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기로의 ‘9·19 군사합의’…“윤 정부 효력 정지는 도박”
남북, 신냉전 속 강 대 강 대치
종전 향한 완충지대 만들려던
9·19 의미와 효용성은 빛 잃어
정부 “신뢰 깬 건 북” 여론전
선제적 파기 선언 가능성 커져
전문가들 “군사적 충돌 우려”
‘신냉전’의 위기에 처한 한반도가 19일 9·19 군사합의 체결 5주년을 맞았다. 남북 정상이 서로를 향해 정권 종말과 핵 전쟁을 위협하는 상황이어서 9·19 군사합의는 존폐 기로에 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8년 9월19일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평양 남북정상회담에서 정식 명칭 ‘판문점선언(4·27 남북정상회담 합의) 이행을 위한 군사 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군사분계선(MDL) 일대 군사 연습 금지, 해상 완충구역 내 함포·해안포 실사격 금지,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일부 철수 등을 골자로 한다. 종전선언으로 나아가기 위해 우선 남북 간 완충지대를 확대하려는 시도였다.
남북관계가 갈등과 대결로 점철되면서 9·19 군사합의가 유명무실해졌다는 데에는 이견이 많지 않다. 남북 정상이 원색적인 표현으로 서로를 비난하고 핵 대 핵 대결을 공언한 상황에서, GP를 철수하고 재래식 함포 사격을 금지한 선언의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통화에서 “남북은 각자 가진 힘을 절제하면서 신중하게 관계를 풀어나가려는 의지가 현재로서는 전혀 없다”며 “9·19 군사합의는 사실상 의미가 없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윤석열 대통령이 9·19 군사합의의 효력 정지를 선언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6일 북한 무인기의 영공 침범 사태가 벌어진 것에 대해 지난 1월4일 국가안보실과 군 당국에 “북한이 다시 우리 영토를 침범하는 도발을 일으키면 9·19 군사합의 효력 정지를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문재인 정부가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후속 조치로 만든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통령은 남북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하거나 국가 안전 보장 등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간을 정해 남북합의서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다. 9·19 군사합의는 국회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가 없었기 때문에 효력 정지 시에도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 않다.
9·19 군사합의의 효용성과 별개로 공식적으로 파기를 선언하면 파장은 작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북관계발전법은 북한이 예민하게 반응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 시각매개물 게시, 전단 살포 등도 금지하고 있다.
합의 효력이 정지되면 GP 재건설과 공동경비구역(JSA) 재무장화 외에도 이 같은 행위가 가능하다고 정부는 판단한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지난해 12월28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정부는 더 이상 좌고우면하지 말고 9·19 군사합의와 대북전단금지법(남북관계발전법)을 무효화하되 그 이전에라도 북한 정권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북심리전을 재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이미 9·19 군사합의 파기의 책임을 북한으로 돌리기 위해 여론전에 돌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여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9·19 군사합의 유지 여부는 전적으로 북한에 달린 것”이라며 “남북 사이 신뢰를 먼저 깬 것은 북한이다. 한 번 약속했다는 이유로 계속 두고만 보는 것을 동등한 관계라고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지난해 무인기 영공 침범 사태 이후 북한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한 사례는 아직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한·미·일의 군사협력 수위를 봐가면서 도발에 나서거나 선제적으로 9·19 군사합의 파기를 선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최 교수는 “남북 사이 갑작스러운 군사 충돌이 생길 수도 있다. 9·19 군사합의 파기를 무기로 내세우며 힘 대결을 하는 것은 도박과 같다”고 말했다.
유새슬 기자 yoos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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