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 시대 다시 온다면… 예고된 시나리오와 변수 [마켓톡톡]

한정연 기자 2023. 9. 19.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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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2011‧2012‧2022년
국제유가 100달러 시대 열려
수요·공급, 달러화 등이 변수
지정학적 위기도 유가 흔들어
100달러 시대선 금리 인하 멀어져
개발도상국 치명타 입을 가능성

다시 유가 100달러 시대가 오고 있다. 브렌트유, 미 서부텍사스산원유(WTI) 모두 18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일부 현물은 이미 배럴당 100달러가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2008년 이후 유가가 100달러를 넘겼던 시기와 현재를 비교해 보고, 다시 100달러 시대가 오면 벌어질 일들을 살펴봤다.

국제유가가 다시 100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독일 엠리히하임 유정 모습. [사진=뉴시스]

국제유가가 18일(현지시간)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브렌트유 11월 인도분 선물은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이날 배럴당 94.43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WTI 10월 인도분 선물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1.48달러로 마감했다.

국제유가는 일부 현물시장에서 배럴당 100달러를 이미 넘어섰다. 나이지리아산 원유 콰이보, 말레이시아산 원유 타피스는 이미 현물시장에서 100달러를 기록했다.

■ 유가 100달러 시대의 역사=이란 석유장관은 2008년 5월 자국 IRNA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같은 상황이 지속한다면 머지않아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로 오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란은 당시 주요 산유국이었고, 국제유가는 120달러를 오르내리고 있었다.

'유가 200달러'는 이 무렵 경고성 발언으로 자주 쓰이던 수식어다. 그런데 지난해 3월 '유가 200달러' 전망이 다시 등장했다. 미국과 영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을 이유로 러시아산 원유 수입을 금지하자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연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JP모건의 유가 전망치는 185달러였다.

2022년 코로나19 팬데믹이 막바지에 접어들었지만,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일으키면서 국제유가는 100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3월 7일 브렌트유 선물은 130.13달러를 기록했다. 원유 공급망이 붕괴하면서 생산과 물류에 차질이 생겼고, 주요 산유국인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2020년 기준으로 세계 석유 생산량의 11%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2011년, 2012년에도 유가는 100달러를 넘어섰다. 2011년에는 아랍의 봄이 주요 이유였다. 2010년 12월 튀니지를 시작으로 2011년 1분기에 중동과 북아프리카 일부 지역에서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한 것을 아랍의 봄이라고 부른다. 산유국인 이란·이라크·쿠웨이트·사우디아라비아 등에서도 크고 작은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면서 공급이 위축됐다. 브렌트유는 2011년 4월 8일 126.65달러를 기록했다.

[자료 | 런던 ICE선물거래소]

2012년의 유가 상승은 서방 국가들이 이란의 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키기 위해서 경제 봉쇄에 나섰기 때문에 발생했다. 2012년 12월 27일 브렌트유는 배럴당 110.80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고유가는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촉발됐다. 미국에서 2007년 모기지(주택담보대출) 부실이 대량 발생해 대형 금융회사들의 파생상품 부실로 이어졌다. 2008년 7월 모기지회사인 컨트리와이드가 파산했고, 9월에는 리먼브라더스가 파산했다. 미국의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시장에 퍼질 기미가 보이면서 그해 7월 11일 브렌트유 선물은 종가 기준으로 144.49달러 장중으로는 147.50달러를 기록했다.

2008년 8월 베이징올림픽을 끝내고 중국 정부가 대규모 부양책을 내놨지만, 세계적인 침체가 예상되면서 석유 수요는 얼어붙었다. 브렌트유는 불과 5개월 만에 폭락해 2008년 12월 5일 39.74달러를 기록했다.

■ 공급 부족과 수요=일반적으로 석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은 공급, 수요, 결제화폐인 달러의 가치, 그리고 지정학적 위험이다.

최근의 공급 부족은 사우디아라비아가 7월 하루 100만 배럴 감산을 시작하고, 러시아가 9월부터 하루 30만 배럴 감산에 돌입한 여파가 크다. 사우디 에너지부는 지난 9월 5일 감산을 12월까지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러시아도 연말까지 감산 정책을 유지한다. 미국의 셰일오일 생산량이 3개월 연속 줄어든 것도 공급 부족을 부채질했다.

