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아이 울음’이 사라진 미래는 진짜 아프다[최정균의 유전자 천태만상]

기자 2023. 9. 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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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애 키우기 vs 개 키우기
겔라다개코원숭이 무리가 숲속 바위에서 뛰어놀고 있다. 야생 겔라다개코원숭이 무리에서는 새로운 수컷이 권력을 잡으면 임신한 암컷들이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새로운 수컷과 살게된 암컷이 임신한 새끼를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브루스 현상’은 외부 환경의 변화를 맞이한 암컷들의 몸이 손익계산에 따라 작동하는 진화적 메커니즘으로 해석된다. 위키피디아 커먼스
‘낳기 싫어서가 아니라 포기’…현대인의 출산 기피 이유는 생물학적으로 보면 명료하다
줄어드는 아이, 늘어나는 반려동물…똑같이 ‘금쪽같은 새끼’지만 사회 속에서 갖는 의미는 분명 다르다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다윈은 말했다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미래가 현재에 가지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고

필자가 종종 이용하는 커피숍은 자립준비청년들을 돕고자 하는 취지로 운영되는데, 그 옆에는 애견카페가 있다. 카페일 뿐 아니라 호텔과 유치원으로도 운영한다고 한다. 어느 날 이곳에서 시비가 붙었는데, 듣자 하니 그곳 주인이 커피숍에 부모와 함께 방문 중이던 어린아이들에게 “싸가지가 없다”는 등 심한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커피숍 야외 공간에서 노는 소리 때문에 애견카페 안에 있는 개들이 놀란다며 도 넘은 훈계를 하던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지켜보던 사람들 사이에서는 그곳 상호에 사용된 ‘개린이’라는 말마따나 이제 어린이보다 개린이가 더 대접받는 세상이 되었구나 하는 한탄이 오고 갔다.

전 지구적인 고령화가 심각하게 치닫고 있는 가운데 특히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아이를 낳지 않는 나라로 압도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 여성 한 명당 평균 자녀 수는 0.78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2023년 통계에서는 0.7명 선마저 깨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반면 반려동물 양육 가구는 꾸준히 증가하여 이제는 전체 인구의 무려 30%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그에 따른 여러 가지 분쟁도 잇따르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의 57%가 분쟁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소음, 배설물과 노상방뇨, 냄새, 목줄이나 입마개 미착용 등의 이유였다. 반려견이 내는 소음이 층간소음과 맞먹는다는 뜻에서 ‘층견소음’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다. 빈번한 물림 사고 또한 심각한 문제다. ‘개통령’ 강형욱씨조차 피해가기 어려운 이 돌발 사고는 매년 2000건 이상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우는 당사자들에게 반려동물은 가족의 일원이자 하나의 인격체로 받아들여진다. 평소 많은 존경을 받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신도에게 화를 낸 사연이 밝혀졌는데, 그 이유인즉슨 한 성도가 개 한 마리를 자신에게 데리고 와 “내 아기를 축복해주세요”라고 한 데 대한 반응이었다. 교황은 “많은 어린이가 굶주리고 있는데 나에게 개를 축복해달라고 데려왔느냐”고 버럭 화를 냈다. 아이를 낳지 않고 반려견을 기르는 것은 이기적인 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물론 아이를 가지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사람들과 반려동물의 실제적인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까지 싸잡아 비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게다가 출산을 기피하는 현상은 이제 단순히 개인의 선택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로 봐야 한다.

임신한 암컷이 외부 환경의 변화에 따라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인 ‘브루스 효과’를 처음 발견한 영국 동물학자 힐다 브루스(1903~1974).

