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되어서야…부모님 손 놓게 한 '루시', 그 덕에 교사 꿈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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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블럭을 약 5분간 걸으면 붕어빵을 굽는 냄새가 난다. 이 향이 사라질 때까지 걸음을 옮겨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건널목을 만난다. 다시 이 교차로를 건너면 편의점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예상치 못한 사람이나 차량, 자전거가 다가올 때를 대비해 누군가는 윤 교사의 눈이 돼줘야 한다.
루시가 대신 세상을 바라봐준 덕분에 윤 교사는 2014년 서울 삼선중학교에 발령을 받으면서 영어교사의 꿈을 이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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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블럭을 약 5분간 걸으면 붕어빵을 굽는 냄새가 난다. 이 향이 사라질 때까지 걸음을 옮겨 오른쪽으로 돌아서면 건널목을 만난다. 다시 이 교차로를 건너면 편의점 문에 달린 종소리가 들린다. 바로 옆엔 아파트 단지로 들어가는 문이 나온다."
서울 중계중학교에서 근무하는 윤서향 교사의 퇴근길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윤 교사는 후각과 청각, 촉각 등 온몸의 감각을 동원해 길을 찾는다. 하지만 온전히 홀로 걷기란 불가능하다. 예상치 못한 사람이나 차량, 자전거가 다가올 때를 대비해 누군가는 윤 교사의 눈이 돼줘야 한다. 그의 곁에 항상 안내견 찬란이가 있는 이유다.
윤 교사는 태어나자마자 미숙아망막변증에 걸려 실명했다. 하지만 앞을 보지 못해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많았고, 배움에 대한 열망이 가득했다. 특히 영어를 좋아해 학창 시절부터 영어 교사의 꿈을 키웠고, 2010년 숙명여대 교육학부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선생님이란 목표에 다가서기 시작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특히 부모님이 매일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굣길을 함께 할 순 없었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맹학교 학생들을 위한 안내견 체험 행사가 열린게 그 즈음이다. 윤 교사는 입학 두 달전 행사에 참여한 뒤 분양을 신청했고, 그때 첫 안내견 루시를 만났다. 이어 루시와 학교를 오가는 연습을 해본 뒤 그해 3월,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모님 도움없이 홀로 걷기에 나섰다.
"처음으로 지하철 환승까지 성공하고 학교에 무사히 도착한 후 엄마한테 '도착' 두 글자를 문자로 보내자마자 몸에 힘이 쫙 빠졌던 기억이 나요." 윤 교사는 당시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그 뒤로도 윤 교사의 삶은 늘 안내견 루시와 함께 했다. 루시도 윤 교사가 학교에 다니는 4년 내내 옆자리를 지켰고, 졸업 이후 중등교원 임용 시험을 치르던 순간까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루시가 대신 세상을 바라봐준 덕분에 윤 교사는 2014년 서울 삼선중학교에 발령을 받으면서 영어교사의 꿈을 이뤘다. 설레는 첫 출근길도 루시가 동행했다. 하지만 2018년 윤 교사를 8년간 따라다닌 루시가 은퇴했다.
그는 "루시는 매우 순하고 얌전했고, 낯선 곳에서도 늘 침착했다"며 "루시가 떠날 때에도 애써 슬픔을 억누르고 '담담하게 거쳐가야 하는 과정'이라고 되뇌이며 작별했다"고 털어놨다.
두 번째 안내견 찬란이를 맞게 된 순간이다. 찬란이와 출퇴근은 루시 때보다 오래 걸린다. 붙임성이 좋은 탓에 길에서 친한 교사나 학생을 만나면 지나칠 줄 몰라서다.
이런 찬란이는 윤 교사를 새로운 도전으로 이끌었다. 정보기술을 활용해 수업을 더 재밌고 유익하게 진행하고 싶단 목표를 세운 것이다. 그는 "코로나19 때문에 수업을 온라인으로 진행하면서 영상과 PPT로 강의 콘텐츠를 만드는 법을 익혔다"며 "글을 쓰면 영상으로 만들어주는 인공지능(AI) 플랫폼까지 나왔는데 능숙하게 다뤄서 수업을 풍성하게 채우고 싶다"고 말했다.
실제로 힘든 도전이 있을 때마다 찬란이는 윤 교사의 버팀목이 돼주고 있다. 그는 "방에서 찬란이를 꼭 끌어안고 몇 시간이고 있으면 위로가 된다"면서 "사람보다 길도 더 잘 찾고, 예쁜 찬란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창명 기자 charmi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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