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불공정 거래 탓에”…부동산 신탁사, 피소액만 2조2천억원
3년 새 50%나 급증...영세 시공사들 “부당 계약서 피해” 호소
부동산 신탁사의 불공정 거래 등으로 인한 피해 (경기일보 4일 인터넷 <“신탁사는 고의, 중대한 과실만 책임”?> 참조)가 날로 커지는 가운데,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을 상대로 제기돼 진행 중인 소송 건수가 2500건에 육박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송 가액은 무려 2조2천400억여원에 달하며, 이는 최근 3년 새 50% 증가한 수준이다.
막대한 소송전의 원인을 두고 다양한 분석이 나올 수 있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신탁사와 계약 관계에 있는 위탁자(토지소유주)와 수익자 등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건설·시공사들도 불공정 거래로 인한 피해를 입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일각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와 금융위원회 등 국가기관들이 신탁사들의 고질적인 불공정 거래서 등 피해 실태를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정작 현장에서 불공정 거래 개선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 신탁사 14곳, 피소 건수 2499건…3년 새 20% 늘어
19일 기자가 국내 부동산 신탁사 14곳의 영업보고서를 확인한 결과, 올해 6월 말 기준 신탁사의 피소(被訴) 건수는 2천499건에 이른다. 이는 3년 전인 2020년 6월 말 2천68건과 비교하며 20.8% 증가한 수준이다.
전체 소송 가액 규모는 무려 2조2천404억5천600만원에 달한다. 이는 신탁사 한 곳당 평균 1천690억원 꼴이다.
피소 건수별로 보면 ▲무궁화자산신탁이 381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신한자산신탁, 우리자산신탁 각 341건 ▲코리아자산신탁 239건 ▲교보자산신탁 237건 ▲하나자산신탁 232건 순이었다.
피소 건수가 많은 신탁사일수록 대체로 소송 가액도 많았다. ▲우리자산신탁이 3천15억5천900만원으로 규모가 가장 컸다. 이어 ▲무궁화자산신탁(2천843억1천500만원) ▲하나자산신탁(2천817억7천200만원) ▲신한자산신탁(2천495억9천100만원) 등도 2천억원대로 집계됐다.
이들 신탁사들에 비해 소송 건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한국자산신탁도 소송액이 2천억원대를 웃도는 2천83억6천만원(178건)으로, 건수 대비 소송액이 월등히 많았다.
부동산 신탁사의 전체 소송액 기준으로는 2020년 6월 말(1조4천946억7천만원)과 비교해 무려 50% 증가했다. 신영투자신탁의 경우 피소 가액은 3년 전 34억2천700만원에서 326억6200만원으로 가장 큰 증가세를 보였다. 3년 전 소송 건수가 ‘0건’으로 신고한 한국투자부동산신탁은 34건(238억8천300만원)을, 당시 6건(34억2천700만원)을 신고한 신영부동산신탁은 54건(326억6천200만원)을 각각 공시했다.
공정위로부터 개발신탁계약서의 불공정 약관에 대해 ‘시정권고’(2019년)와 ‘시정명령’(2021년)까지 받은 ▲한국자산신탁의 경우 피소 건수는 준 반면 소송액은 221.6% 증가하면서 3년 새 증가 폭이 컸다. 이어 ▲하나자산신탁 112.9% ▲KB부동산신탁 92.4% ▲코리아자산신탁 74.7% 순으로 소송액이 상대적으로 크게 늘었다.
■ 신탁사 “사업 안 풀리니 소송” vs 건설업계 “갑질 계약서 탓”
부동산 신탁사 측은 소송 증가세에 대해 불공정 계약서 등의 문제보다는 부동산 신탁사업의 특성과 최근 부동산 경기 침체를 이유로 먼저 꼽는다. 특히 신탁사 입장에서 ‘책임준공확약’ 등으로 인한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화로 인해 자신들도 부실을 떠안고 있다는 입장이다.
신탁사 한 관계자는 “(신탁사에 대한 피소는) 공사비가 대규모로 투입되는 특성이 있는 만큼 소송 가액이 클 수밖에 없다”면서 “계약 조항의 (불공정) 문제라기보다는 최근 들어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저조한 분양 등 사업이 잘 안 풀릴 때 (상대방에 대한) 불만이 생기고 덩달아 소송도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업계 일각에서는 부동산 신탁업 구조에서 사실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갑’인 신탁사(수탁자)가 계약서상 ‘일체 이의 제기 금지’ 조항 등 불공정 약관을 이용해, 위탁자나 수익자 등 투자자, 시공사 등에 책임을 전가하며 부당 이익을 챙기는 구조 때문이라는 입장이다.