현대인의 출산 기피는 복합적인 사회 현상이지만 생물학적으로 환원하면 이유는 명료해진다. 영국의 동물학자 힐다 브루스는 실험실에서 새끼를 밴 암컷이 새로운 수컷과 함께 살게 될 경우 자발적으로 유산하는 현상을 발견하여 일찍이 ‘네이처’에 보고한 바 있다. 이른바 이 ‘브루스 효과’가 최근에 야생 원숭이들 가운데서도 관찰되어 ‘사이언스’에 발표되었다. 한 원숭이 집단을 새로운 알파 수컷이 장악하자 놀랍게도 그 수컷이 집권한 당일에 암컷들이 일제히 유산을 했는데, 유산하지 않은 두 마리 가운데 하나는 재빨리 배란의 징후를 보여 임신 상태임에도 새 수컷과 짝짓기를 하였고, 그런 기만 행위를 하지 않은 다른 암컷은 결과적으로 그 수컷에게 아이를 잃고 말았다. 이는 암컷들의 몸에서 손익계산의 결과에 따라 작동하는 진화적 메커니즘이다. 태어나면 어차피 새로운 수컷에게 죽임당할 새끼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음 번식 기회를 찾는 편이 자원과 에너지 측면에서 유리하기 때문이다. 물론 동물들이 의식적으로 내리는 결정이 아니라 새로 등장한 수컷이 분비하는 페로몬이 암컷의 몸에 생리학적 반응을 일으켜 벌어지는 일이다.

인간 사회도 마찬가지다. 인류의 역사를 통틀어 어린이는 살해당할 위험이 가장 높은 집단이었는데, 그 가해자의 대부분은 다름 아닌 부모였다. 원시적인 수렵채집 혹은 산업화 이전의 농경 사회에서는 특히 여자아이의 살해가 주기적으로 행해졌다. 어차피 모두를 생존시키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사냥이나 농사일을 할 수 있고 방어 능력이 있는 사내아이가 가족의 생존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다. 영아 살해는 산업화된 사회를 포함하여 전 세계 모든 문화권에 걸쳐 발생한다. 부부 진화심리학자 마틴 데일리와 마고 윌슨이 쓴 명저 <살인>은 문명사회에서의 영아 살해 역시 번식 가치에 대한 손익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주변 상황이 좋지 않거나, 아기가 기형이나 장애 등 결함이 있을 때, 그리고 전반적으로 아이가 어려 아직 투자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와 어머니가 나이가 어려 다음 임신 기회가 많을 때 살해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오늘날 많은 가임기 부부들이나 결혼적령기 남녀들은 일종의 ‘사회적 브루스 효과’를 겪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즉 과잉된 교육열로 인한 교육비 부담, 과도한 경쟁과 점점 커지는 빈부의 격차,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을 비롯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이, 마치 암컷 원숭이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새로운 알파 수컷이나 우리 인간 선조들의 생존을 늘 위협했던 가혹한 자연환경과 마찬가지로 다가와, 이들이 자녀를 가지는 것 혹은 아예 가정을 만드는 것 자체를 포기하게 하는 것이다. 다만, 태어난 아이들을 죽이는 대신 애초에 생기지 않게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러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여전히 많은 젊은 남녀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갖기 원하지만, 그중 많은 이들에게 가정을 꾸리고 특히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하나의 사치로 여겨진다.

마틴 데일리(오른쪽)와 마고 윌슨 부부. 저명한 진화심리학자인 두 사람은 1988년 출간한 공저 <살인>에서 자연 상태나 원시 부족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서도 영아 살해가 경제적 여건을 비롯한 주변 상황, 아기의 건강 상태 등 번식 가치에 대한 손익계산에 따라 이루어진다고 주장했다.

반려동물을 키우려는 욕구도 생물학적으로 자명하다. 진화가 고안해낸 사랑이란 사실 유전자가 자신의 번식을 위해 사용하는 속임수다. 다시 말해, 번식에 관련된 사랑은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 작동하는 신경기관의 메커니즘이다. 사랑을 가장한 유전자의 책략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 바로 남녀가 사랑에 빠졌을 때다. 사랑에 빠진 인간의 뇌 속 신경전달물질은 마치 마약처럼 작동하며, 중독과 같은 이러한 자기만족은 성관계의 쾌락에서 절정을 맞게 된다. 누군가를 (혹은 무엇인가를) 양육하면서 느끼는 사랑도 같은 맥락이다. 신경과학자들은 어미 쥐가 새끼를 핥아줄 때마다 어미 쥐의 뇌에서 도파민 분비가 유도된다는 것을 관찰했다. 도파민은 뇌의 보상체계에서 작동하는, 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이다. 즉 어미의 뇌는 자식을 돌보면서 스스로 만족감을 느끼도록 진화해온 것이다. 특히 인간에게는 모든 대상을 의인화하려는 본능이 있어서, 반려동물의 모든 행동을 인간의 관점으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실제로 개나 고양이를 어루만지기만 해도 사람의 뇌에서는 도파민뿐 아니라 옥시토신과 세로토닌 등이 분비된다. 옥시토신은 엄마와 아기의 유대 관계가 깊어질수록 더 많이 분비되어 사랑 호르몬이라고도 불리는 물질이다. 교황을 화나게 한 그 여인처럼 반려견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새끼’라고 하는 것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이렇게 보면 애 키우기나 개 키우기나 생물학적으로는 유전자가 심어놓은 자기만족 메커니즘에 놀아나는 것이라는 면에서는 동일할지 몰라도 사회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완전히 다르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반려동물 자식들은 키우는 당신 외에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안 되지만, ‘싸가지 없는’ 어린이는 커서 당신이 사용할 상품을 만들거나 유통하거나 서비스를 제공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사회 및 복지 인프라를 구축하며, 당신의 건강과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건강보험과 연금을 제공하는 등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될 것이다.

