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젤 40%·쌀 24%·오렌지 100% 급등···"인플레 다시 자극"
사우디·러 감산동맹에 수요도 확대
원유 선물가격 100弗 전망 대세로
식량 민족주의에 이상기후 덮쳐
애그플레이션 우려도 갈수록 커져
인도중앙銀 "금융안정 새 리스크"
글로벌 경제가 원유와 원자재·곡물 가격이 동시에 상승하는 이른바 ‘ORA(Oil·원유, Raw material·원자재, Agricultural product·농산물)플레이션’에 빠졌다.
지난달 초 국제유가가 배럴당 80달러를 넘었을 때 100달러까지 넘길 것이라고 보는 투자은행(IB)은 소수였다. 하지만 유가를 둘러싼 각종 변수가 모두 가격 인상을 가리키며 이제는 100달러 전망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다.
우선 글로벌 원유 수요가 견조한 흐름을 보이는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가 공급 축소를 올해 말까지 연장하는 이른바 ‘감산 동맹’을 맺으면서 공급 부족 우려는 증폭되고 있다. 미국의 ‘한 방’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까지 치솟자 미국은 전략비축유를 풀며 유가를 안정시켰다. 하지만 18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주 조 바이든 대통령이 휘발유 가격을 다시 낮추겠다고 공언했지만 전문가들은 미국이 약 3억 배럴의 전략비축유를 이미 시장에 푼 상황에서 추가로 가격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고 있다”고 전했다. 아울러 중동에서 중국에 영향력을 빼앗길 것을 우려하고 있는 미국은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중재하고 있어 사우디의 감산에 강하게 ‘쓴소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 점도 유가를 끌어올리고 있다.
장기적인 원유 수요가 예상보다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도 유가에 기름을 붓고 있다. 사우디 국영 석유 기업 아람코의 나세르 아민 최고경영자(CEO)는 18일 “원유 수요가 2030년까지 하루 1억 1000만 배럴로 증가할 것”이라고 봤다. 대런 우즈 엑손 CEO도 “원유와 천연가스가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어 오늘날 에너지 시스템이 대체되기 힘들고 에너지 전환에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에 원유 선물 가격이 심리적 저항선인 100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아지고 있다. 정유 회사 셰브론의 마이크 워스 CEO는 “원유 가격이 배럴당 100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파생상품 중개 업체 오안다의 에드워드 모야 분석가는 “월가에서 원유에 대한 베팅이 가장 인기 있는 거래가 됐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이런 가운데 디젤 가격도 급등하고 있다. 런던상품선물거래소(ICE)에서 디젤 가격은 이달 14일 톤당 1000달러를 넘어서며 올 5월 이후 40% 폭등했다. 주요 산유국의 생산량 억제로 중질유 공급이 제한된 여파다. 에너지 조사 기관 우드메켄지는 4분기 디젤 생산량이 전년에 비해 1.5%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 추가 상승도 우려된다.
문제는 유가뿐만이 아니다. 이상기후와 ‘식량 민족주의’, 러시아의 흑해 곡물협정 파기로 주요 식량 가격도 들썩이며 ‘애그플레이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글로벌 쌀 가격의 기준이 되는 태국산 쌀 수출 가격은 지난달 톤당 600달러를 넘기며 2008년 이후 최고치로 나타났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8월 세계 쌀가격지수는 1년 전 같은 기간 대비 약 24% 폭등한 142.4포인트를 기록했다. 이는 2011년 9월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세계 최대 쌀 수출국인 인도가 자국 내 쌀 가격이 오르자 일부 쌀의 수출을 금지하며 가격을 밀어올렸다.
밀의 주요 산지인 캐나다와 미국도 가뭄으로 인해 생산량이 급감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가뭄으로 인해 주요 수출국의 세계 밀 비축량이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오렌지와 설탕·커피 등의 가격도 들썩이고 있다. ICE 자료에 따르면 오렌지 선물 가격은 지난해 파운드당 1.76달러에서 지난달 초 3달러대로 약 2배 가까이 올랐다. 허리케인과 한파 등이 미국과 브라질·멕시코 등 오렌지 산지 국가들을 강타하며 생산량이 줄어든 탓이다. 브라질·태국 등 주요 사탕수수 생산국도 이례적 고온 현상에 시달리며 국제 설탕 가격이 12년 만에 최고 수준을 찍었으며 스페인에서는 작황 악화로 올리브유 가격이 전년 대비 130% 폭등했다.
이에 따라 잡히는 줄 알았던 전 세계 인플레이션을 다시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올해 상반기 물가 상승세가 둔화한 데는 유가 하락이 큰 역할을 했지만 올해 하반기와 내년까지는 유가가 물가 둔화에 오히려 브레이크를 거는 역할을 할 것”이라며 “물가를 2%로 낮추려는 각국 중앙은행의 목표 달성에도 먹구름이 드리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도중앙은행(RBI)은 최근 “세계경제가 급격히 둔화하지 않는 이상 원유 공급 부족은 지속될 것이고 글로벌 인플레이션은 다시 한번 들썩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유가가 ‘오버슈팅’돼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씨티그룹은 “유가가 잠시 동안 100달러 이상에서 거래될 수 있다”면서도 “석유수출국기구(OPEC) 이외의 국가인 미국과 브라질 등에서 공급이 늘어날 수 있고 이는 현재의 공급 부족을 완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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