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울린 경보기, 소방차만 울리네
3년간 출동 정확도 3.3%뿐
소방력 낭비·출동 공백 가중
설치 10년 지나면 성능 저하
15년마다 교체 의무화도 무리
“최저가 제품 입찰이 한 원인”
임호선 의원 제도 보완 촉구
19일 오후 1시44분 충남 지역의 한 요양병원에서 화재경보기가 울렸다. 관할 소방상황실로 즉시 통보됐고, 소방차 3대와 소방관 8명이 즉시 현장으로 내달렸다. 거동이 불편한 노령 환자들이 많아 인명피해가 우려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이 도착했을 때 병원은 멀쩡했다. 불꽃이나 연기도 없었다. 설비가 오작동을 일으켰던 것이다.
화재경보기가 울려 소방차가 출동했다가 허탕을 치는 경우가 30차례 중 29차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 감지기의 오작동률이 80%를 넘는 실정이지만 당장 이를 개선할 대책은 마땅치 않다.
이날 경향신문이 임호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소방청 자료에 따르면 2021년부터 지난 7월까지 자동화재탐지설비와 자동화재속보설비 등 화재경보기로 인한 출동 25만8200건 중 실제 화재 발생은 8775건에 불과했다. 소방차 출동으로까지 이어진 경보기의 경보 중 단 3.3%만이 정확한 경보였던 셈이다. 경보기 오작동으로 인한 소방력 낭비와 출동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오작동이 반대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 관계자는 “불이 났는데 이를 제때 감지하지 못할 가능성 역시 크다는 것”이라고 했다.
오작동의 원인으로는 최저가 입찰 단가를 맞추기 위한 저가 중국산 부품 등의 사용, 그로 인한 품질과 내구성 저하, 부실한 시공과 사후관리 등이 꼽힌다. 특히 노후화가 진행되면서 제품들의 상태가 급격히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이 소방청의 의뢰를 받아 지난 2월 조사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설치된 지 10년이 지난 경보기의 경우 정상적인 성능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경기 등 7개 지역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 공동주택에 설치된 화재경보기 800개를 점검한 결과 설치한 지 16년이 지난 경보기의 오작동률은 83.93%에 달했다. 이 때문에 소방산업기술원은 설치된 지 15년이 지난 제품을 의무적으로 교체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소방청은 경보기를 15년마다 전부 교체하는 것은 천문학적 비용과 인력이 든다는 이유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 부담이 세입자나 주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소방청 관계자는 “경보기만 교체하는 게 아니라 전선도 새로 깔아야 하고, 관련 인건비도 무시 못한다”며 “아파트는 주민에게, 건물주는 세입자에게 비용을 떠넘길 것”이라고 했다.
소방청은 일단 경보기 사용승인 기준을 강화하도록 고시를 개정하고, 소방 감리나 점검을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가구마다 방문해 경보기들을 주기적으로 점검하기가 쉽지 않아 실효성 논란도 있다.
임 의원은 “최저가 입찰 관행에 따른 수준 미달의 성능과 내구성을 가진 제품이 설치되는 사례, 부실한 시공과 사후관리 등을 예방할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며 “안전 관련 제품의 경우 최저가 입찰을 금지하거나, 내용연수(사용 가능한 기간을 정하는 것) 제도를 도입하되 조건부 연장이 가능하게 하는 방안 등을 여러모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용필 기자 phi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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