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작물재해보험, 농가 우산 되려면…“보험금 산정기준 고쳐야”

서륜 2023. 9. 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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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멜론
기후변화로 생장일수 짧아져
작기별 차이 커 이원화 필요
멜론 그물 안생기는 황화현상
자연재해 인정하고 보상해야
‘샤인머스캣’ 포도
매뉴얼보다 실수확량 많아
피해 시 보상받을 확률 낮아
비가림시설 보험 공백 지적
열과 인정률도 단순화해야

자연재해가 일상이 되면서 농가가 피해를 보면 이를 보상해주는 농작물재해보험의 안전망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일부 품목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보상체계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수박과 멜론·포도가 대표적이다. 수박·멜론은 ‘표준생장일수’를, ‘샤인머스캣’을 포함한 포도는 ‘표준수확량’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 농가 요구가 빗발친다.

수박·멜론 

멜론 황화현상도 이상고온으로 발생하는 피해인 만큼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한 농민이 황화현상이 발생한 멜론 잎을 살펴보는 모습.

“수박과 멜론의 농작물재해보험 표준생장일수가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어요. 표준생장일수를 실제에 맞게 줄이면서 작기별로 이원화해야 농가가 제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 겁니다.”

7월 내린 집중호우로 농업부문에서는 기록적인 피해가 발생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농작물재해보험이 피해농가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농작물재해보험은 극한 이상기후가 일상화하는 가운데 각종 자연재해로부터 농가를 보호하려는 목적으로 운영하는 정책보험이다. 보험료의 80∼90%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보조한다.

다만 일부 품목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규정으로 피해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대표적인 게 수박과 멜론의 표준생장일수다. 표준생장일수는 말 그대로 작물의 정식부터 수확까지 걸리는 일수를 작물별로 정해놓은 것이다.

수박과 멜론의 표준생장일수는 재배 시기와 관계없이 100일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로 생장일수가 짧아졌고, 작기별로도 차이가 크다는 게 농민들의 주장이다. 실제 수박의 경우 4월말부터 정식하는 여름 작기의 생장일수는 70∼75일, 겨울 작기는 90일가량으로 현행 농작물재해보험에서 규정하는 100일보다 짧다.

이런 차이로 피해농가가 받는 보험금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한다. 보험금은 실제 생장일수를 표준생장일수로 나눈 ‘경과비율’을 재배면적·생산비 등과 곱해 산출한다. 쉽게 말해 실제 생장일수가 70일이고 표준생장일수도 70일이면 이 둘의 비율이 1이 돼 이를 재배면적·생산비 등과 곱해도 보험금이 줄지 않는다. 하지만 현재의 표준생장일수 100일로 나누면 0.7이 돼 보험금이 줄게 된다.

충남 부여에서 수박을 재배하는 임모씨(51)는 올 4월25일 수박을 정식했고, 수확을 코앞에 둔 7월14일 집중호우로 비닐하우스가 모두 물에 잠기는 피해를 입었다. 부여농협(조합장 소진담)이 그의 농작물재해보험 보험금을 산출한 결과 1동당 약 330만원이었다.

부여농협 관계자는 “표준생장일수를 현실에 맞게 70일로 적용하면 보험금은 380만원으로 50만원가량 높아진다”며 “표준생장일수를 짧게 하면서 작기별로 이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이와 토마토는 표준생장일수가 작기마다 다르다. 9∼11월에 정식해 겨울을 나는 재배는 각각 75일·120일이다. 그 외의 기간에 재배하는 오이와 토마토의 표준생장일수는 각각 45일·80일이다.

임모씨는 “추석을 겨냥해 재배하는 여름 작기는 정식 후 70일에서 길어야 80일이면 수확에 들어간다”며 “표준생장일수를 현실에 맞게 조정해 농가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NH농협손해보험 관계자는 “품목별 표준생장일수가 조금씩 변하고 있어 조사·연구를 하고 있다”면서 “이 결과에 따라 보험금 기준이 되는 생산비가 감소해 농가가 손해 보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멜론 ‘황화’현상도 농작물재해보험 보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황화현상은 멜론 잎이 얼룩덜룩한 황색을 띠다 누렇게 변하고 그물(네트) 모양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는 바이러스병이다. 판매할 수 없는 비상품과만 생산돼 농가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소진담 조합장은 “황화현상은 기후변화로 계속되는 이상고온과 지온 상승이 가장 큰 원인인 만큼 이를 자연재해로 인정해 농작물재해보험으로 보상해줘야 한다”고 힘줘 말했다.

부여=서륜 seolyoon@nongmin.com



 

‘샤인머스캣’ 포도 

조성민 경북 상주 팔음산포도영농조합법인 회장(왼쪽부터), 포도농가 신주섭씨, 강효구 상주시의회 의원이 농작물재해보험 문제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피해가 발생했는데도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면 누가 농작물재해보험에 가입하겠습니까.”

