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팅하우스 소송 각하… K원전 수출 한 고비 넘었다
미국 원전 회사인 웨스팅하우스가 “한국수력원자력이 원전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며 미국 법원에 제기한 소송이 각하됐다. 이번 법원 판결로 한국 원전 수출에 큰 걸림돌이 사라지게 됐다. 다만 미국 법원이 핵심 쟁점인 한국형 원전 기술에 대한 지식재산권이 누구에 있는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내리지 않았고, 웨스팅하우스의 항소 가능성도 있어 한·미 정부 간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이 더욱 중요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9일 한국수력원자력 등 원전 업계에 따르면 미 워싱턴 DC. 연방지방법원은 18일(현지 시각) 웨스팅하우스가 한수원을 상대로 낸 소송을 각하했다. 웨스팅하우스는 지난해 10월 한수원이 폴란드와 체코 등에 수출하려는 한국형 원전(APR-1400)이 미국 법에 따른 수출 통제 대상인 자사 기술을 사용했다고 주장하며 미국 정부 허가 없이는 수출하지 못하게 해달라는 내용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미국 법원은 원전 수출 통제권은 전적으로 미국 정부에 있기 때문에 민간 업체인 웨스팅하우스는 소송을 제기할 자격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했다.
◇1987년 기술 도입… 2017년까지 국산화 완료
웨스팅하우스는 원전 3대 핵심 기술로 꼽히는 원자로 냉각재펌프(RCP)와 원전계측제어시스템(MMIS), 원전설계핵심코드 등을 포함한 원전 설계·건설을 위한 한수원 기술에 자사 기술이 적용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내 원전 업계가 걸음마 수준이던 1980년대에는 미국 기술에 의존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다.
원전 기술 자립에 나선 한전은 1987년 한빛(옛 영광) 3·4호기 건설을 추진하면서 미국 원전 회사인 CE와 기술 도입 계약(TTA·Technical Transfer Agreement)을 맺었다. 10년 계약이 끝난 1997년에는 유럽의 다국적 회사인 ABB에 인수되면서 이름을 바꾼 ABB-CE와 기술사용협정(LA·License Agreement)을 맺고 한국형 원전(APR-1400) 개발을 위한 기반을 마련했다. 한수원은 협정이 만료된 2007년부터는 국내 원전 업체들과 3대 핵심 기술을 비롯한 원전 기술 개발에 나섰고, MMIS는 2010년, RCP는 2012년, 원전설계핵심코드는 2017년 국산화했다. 정용훈 KAIST 교수는 “소송을 제기한 웨스팅하우스는 2000년 ABB-CE를 인수하며 족보만 확보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한국형 원전 수출에는 우리가 독자 개발한 기술로도 충분하다”고 했다. 국산화가 추진되던 2009년 UAE(아랍에미리트) 바라카 원전 수출 당시에도 원천 기술 문제가 불거졌는데 당시에는 한전을 주축으로 한 팀 코리아가 RCP와 터빈 기자재 등을 웨스팅하우스 측으로부터 구매하면서 기술 사용 문제를 풀었다.
◇큰 장애물 제거한 수출… 변수는 아직 남아
미국 법원 판결로 웨스팅하우스가 우리 원전 업계를 압박해온 지식재산권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지만, 원전 수출에는 한결 부담을 덜었다는 관측이 나온다. 만약 미 법원이 웨스팅하우스의 주장을 받아들여 수출 통제 대상으로 인정했다면, 한전과 한수원 등은 앞으로 원전을 수출할 때마다 미국 정부는 물론 경쟁사인 웨스팅하우스의 ‘허락’을 받아야 할 가능성이 컸다. 정범진 경희대 교수는 “세계 원전 수출 시장에서 우리를 견제해온 웨스팅하우스의 방해를 뿌리쳤다고 볼 수 있다”며 “체코, 폴란드 등 원전을 건설하려는 국가들도 이번 뉴스를 중요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식재산권을 둘러싼 분쟁은 중재를 통해 결론이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수원과 한전은 웨스팅하우스가 지난해 10월 소송을 제기하자 같은 달 국내에 있는 대한상사중재원에 지식재산권과 관련해 중재를 신청하고, 미 법원에도 중재를 통해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한편, 기술력과 경제성에서 세계 최고인 국내 원전 업계의 신시장 진출을 막기 위해 웨스팅하우스가 항소를 비롯한 다른 카드를 꺼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 원전 업계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는 어떻게든 한국형 원전이 유럽에 진출하는 것을 막으려 한다고 한다”며 “양측이 협상을 계속하면서 정부 간 채널에서도 양국이 윈윈하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