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민의 코트인] 여중부 고양 소노, 봉의중! 그리고 에이스의 눈물
“키가 작아서 슛 성공률이 높지 않으면 경기에서 이길 수가 없어요...”
지난 12일부터 시작된 제53회 추계 전국남녀중고농구연맹전 여중부 예선. 총 9개 팀이 참가했지만 치열한 접전 끝에 몇몇은 집으로 떠났고 이젠 동주여중, 봉의중, 숙명여중, 온양여중, 연암중, 선일여중만이 남았다.
아직 가공되지 않은 원석, 어린 선수들임에도 그들이 경기에 임하는 태도는 프로 못지않다. 덕분에 눈앞에 펼쳐지는 매 경기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쫄깃함과 재미를 선사한다.
결선에 올라온 여중부 팀 중 평균 키가 가장 작은 팀, 170cm를 초과한 선수가 유일하게 한 명인 팀. 지면에서부터 골대가 가장 멀다고 느껴지는 팀. 아무리 농구를 신장이 아닌 심장으로 한다지만, 이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조건이다.
그런 봉의중이 상대를 꺾기 위해 선택한 방법은 간단했다. 3점슛. 2점보다 1점을 더 주는 3점슛으로 승부를 보고자 한 것이다.
아마추어 경기를 보다 보면 3점슛은 고사하고, 선수들이 자유투도 전부 넣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3점슛을 위주로 경기에 나서는 봉의중 농구는 한편으로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으로 볼 수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봉의중 김양우 코치는 확신이 있었다.
“성공률을 높이려면, 시도를 많이 해야 해요. 그런 것을 많이 연습하고 나온 게 딱 적중한 것이죠!”
프로 경기에서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감독들은 슛 실패보다 찬스에 주저하는 선수를 향해 더욱 채찍을 가한다. 시도해야 결과물이라도 나오니까.
그런 부분 때문에 김양우 코치는 선수단에게 계속 자신감을 강조하고, 득점 실패에도 거듭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 봉의중은 예선에서 유일하게 20개 넘는 3점슛을 기록하며 결선에 올랐다. 평균 3점슛 개수가 11.5개다. 예선 전 경기가 양 팀 도합 평균 3점슛 개수 11.1개인 것을 감안하면 봉의중의 양궁농구가 얼마나 대단한지 실감할 수 있다.
마치 직전 시즌 3점슛으로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고양 소노를 연상케한다. 우연의 일치인 것처럼, 소노의 평균 3점슛 성공 개수도 딱 11.5개였다.
19일, 오전 10시 결승으로 가기 위해 봉의중과 동주여중이 맞붙었다. 예선전부터 봉의중이 유지했던 팀 컬러 3점슛과 풀 코트 프레스는 여전히 위력적이었다. 동주여중이 2점으로 따라오면 냅다 3점슛 폭격, 동주여중 입장에선 허탈, 또 허탈이었다.
봉의중의 돌격 대장은 예선 평균 27.3점 5리바운드을 기록한 김지민이었다. 신장이 작다는 단점이 있지만 안정적인 볼 핸들링에 뛰어난 패스 센스, 경기 조립에 장거리 3점슛까지 갖춘 멀티 플레이어다.
경기 종료 3분 전, 김지민의 맹폭으로 10점 차 앞섰던 봉의중.
“수비에서 항상 압박 수비를 하다 보니 체력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신장이 작아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그것뿐이다. 체력을 길렀지만, 경기를 뛰면 뛸수록 힘들어한다”
김양우 코치 입장에서 본인의 멘트가 현실이 되면 안 됐겠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가용 인원 5명이 경기 시작부터 단 1초도 쉬지 않고 뛰고 있으니 서서히 발걸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적지 않은 턴오버는 계속 동주여중의 속공 득점으로 이어졌고, 경기 내내 잠잠하던 동주여중의 3점슛이 승부처에 딱 터져 나왔다. 분위기를 탄 동주여중은 삽시간에 경기의 균형을 맞춰냈다.
다 잡은 승기를 한순간에 빼앗겨버린 봉의중의 해결사로 나선 이는 김지민. 김지민은 스피드를 앞세워 오른쪽 45도와 사이드로 파고 들었고 수비수를 몰아 골밑 동료에게 바운드 패스를 건넸다.
그렇게 공을 받은 한예담 앞은 텅 비었다. 그러나 한예담은 슛을 올라가지 않고, 외곽으로 공을 뺐다. 경기 잔여 시간과 봉의중의 공격 시간이 거의 일치했기에 벤치에서도 원샷 플레이를 주문했기 때문.
김지민이 말했다. “봉의중은 볼이 안으로 들어갔다가 다시 밖으로 나오는 공은 최대한 던지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노마크에서 외곽으로 뺀 공은 멀리 있는 임나은에게 전달됐다. 안정을 택할 수 있었지만 봉의중 선수들은 본인들이 꾸준히 연습해왔던 그 방식을 택한 것이었다. 그러나 체력적인 부담에 슛은 짧았고, 튕겨 나온 공은 그대로 동주여중의 속공으로 연결됐다.
남은 시간은 4.5초, 이번엔 김지민이 슛을 시도했지만 무리였다. 동주여중의 기적적인 역전승이 완성된 순간이었다.
마지막 공격을 실패했다는 아쉬움, 에이스의 책임감과 무게감, 버저가 울리자 김지민의 눈에선 눈물이 끊이질 않았다.
한없이 호랑이 같았던 김양우 코치도 이제야 푸근한 모습으로 선수단에게 다가갔다.
“후회는 없다. 잘했다 얘들아, 고생했어!”
작은 키에도 내외곽을 휘저으며 코칭스태프들의 찬사를 이끌어냈던 김지민. 멘탈이나 수비에서 다듬어야 할 부분은 많다고 하지만, 이제 농구 걸음마를 뗀 선수이기에 더욱 기대감이 크다.
김지민은 경기 후 필자에게 주변의 권유와 재미로 농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우연찮게 다가온 농구는 15살 김지민 인생에 어느덧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또 그 덕에 김지민은 세상 그 누구보다 농구에 진심인 선수로 변해있었다.
“잘해요, 지민이. 아주 좋은 선수로 성장할 거예요”
김양우 코치의 메시지와 함께 이날 김지민의 기록지엔 4개의 3점슛 포함 37점 12리바운드 7어시스트가 나타나있었다.
#사진_점프볼 DB(배승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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