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러 군사 협력 우려된다고 '제3국'인 한국, 러 대사 불러들여 항의?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정부가 주한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북러 간 군사협력을 중단하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를 두고 정부가 북러 군사협력에 대해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힐 수는 있지만, 제3국의 입장에서 대사를 초치하면서까지 항의하는 것이 상호 주권 존중 차원에서 바람직한 외교 행위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19일 외교부는 "장호진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오후 안드레이 보르소비치 쿨릭 주한 러시아대사를 외교부로 초치하여, 최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방러 계기 러북 간 무기거래와 군사협력 문제 논의에 대한 우리 정부의 엄중한 입장을 전달하고, 러시아가 북한과의 군사협력 움직임을 즉각 중단하고 안보리 결의를 준수할 것을 강력히 촉구하였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장 차관은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를 채택한 상임이사국이자 국제 비확산 체제 창설을 주도한 당사국 중 하나인 러시아가 책임있게 행동해야 할 것임을 지적하고, 우리 정부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우리 안보를 중대하게 위협하는 어떤 행위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와 공조하여 분명한 대가가 따르도록 강력히 대처해 나갈 것이며, 그와 같은 행위는 한러 관계에도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외교부는 "쿨릭 대사는 우리 정부의 입장을 주의 깊게 들었으며, 이를 본국 정부에 정확히 보고하겠다고 하였다"고 덧붙였다.
외교부를 포함해 한국 정부는 북러 정상회담 개최 사실이 공식화된 이후 양측 간 군사협력에 대해 우려하거나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런데 이를 이유로 대사를 초치하는 것은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방식이기 때문에 외교적으로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초치(招致)'란 사전적 의미로 "불러서 안으로 들임"이라는 의미다. 단어 뜻 자체만 보자면 강압적인 의미가 짙게 포함됐다고 볼 수는 없지만, 실제로는 상대국의 외교관을 특정 장소로 오라고 강제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 때문에 주로 상대국에 대한 항의를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외교부는 일본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거나 중국 및 러시아 등이 방공식별구역(KADIZ)를 침범하는 등의 행위를 했을 때 주한 대사 또는 대사 대리 등 고위 외교관을 외교부 청사로 불러들이곤 했다.
그동안 정부는 위 사례들처럼 직접적으로 상대국과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초치를 통해 항의의 뜻을 전달해왔다. 이번처럼 상대국이 제3국과 있었던 사안을 가지고 '초치'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외교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보도자료를 보더라도 제3국과 관련한 내용으로 상대국 대사를 초치한 사례는 없었다.
이에 러시아 측이 한국의 행태에 대해 자국의 주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할 여지도 있다. 지난 2017년 한국에 미국 무기인 사드를 배치하는 것에 대해 중국이 보복 조치를 실행하고 반대 입장을 밝혔는데, 이에 대해 당시 박근혜 정부를 비롯해 현재 여당인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에서는 왜 제3국인 중국이 반대하냐며 "내정간섭"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현재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한국의 이번 행위가 당시 중국의 행태와 유사하게 비춰질 것으로 보인다.
북러 간 실제 어떤 합의를 했는지, 그리고 이들의 군사협력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결의안에 위배되는지 등에 대해 정부가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않은 상태에서 초치를 실행했다는 것도 문제다. 19일 현재까지 양측 간 군사협력과 관련해 명확하게 드러난 부분은 지난 17일(현지시각) 러시아 매체 <타스통신>에 보도된 드론 6대와, 통제 시스템, 방탄복 등이 북한에 전달된 사실이 전부다.
19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러시아가 북한에 드론을 전한 것이 안보리 결의에 100% 위반된다고 결론을 내리지 않은 것이냐는 질문에 "소위 말하는 '자폭 드론'이 (안보리 결의) 어느 부분에 (위반한다고) 해당되는지 꼼꼼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답했다.
이 당국자는 "그렇기 때문에 현 시점에서 단정해서 안보리 결의 위반이라고 말씀드리는 것보다도 전반적인 제재 결의 내용을 봤을 때 결의 위반을 구성할 가능성이 높다는 입장으로 설명을 드리게 된 것"이라며 어떤 결의에 어떻게 위반되는지에 대해 구체적인 답을 내놓지 못했다.
그럼에도 외교부가 러시아 대사를 초치해 제3국인 북한과 군사협력에 대해 항의한 것을 두고, 러시아를 불필요하게 자극해 한러 관계를 악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과 함께 한국이 스스로 외교 입지를 좁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국립외교원장을 지낸 김준형 한동대학교 교수는 "북러가 접근하는 것에 대응해 적극적으로 대 러시아 외교를 해도 시원찮은데 오히려 러시아를 자극해서 한러관계는 악화하고 북러관계를 더 심화시킬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며 "무(無)외교를 떠나 반(反)외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14일 기자들과 만난 통일부 고위당국자는 "일각에서 북러 정상회담이 이뤄지니까 우리도 우크라이나에 살상무기를 지원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본다면 우리가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며 "러시아도 북한과 관계보다는 대한민국과 관계가 훨씬 중요할 것이다. 이번 북러 정상회담을 장기적 관점에서 보고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더라도 외교부의 이번 초치는 즉자적이고 성급한 대응이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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