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나눔 철학 이어 ‘아름다운 동행 30년’ [뉴스 투데이]

삼성화재 안내견 학교 기념식
1993년 ‘신경영 선언’ 발맞춰 설립
안내견 양성… 시각장애인 삶 개선
누적분양 280두·훈련거리 81만㎞
李 “‘개에 투자’ 비난도 들었지만
기업이 사회 환원해야” 생전 강조
행사장 안내견들 애틋한 사연에
이재용 회장·홍라희 여사도 눈물

삼성 안내견 사업이 30주년을 맞았다.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은 1993년 6월 ‘신경영’ 선언에 이어 같은 해 9월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설립했는데, 단일 기업이 운영하는 세계 최초이자 유일의 안내견 학교다.

삼성은 19일 경기도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퍼피워커’(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돌봐주는 자원봉사자)와 시각장애인 파트너, 은퇴견 입양가족 등이 참석한 가운데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을 열었다. 행사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을 비롯해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시각장애인 파트너인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 정의당 배진교 의원,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재용 회장이 안내견학교 행사에 참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라희 전 관장도 2017년 이후 6년 만에 공개행사에 나섰다. 기념식에서는 이건희 회장의 안내견 사업에 대한 신념, 안내견 사업 이후 사회 변화 등의 성과를 되돌아보는 영상이 상영됐다.

“우리가 시각장애인의 눈” 19일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새롭게 활동을 시작하는 안내견들과 시각장애인 파트너,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김예지 국민의힘 의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 윌리엄 손튼 세계안내견협회장, 홍원학 삼성화재 사장, 박태진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교장. 삼성전자 제공

이건희 회장은 미발간 에세이 ‘작은 것들과의 대화’에서 “(인식과 관습을 바꾸는) 문화적 업그레이드야말로 사회 복지의 핵심이고, 그것이 기업이 사회에 되돌려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인 재투자”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복지 재단이 많이 설립돼 편의를 도모한다고 해도 정작 장애인이 거리에 나섰을 때 그들을 대하는 일반인의 눈이 차갑다면 그런 사회를 두고 복지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고 강조했다.

안내견학교 설립 과정엔 우려와 난관이 이어졌다.

세계안내견협회(IGDF)에는 정관 규정이 따로 없었다. 이건희 회장도 에세이에서 “일부에서는 사람도 못 먹고 사는 판에 개가 다 뭐냐는 공공연한 비난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고 회고했다. 협회는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의지와 삼성의 진정성을 확인하고 정관을 변경, 1999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를 공식 안내견 양성기관으로 인증하고 협회 정회원으로 받아들였다.

유럽·미국의 안내견 훈련법을 벤치마킹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1994년 첫 안내견 ‘바다’ 이래 매년 12∼15두를 분양하고 있다. 지금까지 280두의 안내견을 분양했고, 현재 76두가 활동한다. 안내견은 퍼피워킹 1년과 전문훈련 8개월, 시각장애인 매칭·교육 2개월을 거쳐 안내견 활동을 하게 되고, 만 8세 무렵 은퇴한다. 지난 30년간 안내견 양성을 위해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의 안내견 훈련사가 예비 안내견과 걸어온 길은 약 81만㎞에 달한다.

삼성화재 안내견학교는 일반인 대상으로 한 시각장애 체험 행사 등 장애인과 안내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2002년 IGDF 공로상을 받았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윌리엄 손튼 IGDF 회장은 30년간 삼성의 노력을 평가하는 감사패를 전달했다. 손튼 회장은 “삼성화재 안내견학교가 세계적인 기관으로 성장한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

삼성 안내견과 함께하고 있는 시각장애인 파트너 4명은 안내견 사업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표하는 축하 공연을 했다. 지난 2개월간 연습해 실력을 갈고닦은 파트너 앙상블은 용기와 희망을 주는 팝송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 등 2곡을 연주했다. 안내견 ‘조이’와 함께 등장해 피아노를 맡은 김예지 의원은 “오랜 시간 안내견과 함께해 온 만큼 이번 공연은 더욱 특별하다”고 말했다. 김 의원을 만난 홍라희 전 관장은 “회장님(이건희 회장)이 살아계실 때 정말 관심 많으셨다. 오늘 행사 보셨으면 더 좋아하셨을 것”이라고 반겼고, 이재용 회장도 김 의원에게 “오늘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조이는 어디 있나요”라고 환영의 뜻을 표했다고 한다.

이건희 선대 회장이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길러지는 리트리버를 돌보는 모습. 삼성전자 제공

이날 기념식에서는 ‘안내견 분양식과 은퇴식’도 진행됐다. 퍼피워커의 손을 떠나 안내견으로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강아지와 7~8년간 안내견 활동을 마치고 반려견으로 삶을 시작하는 은퇴견이 주인공이다.

행사장은 안내견들의 애틋한 사연들로 눈물바다가 됐다. 어린 강아지를 안내견으로 성장시키는 역할의 자원봉사자인 퍼피워커들은 자식을 입양 보내는 듯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 홍 전 관장과 이 회장도 퍼피워커들과 시각장애인 파트너들 사연에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참석자 일부는 눈물을 감추려 잠시 행사장을 벗어나기도 했다.

이날 퍼피워커를 떠난 안내견 8두는 시각장애인 파트너 8명과 새 출발을 했고, 안내견으로서의 삶을 끝낸 은퇴견 3두는 입양가족과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박태진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교장은 “이건희 회장의 혜안과 신념, 그리고 모든 이들의 사랑과 헌신이 삼성 안내견 사업을 가능하게 했다”며 “이 같은 아름다운 동행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영 기자 sisley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