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더 이상 장시간 노동국가 아냐' 언론 보도의 착시효과

박재령 기자 2023. 9. 19. 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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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총 "OECD 평균과 차이 크게 줄어, 장시간 노동국가 아냐"
인용 보도들에 누리꾼 "말도 안되는 소리" "몰라도 너무 몰라"
전문가 "한국 여전히 장시간 노동국가, 보고서 숫자 착시 우려"
삶의 질 지표는 최악, '워라밸' 지표 31개국 중 29위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과로 사회'로 유명한 한국 근로시간이 OECD와 격차가 크게 줄었다는 보고서가 나오면서 한국이 더 이상 장시간 노동국가가 아니라는 제목의 보도가 이어졌다. 최악의 '일 중독' 국가로 꼽히던 과거 평가와 상반되는 결과에 누리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국은 장시간 근로국가에서 벗어난 걸까.

▲ 한국 임금근로자의 연평균 실근로시간은 2001년 이후 500시간 가량 감소해 OECD 평균과 격차가 691시간(2001년)에서 185시간(2022년)으로 줄어들었다. 자료=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지난 11일 '근로시간 현황 및 추이 국제비교 분석' 보고서를 통해 “한국 실근로시간과 OECD 평균과 차이가 크게 줄어들었다”며 “장시간 근로의 정책적 고려 대상인 풀타임 근로자 근로시간과 국가 간 통계 차이로 인한 오차까지 감안하면 더 이상 우리나라를 전반적인 장시간 국가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임금근로자의 연평균 실근로시간은 2001년 이후 500시간 가량 감소해 OECD 평균과 격차가 691시간(2001년)에서 185시간(2022년)으로 줄었다. 보고서는 “OECD 평균 감소폭(47시간)보다 크게 감소했고, 감소폭이 OECD 국가 중 가장 큰 것”이라고 했다.

▲ 작년 기준 '풀타임' 임금근로자의 주당 평균 실근로시간은 42시간으로 OECD 평균(40.7시간, 공표 가중평균 기준)과 1.3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자료= '근로시간 현황 및 추이 국제비교 분석'

경총은 '풀타임' 근로자만을 따로 뗀 데이터도 공개했다. 작년 기준 '풀타임' 임금근로자의 주당 평균 실근로시간은 42시간으로 OECD 평균(40.7시간, 공표 가중평균 기준)과 1.3시간밖에 차이 나지 않았다. 보고서는 “우리 고용노동부가 주로 활용하는 산술평균 기준으로 OECD 평균과의 주당 실근로시간 차이를 연간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52시간에 불과하다”고 했다.

보고서는 파트타임을 제외하고 풀타임을 따로 분석한 이유로 '합리성'을 들었다. 파트타임 비중이 높은 나라일수록 실근로시간이 적게 나타난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OECD 기준 2022년 일본의 전체 임금근로자 실근로시간은 1626시간으로 한국 1904시간과 단순 비교하면 278시간 차이지만, 일본의 파트타임 근로자 비중(31.6%)이 한국(17.0%)보다 높아 전체 근로시간을 축소시키는 점을 고려하면, 과연 278시간을 실근로시간 차이로 보는것이 적절한가에 대한 문제”라고 했다.

▲ 보고서와 발맞춰 한국이 더 이상 장시간 노동국가가 아니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네이버 갈무리.
▲ 지난 12일자 나온 매일경제 1면 기사.

보고서와 발맞춰 한국이 더 이상 장시간 노동국가가 아니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매일경제는 지난 12일 1면에 <'장시간 근로' 옛말…한국인 주 42시간 일한다>, 15면에 <韓, 장시간 근로는 오해… 유연성 높일 때”> 기사를 배치했다. “기존 인식과 달리 OECD 평균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장시간 근로 국가란 프레임을 벗고 근로시간 유연성을 제고해야 한다”는 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의 인터뷰도 담겼다. 온라인으로도 같은 맥락의 보도가 수십개 쏟아졌다.

▲ 지난 12일자 한국경제 사설.

한국경제도 지난 12일 8면에 <韓, 주당 42시간 근로…OECD와 차이 없어> 기사를 낸 데 이어 사설 <“한국, 많이 일하는 나라 아니다”…'최장 근로국' 프레임 버려야>에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근로자의 노동시간이 대폭 줄어 이제는 다른 주요국에 비해 길지 않은 수준에 이르렀다”며 “주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 이후 표류 중인 근로시간 개편을 재추진하는 동시에 산업 현장의 법치 확립과 직무·성과급제 중심의 임금 개편을 통해 노동시장 유연성을 높이는 일이 시급하다”고 했다.

