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38년 전 ‘신원식 중대장’ 부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강은 기자 2023. 9. 19. 17:3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15일 서울 용산구 육군회관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로 첫 출근하고 있다. 문재원 기자

“발포 순간 부상자가 발생했다는 무전이 들어왔고, 박격포의 포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이 일병을 표적으로 쏜 것도 아니고, 설마 일이 그렇게 될지 몰랐다. 본의 아니게 숨기게 되었다. 피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 제 잘못으로 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이 일병과 유가족에게 죄송하다.”

신원식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38년 전 중대장으로 있던 부대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와 관련해 당시 박격포 발사 담당자인 화기소대장 김씨가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참고인 진술에서 이같이 진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군사망위는 1985년 10월 신 후보자가 중대장이던 육군8사단에서 발생한 병사 사망사고 원인이 ‘잘못 발사된 박격포(오발탄)’이었으나 ‘불발탄’에 의한 것으로 조작됐다고 결론내렸다. 이에 따라 과거 군이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사망사고 원인을 조작했고, 신 후보자가 이 과정에 관여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터다.

19일 경향신문은 이 사건을 조사한 군사망위의 참고인 진술조서 등 조사기록 전문을 확보해 살펴봤다. 군사망위는 조사 과정에서 부대원·지휘관 15명가량의 진술을 받았다. 사망한 병사와 가까이에 있었거나 환자를 업고 달린 동료 3명, 박격포 사격에 참여했거나 목격한 부대원들은 군사망위에서 사고 원인이 박격포에 의한 것이었다고 증언했다. 반면 신 후보자 등 관측소에 있었던 지휘관들은 해당 병사가 실수로 불발탄을 밟아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옆에 있던 상병, 업고 뛴 병장 “포탄 떨어졌다”
38년 전인 1985년 10월 이모 일병이 사망한 육군8사단 21연대 2대대 5중대 1소대 병사들 사진. 당시 같은 부대에서 훈련을 받던 일부 동료들은 “앞줄 가운데 있는 병사가 사망한 이 일병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당시 군이 사망사고 원인을 조작했다고 말한 이들은 사망한 이모 일병과 가까운 곳에 있던 동료 병사들이었다. 이 일병과 같은 공격조로 그와 4~5m 거리에 있었다는 이모씨는 “포탄이 발포되었고, ‘쾅’ 하는 소리와 동시에 포탄이 망인의 발 옆으로 떨어진 것을 보았다”면서 “(이 일병의) 군복이 거의 벌집이 돼 있었다”고 진술했다. 다른 목격자 임모씨는 “훈련장이 오르막길이다 보니 뒤쪽에 있는 제 위치에서 앞쪽이 훤히 내다보였다”면서 “(이 일병이) 서 있던 자리 앞으로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다.

당시 헌병대 사건기록에 ‘목격자’로 기재된 병장 정모씨도 “불발탄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진술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이 일병을 구급차까지 업고 달린 인물이다. 그는 “누군가가 와서 불발탄을 밟았다고 말했는데 그건 아니었던 것 같다. 무엇인가 날아와 터진 것 같았다”면서 “헌병대인가에 가서 어설프게 진술한 것밖에 기억이 없다”고 했다. 또 “군사용으로 파놓은 호에 그 친구가 들어갔고, 우리 분대원들은 좌우로 펼쳐져 있었던 기억이다”라며 “잊을 수 없는 건 바로 옆에 있었는데도 그 호 때문에 우리는 무사했던 것”이라고 했다.

박격포 사고라면 큰 책임을 졌어야 할 발포 당사자조차 ‘박격포 사고’라고 봤다. 최종 발사 명령을 내린 화기소대장 김씨는 “중대장이 고지보다 멀리 한 방 쏘라는 지시만 했을 뿐 어디 지점을 쏘라고 가르쳐주지 않았다”면서 “어느 지점을 지정했으면 지도를 보고 거리 측정을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관측소에 있던 지휘관들 “불발탄이라 들었다”
38년 전 육군8사단에서 발생한 이모 일병 사망사고를 재조사한 군사망위가 지난해 7월실지조사(현장조사)를 진행하며 남긴 사진.

반면 ‘불발탄 사고’를 주장하는 이들은 모두 관측소·지휘소에 있었던 지휘관들이었다. 연대장이었던 박모씨와 대대장이었던 김모씨, 그리고 중대장이었던 신 후보자다. 이들은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하지 않았다면서도 박격포 사망은 아니라고 확언했다.

훈련 당시 중대 관측소(OP)에 있었던 신 후보자는 조사에서 “당시 사거리를 잘못 측정해 1~2부 능선으로 포탄을 쏴 망인이 사망했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신 후보자는 “대대장님이 ‘망인이 돌격 사격하던 중 엎드려 있다가 M203 불발탄을 밟고 죽었다’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기억한다”며 이 일병의 사망원인을 대대장을 통해 전해들었다고 진술했다.

관측소에 있었던 대대장 김씨는 “불발탄을 밟았다는 그 말을 믿고 알아보려 하지 않고, 이유도 없었다. 추측이었다. 정황상 맞았다. 의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또 “박격포는 떨어지면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은 안 다치고, 멀리 있는 사람이 다친다. 당시 판쵸가 완전히 벌집이었다. 박격포는 그런 모양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지휘소에 있었던 연대장 박씨도 “박격포인지 유발탄이지 걔들(부대원들)은 구별할 수 없다. 중대장이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신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낸 입장문에서 “훈련 당일에는 연대장조차 훈련을 참관하지 않았다”고 했다.

신 후보자는 지난달 27일 군사망위 결정문 내용을 보도한 언론에 법적으로 대응할 뜻을 밝혔다. 그러면서 일부 부대원의 진술에 대해 “군사망위 분위기에 부화뇌동한 건지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고 했다. 군사망위가 법의학 자문을 의뢰한 국방부조사본부 과학수사연구소 측은 “제시된 자료를 모두 검토해도 폭발물 종류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찾을 수 없다”며 “판단 불능”이라고 했다.


☞ [단독]신원식 연루된 38년 전 ‘불발탄 폭발 사건’…풀리지 않은 의혹들
     https://www.khan.co.kr/national/national-general/article/202309191742001

강은 기자 eeu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