가원의 출제진으로 활동했고, 수능이나 모의평가 출제 뒤에 또 문제를 팔았다는 것이다. 

앞서 교육부가 지난달 1∼14일 교사들을 대상으로 사교육업체와 연계된 영리 행위 자진신고 기간을 운영한 결과 322명이 사교육 업체에 문제를 만들어 팔거나 학원에서 강의 등을 했다고 신고했다. 교육부는 이들을 2017학년도 이후 수능·모의평가 출제자 명단과 비교해 24명을 걸러냈다. 평가원에 따르면 수능·모의평가 출제위원은 최근 3년 이내 수능 관련 상업용 수험서를 집필하거나 학원에서 영리 목적 강의 등을 해선 안되고, 출제위원은 출제 경력을 노출하거나 경력을 이용한 영리 행위를 해선 안 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이 그동안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교육부는 어떤 해의 어떤 시험에 이들이 연루됐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으나 24명 중에는 수능·모의평가 출제에 6차례까지 관여한 사람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소 대상 4명 중 3명은 수능을 출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사교육 업체나 강사들은 인맥 등을 동원해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 출신의 주요 과목 교사들을 파악한 뒤 수능·모의평가 출제 경험이 있는 교사를 수소문해 접근한 것으로 전해졌다. 평가원의 출제진은 비공개가 원칙이지만, 이들은 시험 전 일정 기간 외부와 연락을 끊고 합숙을 하기 때문에 주변에 소문이 나기도 한다. 교육부는 특히 수능 출제위원 경력이 고액의 사례금으로 이어졌을 것이라 보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24명 중 5억원 가까이 받은 사람도 있고, 억대를 받은 교사가 다수 있다”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이들과 거래를 한 사교육업체 21곳에 대해서도 수사를 의뢰한다는 방침이다. 이 중에는 여러 개의 계열사가 있는 대형 입시업체와 개인 강사, 개인  강사 소유의 업체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장상윤 교육부 차관이 19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제4차 사교육 카르텔·부조리 범정부 대응협의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교육부 제공
교육부는 다만 교사들이 판매한 문제가 그대로 수능 등에 출제됐을 가능성에 대해선 선을 그었다. 현재 수능·모의평가 출제는 수차례 문제를 만들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특정 출제위원이 가져간 문제가 그대로 실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7년간 수능·모의평가 출제위원이 1만명(중복 포함) 가까이 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24명은 아주 큰 숫자는 아니다”라며 “사교육업체 문제와 유사하다는 제보가 들어온 문제들은 확인 결과 상당수 EBS 연계 문제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그간 사태를 방치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태로 지난 30년간 ‘공정’한 입시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온 수능의 신뢰도에 금이 갔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향후 수사 과정에서 수능 특정 문제가 사교육업체 판매 문항과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올 경우 파장이 커질 수도 있다. 현재 자진신고를 하지 않은 교사에 대해서도 감사가 진행 중이어서 향후 수능·모의평가 출제 교사 중 사교육업체에 문제를 판 사람은 더 나올 가능성도 크다. 

교육부는 올해 수능 출제진 구성 시 감사원과 협의해 문제 판매 교사를 배제하고, 이들의 출제 참여를 원천 배제하는 제도를 올해 안에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다만 교사들이 문제 판매 경험 등을 숨길 경우 사실상 걸러내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많다. 

서울 목동 학원가의 모습. 뉴스1
한편 교육부는 수능 모의고사 문항을 만드는 사교육업체가 병역특례업체로 지정된 것을 확인하고 해당 업체를 고발하기로 했다. 이 업체에서는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배정된 전문연구요원이 국어 모의고사 지문 작성 등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병무청은 해당 요원에 대해 복무 연장, 수사 의뢰 조치한다는 입장이다.

장 차관은 “사교육 업체의 탐욕이 입시와 병역이라는 가장 공정해야 할 사회시스템을 물밑에서 훼손해왔다는 점이 확인됐다”며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반성한다. 과거에 못 챙긴 부분은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라도 문제가 된 부분에 대해서는 한 점 의혹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할 것”이라며 “그간 은밀하게 형성되어 온 고질적인 사교육 카르텔을 끊어내는 일에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세종=김유나 기자 yo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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