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를 장애인 아닌 반려동물 보호자로 봐줘요” 삼성 ‘안내견’이 만든 기적 [비즈360]
세 곳의 가정 거치는 안내견 생애
“‘도구’ 아닌 동지이자 가족”
[헤럴드경제=김민지 기자] 삼성의 안내견 사업이 30주년을 맞았다. 1993년 설립된 삼성화재 안내견학교 학교에서 매년 분양되는 안내견은 12~15마리. 현재 활동 중인 안내견은 76마리다.
1993년 신경영 선언 후 첫 사회공헌 사업으로 안내견 사업을 시작한 이건희 회장은 안내견 사업이 우리 사회의 복지 마인드를 한 수준 높이는 데 기여하리라고 확신했다. 이후 30년이 지나 실제로 시각장애인 및 안내견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데 기여하게 됐다.
19일 용인 삼성화재 안내견학교에서 열린 삼성 안내견 사업 30주년 기념식에는 최근 새롭게 활동을 시작한 안내견들과 시각장애인 파트너들이 참석했다.
참석자 중 한명인 이경석 씨에게 안내견 ‘단풍’이는 동지이자 가족이다. 안내견은 안전한 보행을 돕고, 이 씨는 안내견의 식사·목욕부터 산책 등 운동까지 ‘웰빙'을 책임진다. 단풍이는 이 씨의 출퇴근 길과 산책은 물론, 이 씨가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실 때에도 함께 한다.
단풍이는 이 씨에게 두 번째 안내견이다. 숭실대에 입학한 뒤 혼자 통학하기 위해 첫 안내견 ‘해담’이를 분양받은 이후 안내견과 계속 동행해왔다.
해담이와 단풍이는 이 씨가 세상을 인식하는 창(窓)이자, 이 씨와 타인의 마음을 이어주는 통로다. 이 씨는 “안내견과 함께 있을 때 사람들은 나의 장애를 보기보다 강아지를 먼저 보고 더욱 쉽게 마음을 열어준다”며 “안내견과 동행한 이후 나는 ‘장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있다”고 말했다.
안내견이 은퇴하는 나이는 평균 7~8세다. 안내견의 소임을 다하면 일정한 요건을 갖춘 가정에 입양돼 여생을 보낸다.
이 씨의 부모님은 이 씨의 첫 안내견 해담이가 은퇴한 뒤 또 한 명의 가족으로서 돌봐주고 있다. 이 씨는 “해담이를 계속 책임지고 싶어 처음에는 단풍이를 분양받지 않으려 했지만 직장에 다니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신청했다”고 했다.
이 씨는 주말마다 단풍이를 데리고 부모님과 해담이가 있는 서울 홍은동 본가로 간다. 단풍이는 해담이를 만날 때마다 꼬리가 떨어져라 흔들며 반갑게 인사하고 즐겁게 뛰논다.
이 씨와 한 팀이었던 해담이는 이제 이 씨의 부모님 품 안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이 씨의 부친은 거의 매일 해담이를 데리고 집 근처 북한산 자락길과 홍제천을 산책한다. 해담이는 하루 종일 자연을 즐기고 배불리 먹으며, 편안히 잠든다.
이 씨는 “안내견은 도구가 아니라 가족”이라며 “내 곁에 있어 준 해담이와 끝까지 행복하게 함께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 마리 안내견이 성장하기까지는 많은 이들의 손길이 필요하다. 미래의 안내견이 태어나 거치는 가정은 약 세 곳이다. ‘퍼피워커’로 불리는 자원 봉사자 가정, 시각장애인 가정, 은퇴견 입양 가정이다. 약 2년의 훈련, 7~8년의 안내견 활동, 은퇴 뒤 노후 돌봄 등 10년이 넘는 기간동안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태어난 강아지는 두달 간 안내견학교에서 키운 뒤, 이후 약 1년간 ‘퍼피워커’ 가정에 맡겨진다. 퍼피워커는 시각장애인의 안내견이 될 강아지가 자연스럽게 사회화될 수 있도록 자신의 집에서 돌봐주는 자원봉사자들이다.
김인성 씨는 이제 태어난 지 16주된 예비 안내견 ‘소담’이의 퍼피워커다. 김 씨는 하루 3차례 소담이를 산책시킨다. 식사는 하루 4번. 배변 훈련도 진행 중이다. 신호에 맞춰 배변할 수 있도록 늘 “하나 둘, 하나 둘” 소리를 내어 배변을 유도하고 있다.
소담이의 가장 중요한 도전과제는 ‘똑바로 걷기’다. 소담이가 한눈을 팔고 방향이 바꾸면, 목줄을 쥔 김 씨는 억지로 줄을 당기거나 다그치지 않고 가만히 서서 기다린다. 바른 경로로 소담이가 돌아오면 김 씨는 작은 간식으로 소담이를 칭찬해준다.
이 같은 기초 훈련을 안내견의 사회화라 부른다. 사회화는 집과 공원 뿐 아니라 마트에서도, 카페에서도 이어진다. 사람이 많고 시끄러운 곳에서도 파트너에게 집중하고 마치 한 몸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어릴 때부터 교육하는 것이다.
김 씨에게 소담이는 네 번째 안내견이다. 1년 간 정든 강아지들을 떠나보내야 하는, ‘예정된 이별’이 가슴 아프지만, 김 씨는 매년 퍼피워킹에 나선다.
김 씨는 “정식 안내견 훈련을 받기 위해 떠나 보내며 정 떼는 순간이 너무 힘들고 슬프다”면서도 “퍼피워킹을 시작한 이후 아직 우리 사회가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 눈에 띄어서 힘 닿는 데까지 퍼피워킹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퍼피워킹’ 봉사 참여 가정은 현재까지 총 1000여 가구에 이른다. 지금은 퍼피워킹 신청을 하면 2년 가량 대기해야 할 정도로 관심이 높다.
퍼피워킹 가정을 떠난 예비 안내견들은 안내견학교에서 훈련을 거친다. 24시간 일대일 케어다. 첫 2주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 학교에 입소해 교육을 진행하고, 나머지 2주는 훈련사가 시각장애인의 거주지 근처에 숙소를 마련해 아침부터 잠들 때까지 모든 생활을 같이 한다.
각종 훈련을 거쳐 정식 안내견이 되는 개는 1차 합격한 개들의 30~35% 밖에 되지 않는다. 1년에 분양되는 안내견은 평균 12~15마리다. 국내 시각장애인 수가 4만6000명에 달하는 것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안내견학교의 규모가 큰 영국에서는 매년 800~900마리의 안내견이 분양된다고 한다.
jakmee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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