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바키아 총선, ‘유럽 분열’ 시험대 되나···‘친러·반미’ 정당 세몰이

선명수 기자 2023. 9. 19.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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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트 피초 전 슬로바키아 총리가 지난 6일(현지시간) 동부 도시 미할로프체에서 연설 후 지지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AP연합뉴스

오는 30일 실시되는 슬로바키아 총선을 앞두고 ‘친러시아·반미’ 기조를 내세운 정당이 지지율 선두를 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슬로바키아에 반서방 성향 정부가 들어설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유럽의 단결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18일(현지시간) AP통신 등 보도에 따르면 로베르토 피초 전 총리(59)가 이끄는 좌파 성향 스메르당은 우크라이나 지원 중단과 친러·반미 메시지를 내세우며 지지세를 확장하고 있다. 스메르당은 성소수자 인권과 이민자 유입에 반대하는 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피초 대표는 2006~2010년과 2012~2018년 두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한 인물이다. 그가 1999년 창당한 스메르당은 최근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20%로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 말 연정 붕괴로 실각한 중도우파 성향 ‘올라노’의 지지율은 6%에 그쳤다.

스메르당이 연정을 구성해 피초 대표가 다시 총리직에 오른다면 슬로바키아의 우크라이나 지원 정책이 완전히 뒤집힐 것으로 보인다. 그는 “우리가 집권한다면 우크라이나에 더 이상 어떤 무기나 탄약도 보내지 않을 것”이라고 AP통신에 말했다.

슬로바키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중 두 번째로 우크라이나에 미그-29 전투기를 지원하는 등 우크라이나에 군사적 지원을 해온 동유럽 우방 가운데 하나였다.

피초 대표는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서방의 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전쟁의 방향을 바꾸지 못할 것”이라며 2014년 러시아가 병합한 크름반도를 탈환하려는 우크라이나의 노력에 대해 “러시아가 크름을 떠날 것으로 보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며, 러시아가 점령한 영토를 포기할 것으로 보는 생각도 순진하긴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피초 대표는 유럽연합(EU)의 러시아 제재에 반대하고, 슬로바키아의 나토 회원국 지위를 이용해 우크라이나의 나토 가입을 막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혀 왔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나토에 가입하면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슬로바키아는 동유럽 국가 중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여론이 강한 편이다. 슬로바키아 싱크탱크 글로브섹이 지난 3월 동유럽 8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슬로바키아 응답자의 51%는 우크라이나 전쟁 책임이 서방과 우크라이나에 있다고 답했다. 전쟁 책임이 러시아에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로, 이는 폴란드(85%)와 체코(71%)에 비해서도 크게 낮은 수치였다.

또 슬로바키아 응답자의 절반은 자국 안보에 가장 위협이 되는 국가로 미국을 꼽았다. 이는 미국에 대한 불신이 강한 불가리아(33%)와 헝가리(25%)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뿌리 깊은 친러 정서에 친서방 정권에 대한 불만까지 쌓이며 스메르당의 지지율은 높아지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산 곡물이 유입되며 농민들의 불만도 고조됐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는 친러 성향 매체들의 선전이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고 있다. 라스티슬라우 카체르 전 외무부 장관은 “러시아는 기뻐하고 있다”며 “슬로바키아를 유럽 분열을 일으킬 쐐기로 이용하는 데 성공했다”고 뉴욕타임스에 말했다.

피초 대표와 스메르당이 정권 교체에 성공하면 슬로바키아는 헝가리에 이어 나토의 우크라이나 지원 기조에 공개적으로 반기를 드는 두 번째 회원국이 될 것으로 보인다. 대러시아 정책에 대한 나토와 EU 내부 균열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AP통신은 “피초의 지지세는 현재 유럽 전역에 확산되고 있는 흐름의 일부”라며 “현재 헝가리만 공개적으로 친러 기조를 표방하고 있지만,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 등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에 회의적인 포퓰리즘 정당들이 상당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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