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무로 극단선택 간호사, ‘위험직무 순직’ 항소심서도 인정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로 희생 요구 안돼”
코로나19 대응 업무를 하면서 만성적 과로·정신적 불안정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보건소 공무원이 항소심에서도 ‘위험직무순직’을 인정받았다. 코로나19 대응 업무가 위험직무로 인정된 것은 처음이다. 특히 항소심 재판부는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뿐인 보상만으로 방역 담당 의료진에게 희생을 요구할 수 없고, 또 요구해서도 안 된다”는 메시지도 남겼다.
서울고등법원 행정9-2부(재판장 김승주)는 지난 14일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간호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숨진 고 이한나씨(사망 당시 33세) 유족이 인사혁신처를 상대로 낸 위험직무순직 유족급여 부지급처분취소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씨는 2015년 11월부터 부산 동구보건소에서 간호직 공무원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2020년 초부터 코로나19 대응 및 관리업무를 맡았다. 이씨는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던 2020년 12월쯤부터 초과 노동시간이 급격히 늘었고, 최대 월 100시간에 달할 정도의 초과근무를 하기도 했다. 2021년 5월19일부터는 코호트 격리시설 관리 업무도 했다. 이씨는 그해 5월23일 자택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인사혁신처는 이씨 사망을 일반 순직으로 인정했지만 위험직무순직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위험직무순직으로 인정되면 일반 순직보다 높은 수준의 보상금과 연금이 유족에게 지급된다.
1심 재판부는 인사혁신처와 달리 이씨 사망을 위험직무순직으로 판단했고, 항소심 재판부도 이를 유지했다.
위험직무순직은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했고, 해당 직무에 내재된 위험으로 인해 재해를 입었으며, 그 재해가 직접적 원인이 돼 사망에 이르렀을 때 인정된다. 인사혁신처는 ‘극단적 선택의 직접적 원인인 인식능력 등의 뚜렷한 저하는 공무 수행 과정에 있었던 만성적인 피로·스트레스 때문이지 해당 직무(감염병 환자 치료 또는 감염병 확산 방지)에 내재된 고도의 위험 때문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 이씨 사망은 ‘해당 직무에 내재된 위험으로 인해 재해’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본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씨의 만성적 과로·정신적 불안정이 ‘해당 직무에 내재된 고도의 위험’ 때문에 직접 발현됐고 이것이 극단적 선택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면 인사혁신처가 주장하는 ‘해당 직무의 위험성과 재해 발생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를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씨는 감염병 환자 치료 또는 감염병 확산 방지라는, 직무에 내재된 고도의 위험 때문에 인식능력 등에 뚜렷한 저하를 나타냈고, 이로 인해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코로나19 팬데믹에 맞서 이룩했던 ‘K-방역’ 성과의 이면에 이씨를 비롯한 방역 담당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며 “장기간에 걸쳐 ‘모든 사람이 대면을 기피했던 코로나19 확진자’ 등과 수시로 접촉하면서 시간과 정성을 들여 그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하다 유명을 달리했던 방역 담당 의료진의 유족에 대해 그에 걸맞은 처우를 하는 것이야말로 국가의 존재 이유이자 존립의 근거”라고 밝혔다. 이어 “‘덕분에 고마웠다’는 말뿐인 보상만으로는 이들에게 이 같은 희생을 요구할 수 없고, 또 요구해서도 안 된다”고 했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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