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박람회가 정쟁 도구인가

김광수 2023. 9. 19.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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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프리즘]

지난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부산시 제공

[전국 프리즘] 김광수 | 전국부 선임기자

“모든 권한을 중앙이 움켜쥐고 말로만 지방을 외치던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겠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4일 부산국제금융센터(BIFC)에서 열린 ‘지방시대 선포식’에서 문재인 정부를 에둘러 비판하며 부산·울산·대구·대전·광주 등 5대 광역시에 판교테크노밸리와 같은 특별구역 등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발언을 곧이곧대로 믿는 부산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역대 정권이 지역균형발전 운운하며 숱한 정책과 공약을 쏟아냈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기 때문이다. 부산의 여러 경제·사회적 지표를 보아도 그렇다.

도시 성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는 인구 변동이다. 부산시도 다른 비수도권 시·도처럼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데 특히 고령화가 심각하다. 통계청의 5년 단위 인구총조사가 시작된 1975년 부산 인구 245만명 가운데 0~19살은 48.4%, 65살 이상은 1.9%였는데, 2020년(339만명)엔 0~19살이 14.8%, 65살 이상이 19.3%였다. 노인 인구 비중이 전국 평균(15.9%)보다 3.4%포인트나 높다. 게다가 그 이듬해엔 7대 특별·광역시 가운데 가장 먼저 초고령사회(65살 이상 인구 20% 이상)에 진입했다. 부산 사람들이 ‘부산엔 노인과 바다만 있다’고 자조 섞인 말을 내뱉는 이유다.

부산의 노쇠화 원인은 저출산도 있지만 젊은층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것이 결정적이다. 출산율을 높이려면 일단 젊은층이 많아야 하는데 부산 젊은이들은 대학을 졸업하면 부산을 떠난다.

2017~2021년 5년 동안 시·도별 공학·자연계열 과학기술 인재 순이동자수(순유출자수)와 부산 순유출자 현황. 부산산업과학혁신원 제공

젊은층의 탈부산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 부족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에서 대학을 나와봤자 갈 곳이 없기에 졸업장을 따면 앞다퉈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난다.

부산시 산하 부산산업과학혁신원(BISTEP)이 지난 7월 펴낸 ‘부산시 과학기술인재 취업이동 특성과 과제’ 보고서를 보면, 2017~2021년 부산지역 대학 24곳의 공학·자연계열 과학기술 분야 학·석·박사 졸업자 8만7920명 가운데 4만5569명(51.8%)이 취업했고 이 가운데 63.3%(2만8862명)가 다른 지역으로 떠났다. 같은 기간 부산으로 유입된 7227명을 뺀 과학기술 인재 순유출은 2만1635명이었다. 두번째로 순유출이 많은 경북(1만2600명)에 견줘 1.7배나 많다. 부산에서 순유출된 과학기술 인재 2만1635명의 60.6%(1만3118명)는 수도권 기업에 안착했다.

부산시가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전력투구하는 이유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 기대감 때문이다. 20여년 동안 논란 끝에 2029년 12월 개항이 확정된 가덕도 신공항과 부산 북항 재개발도 2030년 세계박람회와 맞닿아 있다. 부산시는 2030년 세계박람회를 유치해 국제관광도시로 도약하고 금융·하이테크 등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구조 재편을 꾀하려 한다.

하지만 정치권은 염불보다는 잿밥에 마음을 두는 모양새다. 2030년 세계박람회 유치에 성공하면 내년 4월 총선 때 누가 유리할 것인지 주판알이나 튕기고 있다.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사태와 관련해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변인이 “부산엑스포 유치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고 본다. 부산엑스포 유치를 못 하면 지금 정부의 책임”이라고 한 것이나, 국민의힘이 민주당의 실책을 기다렸다는 듯이 김 원내대변인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한 것도 잿밥에만 관심을 두는 것으로 비친다.

2030년 세계박람회 개최 장소는 11월28일 결정된다. 이제 70일 남았다. 정부와 부산시는 강력한 경쟁도시인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를 앞서고 있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낙관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부산시 관계자는 “1차 투표에서 이긴 도시가 결선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1차 투표에서 1등을 하려고 열심히 뛰고 있다. 부산의 미래와 대한민국의 균형발전이 걸린 만큼 정치권이 세계박람회를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 여야 정치인들은 얼마나 화답할 수 있을까.

k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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