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5000만원’ 예금자보호한도···이번에도 ‘현행 유지’?
최근 재점화된 예금자 보호한도 상향 문제를 두고 당국에선 현행 유지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금융권에선 보호 한도를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도록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과 도덕적 해이 등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충돌하고 있다.
19일 정치권에 따르면 올해 이날까지 국회에 발의된 예금자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총 9개다. 해당 법안들은 보험금 한도를 최소 1억원 이상으로 상향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경제규모가 대폭 성장하는 등 과거에 비해 국내 경제상황이 현저히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주요 국가 대비 보험금 한도가 여전히 낮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영국·일본 등 주요국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장 안정을 위해 예금자보호한도를 상향 조치했다. 반면 한국은 지난 2001년부터 현재까지 5000만원을 유지해 경제 규모 및 상황 변화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해 기준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예금자보호한도 비율은 1.2배로 영국(2.3배), 일본(2.3배), 미국(3.3배) 등과 견줬을 때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금융권에선 오는 21일 예금자보호제도 개선을 위해 운영해온 ‘민관 합동 태스크포스(TF)’ 관련 최종 회의에서도 현재 한도가 그대로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금융당국은 금융권 예보료 인상 부담이 대출금리 인상 등으로 소비자에게 전가될 우려가 있는 점, 물가 인상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중이다.
한편 한도 상향의 실익이 불분명한 상황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국내 금융회사의 부보 예금(예금보험제도 적용을 받는 예금) 가운데 5000만원 이하 예금자 수 비율은 전체의 98% 수준이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수혜 대상이 일부 ‘현금 부자’에 국한된다는 것이다. 또 경제 주체들의 도덕적 해이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온다.
최근 국회 입법조사처는 ‘2023 국정감사 이슈 분석’을 통해 “한도가 오를 때 예금자가 금융기관의 건전성보다는 높은 금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질 것”이라며 “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상향하는 경우 저축은행 예금이 최대 40% 증가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면서 신중론을 펼치기도 했다.
정채연 포항공대 교수는 “시대 상황에 맞게 보호한도를 상향할 순 있겠지만 지나치게 포퓰리즘적으로 접근할 경우 은행이나 예금주 등 경제 주체들이 주의의무를 태만히 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국민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보호한도가 은행마다 5000만원씩임을 감안한다면 보호의 울타리가 협소한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한도가 상향될 경우 은행으로 지나치게 자금이 쏠리게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종전에 보험료율이 높았던 저축은행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보험료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권정혁 기자 kjh0516@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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