석유 수요를 둘러싼 분석은 다양하다. 중국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으로 예상하는 이들은 중국을 원유 시장의 '와일드카드'라고 부른다. 현재는 중국의 경기침체로 석유 수요가 줄어 국제유가가 떨어질 것이란 뜻이다.

다만, 반대의 상황에서도 '와일드카드'란 표현을 쓴다. 중국이 제로 코로나 정책을 해제했을 때에도 이들은 '와일드카드'로 불렸다. 그땐 석유 수요를 키워 유가를 끌어올릴 것이란 의미였다. '와일드카드'는 스포츠 경기에서 정원 외로 참가하는 선수나 팀을 말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나 OPEC+ 회원국이 아닌 중국을 와일드카드에 빗대는 건 그들의 석유 수요가 그만큼 국제유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중국 롄윈강시 주유소. [사진=뉴시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5월 "중국의 3월 원유 수요는 하루 1600만 배럴로 올해 전체 원유 수요 증가분의 60%를 중국이 차지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앞서 유가 100달러 시대의 역사에서 언급했듯 지정학적 위험은 항상 석유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친다. 레바니즈 아메리칸 대학의 엘리 보우리 부교수는 지난해 발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원자재 시장의 지정학적 위험과 구조적 위험'이라는 논문에서 "전쟁으로 원자재 시장 변동성이 35%에서 85%로 증가했다"고 주장했다.

■ 고유가 국면 길어지면…올해 유가 100달러 시대가 지속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먼저 물가의 추가 상승을 피할 수는 없다. 소비자물가지수(CPI)는 근원 CPI의 경우 가격 변동이 심한 식료품, 에너지 관련 품목을 제외하고 측정한다.

그러나 석유류 제품에만 유가의 변동분이 반영되는 건 아니다. 물류가 필요한 상품은 간접적으로 그 영향을 받는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지난 2021년 9월 보고서에서 "원유 가격이 3개월 이상 배럴당 100달러대에 머물면 연간 소비자물가지수가 단기적으로나마 3%포인트 상승한다"고 밝혔다.

물가 상승이 지속한다면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시점이 더 늦어진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달러 가치의 상승을 뜻한다. 과거와 달리 최근 들어서는 달러 가치가 강세를 보이면 원자재 가격은 더 상승하는 경향을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의 올해 3월 '원자재 가격과 미국 달러' 보고서는 "미국이 2010년 이후 석유 순수출국이 되면서 달러 가치와 원자재 가격은 음의 관계에서 양의 관계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미국이 금리 인상을 멈추지 않으면 한국을 포함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환율을 유지하기 위해서 금리 인하에 나서기 힘들어진다. 경제 기반이 취약한 나라들은 고금리 시대를 오래 버티기 힘들다.

유가 상승이 물가를 자극해 고금리 기간이 길어지면 개발도상국들이 부채 위기에 빠질 가능성이 많다. 사진은 경제 위기가 진행 중인 아르헨티나의 극우 대선주자 하비에르 밀레이. [사진=뉴시스]

영국 경제매체 이코노미스트는 지난해 7월 "미국이 금리 인상을 시작한 3월부터 신흥국들에서 순자본 유출이 시작됐고, 3개월 만에 달러화 가치는 12% 상승했다"며 "53개 개발도상국들이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곤란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집트·앙골라·엘살바도르·가나·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 등이 53개 개발도상국에 속한다.

이코노미스트는 "53개 개발도상국은 세계 GDP에서 5%를 차지하지만, 세계 인구의 18%인 14억명이 살고 있다"며 이들 저소득 국가들의 부채 조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도 지난 5월 하원에 출석해 "중국이 추진하는 글로벌 사업(일대일로)으로 다른 국가들이 채무의 덫에 걸려들었다"며 중국이 개발도상국 채무 탕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미국 윌리엄 앤드 메리 대학의 에이드데이터(AidData) 연구소는 2021년 중국이 지난 18년간 165개 나라에 8430억 달러를 대출해줬다고 발표했다.

한정연 더스쿠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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