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방울=정경유착, 백현동=토착비리"... 142쪽 이재명 영장청구서의 결론
문재인 지지율 보고 대북사업·방북 추진
이화영 '대북송금' 보고에 李 "진행해봐"
김인섭-이재명을 '정치적 동반자' 규정
李측 "영장이 아니라 물증 없는 논평"
검찰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연루된 쌍방울그룹 대북송금 의혹을 '후진적 정경유착의 대표 사례'라고 규정했다. 또 이 대표가 개입한 것으로 의심받는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은 '단체장과 브로커가 공생관계를 유지한 토착비리'라고 정의했다.
모두 다 이 대표의 신병을 확보하기 위한 구속영장 청구서에 기재된 표현들이다. 검찰은 두 사건에서 모두 이 대표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고 보아, 사건의 본질을 밝히기 위해선 이 대표의 구속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①쌍방울: "이재명-김성태 직접 통화"
19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142쪽 분량의 이 대표 구속영장 청구서를 보면, 검찰은 대북송금 사건을 "부패한 선출직 공직자(이재명)와 부패 기업인(김성태 전 쌍방울그룹 회장)의 은밀한 정경유착 범죄의 표본"이라고 적시했다. 그러면서 "이 대표는 대통령이 되기 위해 그룹 사업 확장을 노리던 김성태를 '해결사'로 활용했고, 김성태는 쌍방울그룹의 명운을 이 대표에게 베팅하며 이 대표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노력했다"고 부연했다.
검찰이 대북송금 사건에서 문제 삼은 시기는 이 대표가 경기지사로 재직하던 2019년과 2020년이다. 당시 이 대표가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공모해, 김 전 회장을 시켜 △스마트팜 사업 비용 500만 달러 △이 대표 방북비용 300만 달러를 북한에 대납케 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제3자뇌물·외국환거래법 위반)를 적용했다.
검찰이 본 범죄 동기는 '대선 당선'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8년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며 지지율이 83%로 급등한 것을 본 이 대표가 '대북정책이 차기 대선의 정치적 기반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검찰은 2019년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대북관계가 경색되자, 이 대표의 방북 추진 의지가 더 강해졌다고 결론 내렸다. 방북으로 경색 국면을 타개하는 모습을 보이면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전국적 정치인'으로서 이미지를 구축할 것으로 이 대표가 봤다는 것이다. 검찰은 이 대표가 김용 당시 경기도 대변인 등을 통해 이 전 부지사에 방북 추진을 채근하고, 도지사 직인이 찍힌 공문을 북한에 보내도록 방식을 바꾼 것으로 파악했다.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에게 보고한 내용도 청구서에 상세히 담겼다. 2019년 7월 "방북을 위해선 통상 북에서 의전비용을 요구한다"거나 "현대아산 예처럼 쌍방울 김성태가 현재 대북사업을 하고 있어 지사님 방북 비용까지 비즈니스적으로 처리할 것이다"고 보고하자, 이 대표가 "잘 진행해보시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2019년 12월엔 "보고드린 바와 같이 김성태 회장이 대북사업하면서 지사님 방북도 같이 추진하고 있는데 북한과 계약도 체결하고 돈도 100만~200만 달러를 보내는 등 일이 잘 되는 것 같다"고 보고하자 이 대표가 "고생하셨다"고 답했다는 내용도 있다.
이 대표가 김 전 회장과 직접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도 상세히 묘사됐다. 2019년 1월 이화영 전 부지사가 중국 선양에서 열린 쌍방울과 북한의 협약식 만찬 자리에서 스마트팜 사업 대납 이야기 도중 이 대표에게 전화해 김 전 회장을 바꿔줬다고 한다. 그 때 이 대표가 "김 회장님 고맙습니다"거나 "좋은 일 해줘서 감사합니다"는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같은 해 7월에도 김 전 회장의 요구로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와 통화를 연결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②백현동: "김인섭은 이재명의 비선 최측근"
구속영장에 나타난 혐의의 또 다른 축인 백현동 의혹과 관련해선, △이 대표 △정진상 전 당대표 정무조정실장 △김인섭 전 한국하우징기술 대표(브로커) 간의 '삼각관계'가 강조됐다. 검찰은 청구서 11쪽을 할애해 이들의 관계를 설명하는 데 주력하며, 김 전 대표를 이 대표와 정 전 실장의 '정치적 동반자'라고 봤다. 이 대표가 2005년 정계에 처음 입문하려던 때부터 김 전 대표에게 "형님, 제가 내년 선거에 성남시장으로 출마 해보려 합니다"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김 전 대표는 "시민운동하는 사람이 이를 발판 삼아 정치하면 되겠느냐"고 만류했으나 거듭 부탁한 끝에 수락해 결국 '비선실세'까지 됐다는 게 검찰의 결론이다.