누리꾼 “말도 안되는 소리” 전문가 “한국 장시간 노동 못 벗어나”

▲ 경총 보고서를 인용한 보도들엔 네티즌들의 날 선 반응이 나왔다. 네이버 기사 갈무리.

한국의 근로시간이 길지 않다는 보도에 누리꾼들은 반발했다. 매일경제 <'장시간 근로' 옛말…한국인 주 42시간 일한다> 온라인 기사엔 “말도 안되는 소리”, “우리 회사만 해도 중견기업인데 주60시간 이상 근무하고 있다” 등의 날 선 반응이 나왔다. 한국경제 사설에도 “몰라도 정말 모른다”, “투잡까지 뛰면서 살아가는 세대들 불쌍하지 않나” 등의 한탄이 쏟아졌다.

전문가도 경총 보고서의 숫자에 '착시'가 우려되는 등 충분히 의미 있는 숫자가 아니라고 반박했다. 한국은 여전히 '장시간 근로국가'라는 것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이 워낙 장시간 노동 국가였기 때문 숫자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것”이라며 “한국에서 현재 초단시간 노동자 비중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근로시간이 줄겠지만 파트타임 비중이 높아져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 없다. 파트타임 노동자들 비중이 줄면서 근로시간이 주는 게 바람직한 것”이라고 말했다.

'시간 외 노동' 등의 관행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장시간 노동 국가의 특징은 퇴근할 수 없는 거다. 풀타임 근로자들도 시간 외 노동이 거의 고정화돼 있지 않나. 평균 2시간 고정이면 상당히 길다”며 “단순 시간 수로 계산하면 노동시간이 많지 않아 보이는 착시가 생길 수 있다. 주당 2시간만 길어도 1년이면 100시간 긴 것이다. 엄청난 장시간 노동 체제인 것”이라고 말했다.

▲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발간한 'NABO 경제동향 4월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노동시간은 OECD 36개국 중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칠레(1916시간)에 이어 4위였다.

실제로 한국은 여전히 OECD 내 근로시간 상위권 국가다. 국회 예산정책처가 지난 4월 발간한 'NABO 경제동향 4월호'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 노동시간은 OECD 36개국 중 멕시코(2128시간), 코스타리카(2073시간), 칠레(1916시간)에 이어 4위였다.

'삶의 질' 지표는 더 심각하다. 지난 7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사회연구에 실린 '일-생활 균형시간 보장의 유형화'(노혜진 강서대 사회복지학 교수) 논문에 따르면, 한국은 장시간 노동으로 일과 삶의 균형 시간 보장 수준, 소위 '워라밸'이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로 분류됐다. (적정) 노동 시간 보장 수준이 OECD 국가(31개) 기준 세 번째로 낮았고, 가족 시간 영역에서도 20위로 하위권이었다. 미국, 그리스 등과 함께 노동·가족 시간의 보장 정도가 모두 낮아 '시간 주권'이 부족한 나라로 꼽힌 것이다.

▲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에 실린 '우리나라 여가시간 사용현황과 삶의 만족도' 연구(조규준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OECD 자료 기준, 한국의 1일 24시간 대비 평균 여가 사용시간 비율은 17.9%로 자료 OECD 33개 국가 중에서 28위였다.

한국노동연구원 '월간 노동리뷰'에 실린 '우리나라 여가시간 사용현황과 삶의 만족도' 연구(조규준 책임연구원)에 따르면, OECD 자료 기준, 한국의 1일 24시간 대비 평균 여가 사용시간 비율은 17.9%로 자료 OECD 33개 국가 중에서 28위였다. 보고서는 “여가 사용시간 비율이 높은 나라들은 공통적으로 노동시간이 길지 않고 삶의 만족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라며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독일(1349시간), 스웨덴(1444시간) 등 여가 사용시간 비율이 높은 나라들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고 했다.

김성희 교수는 통화에서 “급여가 지급되지 않는 '부불' 노동 문제가 아직도 크고 5인 미만 사업장 등 노동시간 관리가 안 되는 사업장의 노동자 비중도 여전히 크다”며 “대기업 정규직이라도 거의 고정 잔업을 그대로 하고 있는 관행 등 노동 구조를 종합적으로 봤을 때 한국이 장시간 노동 체제에서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정도 데이터를 가지고 장시간 근로에서 벗어났다고 의미 부여하기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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