포도 농작물재해보험은 피해율 산정에 있어 현실과 맞지 않는 기준으로 농가로부터 외면받는 상황이다. ‘샤인머스캣’ ‘캠벨얼리’ 등 고품질 포도 주산지인 경북 상주 화동·화서·모동·모서면, 화북·화남면 농가들은 한목소리로 재해보험 제도 개선을 요구한다.

가장 큰 문제는 단위면적당 표준(평년)수확량이 지나치게 낮게 잡혀 있다는 점이다. 포도 재해보험 매뉴얼에 ‘샤인머스캣’은 표준수확량을 가입 수령 4∼11년차 한그루당 600g의 15∼18송이로 규정한다.

하지만 실제 상주 중화지역 농가는 공영도매시장 등에서 상품으로 인정받는 700g 이상 ‘샤인머스캣’을 한그루에서 30송이 안팎 수확한다. 보험금 지급 기준과는 1.5배에서 많게는 2배 이상 차이가 난다.

올봄처럼 극심한 저온피해로 나무 한그루에서 50% 가까이 꽃눈이 말라 죽어 30송이를 수확하던 농가가 15송이밖에 수확할 수 없는 막심한 피해가 발생해도 보험금 수령이 어려워진다. 여기에 농가 자기부담비율(10∼20%)까지 빼면 피해 보상은 한푼도 받을 수 없는 셈이다.

1만3223㎡(4000평)에서 ‘샤인머스캣’을 재배하는 신주섭씨(56·화동면)는 “보험에 들고 재해를 당하면 피해 본 만큼 보험금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피해율 산정 기준이 까다롭고 현실에 맞지 않아 아예 받지 못하는 일이 다반사”라며 “보험에 들면 되레 손해 본다는 인식이 농가 사이에서 파다하다”고 말했다.

조성민 팔음산포도영농조합법인 회장은 “포도 수확량이 절반으로 줄어도 보상 한푼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며, 더 큰 문제는 재해로 보험금을 받은 농민이 이듬해 재가입할 때 손해율에 따라 표준수확량 기준을 더 감량한다”며 “15∼18송이에서 더 줄어, 피해가 발생해도 보상받을 확률은 현저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처럼 비현실적인 재해보험 피해율 기준 때문에 포도 재해보험은 농가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팔음산영농조합법인 회원 245농가 중 올해 재해보험에 가입한 농가는 ‘샤인머스캣’ 5농가뿐이다. ‘캠벨얼리’ 역시 10% 정도다. 올봄 극심한 저온피해로 큰 고통을 당했지만 재해보험 덕을 보지 못했다.

농가들은 포도 비가림시설 보험 가입 시기와 보장 종기(만료일)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포도 재해보험 약관엔 비가림시설 포도 보험 가입은 매년 11월10일부터다. 하지만 보장 종기는 10월10일로 정하고 있다. 한달간 보험 공백이 생긴다.

조 회장은 “상주 중화지역은 비가림시설이 많고, 고랭지지역으로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 포도를 수확하는데, 현재 기준이라면 한창 수확하는 한달 사이 사고가 나도 보상받을 길이 요원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와 함께 3단계로 나눈 열과(열매터짐) 송이 피해율(50%·80%·100% 피해과)을 50%와 100% 피해과로 단순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조 회장은 “‘샤인머스캣’은 알이 굵어 알솎기를 하면 상품성이 떨어져 결국 가공용으로밖에 판매할 수 없다”면서 “송이 피해율을 단순화해 피해농가에 실질적인 보상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했다.

포도 재해보험 가입을 확대하려면 무사고 농가엔 보험료 일부를 환급해 이듬해 보험가입 부담을 낮춰주고, 적색포도 계열(‘마이하트’ ‘홍주씨들리스’ 등) 신품종 재배가 증가하는 현실을 반영해 가입 대상 품종을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도 귀 기울일 만하다.

최근 상주시의회에서 포도 농작물재해보험 문제점을 지적한 강효구 시의원은 “시비를 지원해 무사고 농민의 자부담 보험료를 환급하면 다음해 보험 가입 마중물 역할은 물론 가입률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의견을 피력했다.

강 의원은 “극한 기상이변이 반복되면서 농가를 보호하려고 도입한 재해보험이 비현실적인 보상 기준으로 농가가 외면하면서 정작 올봄처럼 이상저온·우박 등의 자연재해에서 농가를 지켜주지 못했다”면서 “많은 포도농가가 보험에 가입하고, 제대로 된 보상을 받아야 농작물재해보험이 농촌사회 안전망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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