일반적으로 신탁사업은 부동산 개발사업에 대한 전문성이 부족한 위탁자 등 투자자들을 대신해 금융투자업자인 부동산 신탁사가 토지의 명의까지 이전받아 사업시행자로서 의사결정권을 갖고 사업 전체를 이끌어 간다. 그만큼 사업 진행 전반에서 신탁사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에 따라 대부분 신탁사를 통해 공사를 수주하는 중·소형 시공사들도 불공정 거래 등으로 인한 피해를 주장해 왔다.
신탁사로부터 사업 수주를 받는 시공사들은 상대적으로 중·소 규모 업체들로 신탁사들의 눈치를 봐야 하고, 신탁사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한 불법적인 약관을 ‘특약사항’에 넣어 계약, 운용하는 피해에 대해서도 법적 구제를 받기 어렵다는 게 건설업계 측 입장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측이 2020년 12월 작성한 ‘부동산 신탁계약의 공정성 제고를 위한 입법적 개선 방안’에 따르면, 연구원 측이 신탁사와 시공사들이 사용한 계약서들을 검토한 결과 ‘이중계약’ 구조나 ‘계약 상대방에 대한 일방적 의무 부과 및 구속력’ 등 시공사 측에 불공정한 조항들이 다수 포함돼 있었다.
특히 보고서에서 연구원 측은 “(계약서상) 관계 법령상 무효로 간주될 수 있는 다수의 불공정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면서 “민법과 건설산업기본법, 약관 규제에 관한 법(약관규제법) 등에서 불공정 약관으로 규정하는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연구원 측은 “통상적인 사인 간 계약서에서 법적 효력이 인정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불공정한 내용들이 신탁사업약정서와 공사도급(승계) 계약서 주계약 및 특약 안에 포함돼 있다”면서 “신탁회사가 부담해야 할 각종 책임을 시공사에게 전가하거나 시공사나 하도급자에게 당연히 인정되는 법상 권리를 부인하는 등 불합리한 내용들이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 시공사는 ‘신탁사 눈치보기’…“실태 파악해 공개해야”
신탁사와의 부당한 계약으로 인한 피해가 막대하지만, 시공사 입장에서는 ‘업계 퇴출’ 우려 등으로 인해 ‘눈치보기 대응’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한 상태에서 뒤늦게 법적 대응을 해도 피해를 입증받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한계를 우려한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신탁사와 부당한 계약서를 쓰고 공사를 하다 피해를 봐도 수주가 생명인 시공사 입장에서는 조심스럽게 대응할 수밖에 없다”면서 “영세한 시공사 입장에서는 계약서가 불공정한지 분석을 잘하지 못하거니와 불공정하더라도 사인을 한 마당에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겠느냐며 (신탁사에) 사정만 하는 처지가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쌍방이 합의한 계약서라고 하더라도 약관 규제에 관한 법률(약관법) 6조와 14조 등 강행 법규에 해당하는 ‘당연 무효’ 조항이 있다면 계약 자체까지 ‘무효’가 될 수 있는 만큼 불공정한 약관(특약사항) 개정, 불공정 약관 정보 등의 공개와 법 개정 등 국가기관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시공사들은 공사 중단이나 시공사 교체 등과 관련한 부제소(不提訴) 합의 등 불공정 계약 조항에 대한 피해를 주되게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조항은 ‘시공사의 공사 중단 시 시공사의 권리행사가 즉시 중단되도록 하는 조항’이나 ‘수탁자(신탁사)의 시공사 임의 교체와 그에 따른 공사비 증가 등에 대해 일체 이의 제기를 금지하는 조항’ 등이다.
하지만 이미 공정위는 해당 조항들과 관련해 지난 2019년 5월 신탁계약서상 ‘약관’과 ‘특약사항’ 등 총 13개 조항을 ‘불공정 약관’으로 ‘무효’라고 판단하고 시정권고한 바 있다.
결국 부동산 신탁사업의 분쟁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감독기관인 공정위와 금융위원회 등이 불공정 계약서 실태 파악 등을 적극 나서는 한편, 불공정 약관 공개와 개선, 사업자의 시정명령 불이행 시 위법 행위에 대해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다.
공정위로부터 시정권고와 무효 심결을 받아낸 정유경 씨는 “금융위와 공정위, 금감원 등 국가기관은 신탁계약의 불법을 알고 시정한다고 했으면서도 신탁사에게 유리하게 다시 ‘불법 약관’을 개정 인가했다”면서 “지금까지도 국가기관들이 약관의 변경 사실을 고객들에게 고지, 설명하지 않는 위법은 결국 금융 약자인 국민이나 중·소 시공사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원인이 되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부동산 신탁사업에서 불공정 거래가 오랜 동안 지속돼 왔지만 막상 현실에서는 제대로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부동산 신탁업의 PF 부실화 등이 결국 영세한 시공사로 피해가 쏠리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김 연구위원은 “공정위와 금융위, 국토교통부 등 국가기관들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도 원인 중 하나”라면서 “국가기관들이 불공정 거래 실태를 파악, 공개하고 피해 예방과 구조를 위한 개선책을 적극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승욱 기자 gun2023@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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