저출산으로 발생하는 문제는 한 나라의 존폐를 가를 만큼이나 심각하다. 인구구조의 고령화는 복지 수요를 증가시키고, 조세 부담을 유발하며,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의 안정성에 커다란 위협이 된다. 자금을 보유한 은퇴 인구에 비해 생산활동 인구는 부족하므로 투자할 돈은 많으나 투자할 곳이 없다. 이에 따라 이자율은 떨어지며 이는 저축을 해야 하는 생산활동 인구의 재정 안정성을 약화시키고 이는 다시 투자 감소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인공지능과 로봇을 비롯한 기술의 발전이 생산성 하락을 상쇄시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그러나 혁신적인 기술의 개발은 젊은이들의 몫이다. ‘결정성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과 달리,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내는 ‘유동성 지능(fluid intelligence)’은 젊은 뇌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노벨상 수상자들이 나이가 많다고 해서 그들이 늦은 나이까지 수행한 오랜 연구가 축적되어 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대개 젊은 시절에 성취한 혁신적인 연구 업적이 장기간 사회에 미친 영향력이 높게 평가되어 수상하는 것이다. 최근 한 연구에서는 40년 동안 발생한 300만개의 특허를 분석하였는데, 분야에 따라 다르지만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가장 활발한 발명이 이루어지고, 특히 근본적인 변화를 유발하는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은 젊은 나이에 집중적으로 개발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문제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으면서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실상은 출산, 양육, 보육 지원과 가족복지 등 직접적인 예산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게다가 미래의 국가 생산성 확보를 위한 장기적인 안목도 없어 보인다. 2024년 정부 예산안을 보면 총지출 규모가 2.8% 증가하여 책정된 가운데 지출항목 중 오로지 연구·개발과 교육 예산만 각각 16.6%, 6.9% 삭감된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과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는 저출산으로 겪게 될 생산성 저하를 막을 수 있는 가장 핵심적인 두 개의 방편인데도 말이다. 이미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 대비 공교육에 대한 지출 비중이 매우 낮다. 또한 33년 만의 국가 연구·개발 예산 대규모 삭감이 연구 생태계에 미칠 장기적 폐해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돈만 있으면 제일 행복한 나라가 한국이라는 농담이 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노후에 아무리 돈이 많아도 행복은커녕 공급 부족으로 원하는 것도 얻지 못하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살다가, 심지어 의료 기술과 서비스의 부재로 돈을 쌓아두고 일찍 죽을 수밖에 없는 세상이 오고 있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은 모두 10명의 자식이 있었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 “How paramount the future is to the present when one is surrounded by children.”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는 미래가 현재에 가지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 어린이들을 바라볼 때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한 좋은 미래를 만들기 위해 지금 노력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한다. 반대로 주변에 점점 어린이가 사라져가는 이즈음 우리가 미래를 대비해야 할 이유는 바로 기성세대 자신들을 위해서다.

■최정균 교수



카이스트 교수로 2009년부터 재직하며 인간유전체학을 연구하고 있다. 연구목표는 암을 비롯한 여러 질병의 유전학적 원인 규명과 진단 및 치료기술 개발이며, 진화론을 접목하고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데 관심이 많다. 아산의학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선정 과학기술인상을 포함해 여러 학회의 학술상을 수상하였고, 과학기술한림원 선도과학자, 포스코사이언스펠로십에 선정된 바 있다.

최정균 카이스트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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