정 전 실장은 김 전 대표와 수시로 선거 전략을 논의하며 이 대표를 지원했고, 이 대표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 2014년 초 김 전 대표는 당시 성남시 정책비서관이던 정 전 실장에게 "내가 백현동 개발사업을 하려고 하니 많이 도와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나타났다. 2014년 4월부터 1년간 둘 사이에는 성남시장 선거와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통화와 문자메시지가 약 300회 오간 것으로 조사됐다. 그러다 2015년 4월 김 전 대표가 성남시 공무원에 대한 알선수재 혐의로 체포되자, 정 전 실장은 백현동 '인허가 브로커'인 김 전 대표 측근 김모씨를 통해 수사·재판 상황을 점검하고 특별면회를 하기도 했다.
김씨는 이 대표의 수행비서 출신인 백모씨에게 김 전 대표의 사건 진행 상황을 지속 보고하기도 했다고 한다. 청구서엔 2016년 4월 출소한 김 전 대표가 같은 해 6월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농성 중이던 이 대표를 위로차 방문한 자리에서, 이 대표가 김 전 대표에게 "형님, 나 때문에 고생 많습니다"라고 말한 정황이 기재되기도 했다. 검찰은 김씨로부터 "이재명의 제도권 최측근은 정진상이고, 비제도권 최측근은 김인섭"이라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다.
아울러 유동규 당시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이 대표에게 백현동 관련 보고를 할 당시, 이 대표가 김 전 대표를 챙긴 정황도 청구서에 포함됐다. 유 전 본부장이 2015년 3월 확정이익과 관련한 보고를 하자, 이 대표가 "백현동 사업은 인섭이 형님이 끼어 있으니 진상이하고 잘 이야기해서 신경 좀 써줘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백현동 의혹엔 2014~2017년 성남시장 재임 중 정 전 실장과 공모,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동 옛 한국식품연구원 부지를 개발하면서 민간업자에게 특혜를 줘 성남도시개발공사에 약 200억 원의 손해를 끼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가 적용됐다. 검찰은 이 사건을 "오랜 기간 선거브로커 김인섭과 형성한 유착관계를 이용해, 상호간의 정치·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불법적인 공생관계를 유지하며 범죄를 품앗이한 권력형 지역토착비리 사건"이라 강조했다.
③구속 필요성: "회유 압박으로 증거인멸"
증거인멸에 대한 우려에도 11쪽이 할애됐다. 이 대표가 대북송금·백현동 의혹 관련 혐의를 이 전 부지사 등 부하와 실무 공무원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어, 제1야당 대표의 지위로 각종 회유·압박을 통한 증거인멸이 이뤄질 우려가 크다는 게 주요 논리다. 앞서 유죄가 확정된 '검사 사칭' 사건 관련 위증교사 혐의도 넣어 증거인멸 우려를 강화했다. 특히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에 대북송금을 보고했단 진술을 뒤집은 점을 지적하며 "회유, 압박을 통한 증거인멸은 이미 현실화됐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검찰은 "피의자에게 사법질서를 존중하려는 의사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범죄가 심히 중대함에도 반성하기는커녕 사건을 정치의 영역으로 끌어들여 처벌을 피하려 시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이 대표 측은 "검찰은 영장청구서에서도 진술에 의존하고 있고 뚜렷한 물증 하나 보이지 않는다"며 "감정적인 말로 구속필요성을 주창하고 있는데, 영장이 아니라 논평에 가깝다"고 반박했다.
이유지 기자 maintain@hankookilbo.com
강지수 기자 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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