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억 돔구장도 좋은데…중남미에 밀린 韓여자야구, 시·도 단체는 무관심 [여자야구 현주소(23)]

황혜정 입력 2023. 9. 19.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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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41주년을 맞은 한국 프로야구는 여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그러나 여자야구는 프로야구가 성장한 41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스포츠서울은 한국 여자야구의 현주소를 알아보고 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쿠바-푸에르토리코전 후 두 나라 선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있다. 사진출처 | WBSC.

[스포츠서울 | 황혜정기자]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넘어서야 한다. 그런데 지원도 관심도 없다.

보편적으로 대한민국은 중앙·남아메리카 대륙 스포츠 수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소득 수준이 대한민국보다 낮고, 스포츠 시스템도 체계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고난 탄력과 체격, 그리고 힘을 앞세운 남미 선수들은 주요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과를 내왔다. 아르헨티나, 브라질, 우루과이 등 축구가 대표적인 예인데, 야구도 중남미 국가가 강세다. 지난 3월 열린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중남미 국가인 멕시코와 쿠바가 일본, 미국에 이어 나란히 3위, 4위를 차지했다.

여자야구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 8월초, 그리고 9월 중순에 열린 ‘2024 여자야구 월드컵(WBSC)’ 예선에서 남미 국가들이 선전했다. 지난 17일까지 열린 예선전을 끝으로 12개 참가국 중 상위 6개국이 슈퍼라운드에 진출했는데, A조에선 멕시코가, B조에선 베네수엘라가 각각 조3위로 슈퍼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했다.

베네수엘라와 푸에르토리코 경기 장면. 사진출처 | WBSC.


A조에서 미국(세계랭킹 4위), 캐나다(3위), 멕시코(12위)가 슈퍼라운드에 진출했고, B조에선 일본(1위), 대만(2위), 베네수엘라(5위)가 진출해 내년 봄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메달 경쟁을 벌인다.

공교롭게도 북미 2개국, 아시아 2개국, 중남미 2개국이 결선라운드 격인 슈퍼라운드에 진출했다. 북미와 아시아 중 일본·대만은 여자야구에서 세계 최정상급이다. 선수층이 다르고, 시스템도 체계적이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세계랭킹 10위)이 향후 열릴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상위 6개국에 주어지는 슈퍼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하기 위해선 베네수엘라,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쿠바, 도미니카공화국 등 중남미 국가를 넘어야 한다.

지난 8월초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2024 여자야구 월드컵’ A조 예선, 대한민국과 멕시코 경기. 사진출처 | WBSC.


대한민국 여자야구 대표팀은 지난 8월초 캐나다 선더베이에서 열린 ‘2024 여자야구 월드컵’ A조 예선에서 멕시코에 0-10으로 6회 콜드게임 패했다. 당시 대표팀은 실책 5개를 하며 멕시코 타선에 장단 11안타를 허용하고 고개를 숙였다.

물론 영원히 못 이길 상대는 아니었다. 대표팀은 당시 멕시코전에서 구원 등판한 투수 최송희의 2.1이닝 무실점 호투와 야수들의 호수비에 힘입어 4회와 5회를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최송희는 그 상황에 대해 “변화구 제구가 안 돼 속구로만 승부했다”고 밝혔는데, 최송희가 북미 선수들처럼 시속 110~120㎞가 넘는 빠른 공을 던지지 않는다는 점을 미루어 볼 때, 구속보다는 정교한 제구와 뜬공을 유도하는 강한 구위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대표팀의 베테랑 선수 A는 대회 종료 후 “북미, 중남미 투수들이 스리쿼터로 공을 던진다. 그러다 보니 커브가 아닌 슬라이더를 던지고, 타자들도 슬라이더에 익숙하다. 이들을 상대하려면 슬라이더가 아닌 상대적으로 생소한 커브를 주로 써야 했던 것 같다”라고 돌아봤는데, 이번 대회에서 대표팀 투수 중에 횡(橫)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사용하는 투수들이 크게 부진했고, 상대적으로 종(縱)으로 떨어지는 커브를 주무기로 사용한 투수들이 좋은 모습을 보였다는 점에서 일리가 있다.

베네수엘라 여자야구 대표팀이 3승2패로 ‘2024 여자야구 월드컵’ 슈퍼라운드 진출권을 획득했다. 사진출처 | WBSC.


그러나 선수 개개인의 기량과 전술 잘못으로만 5전 전패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멕시코는 막강 화력을 가진 미국 대표팀을 상대로도 0-2로 아쉽게 패했고, 베네수엘라는 세계최강 일본 대표팀에 4-5 아쉬운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세계 여자야구 대표팀 간의 격차가 점차 줄고 있다. 특히나 해볼 만했던 상대인 중남미 국가들이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국가, 시·도 단체 차원의 체계적인 지원도, 유수의 대기업의 물질적 지원도 사실상 전혀 없는 국내 현실에서 선수 개인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여자야구 대표팀을 관장하는 사단법인 한국여자야구연맹(WBAK)은 이번 캐나다 대회에 나갈 비행기 삯이 부족해 후원자를 유치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연맹은 한때 예산 문제로 대회 포기까지 각오했다.

중남미 선수들의 타고난 힘과 근력을 이겨내려면 일본·대만처럼 기술적이고 섬세한 야구로 다가가야 하는데, 사회인·아마추어 야구팀 소속으로 야구를 해온 대표팀 선수들로는 단기간에 이들을 넘어설 수 없다. 하루빨리 시·도 단체 산하 여자야구 실업팀이 생겨야 하는 이유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16일(현지시간) 캐나다 토론토 로저스센터 돔 야구장 스카이박스에서 아눅 카루나라트네 토론토 블루제이스 부사장으로부터 시설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제공 | 서울시.


1982년 시작된 국내 프로야구는 코로나19펜데믹 이후 4년 만에 700만 관중을 무난히 돌파하는 것을 넘어, 800만 관중도 바라보고 있다.

지난 18일 반가운 소식도 들렸다. 서울시는 약 5000억의 예산을 들여 2032년까지 ‘잠실 돔구장’ 건립 계획을 발표했다. 경기장은 국제경기 유치가 가능한 3만석 이상으로 지어지며 호텔, 레스토랑 등 다양한 부대 시설이 마련된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부럽지 않은 최신식 야구장이 대한민국에도 생긴다.

그러나 여자야구에 대한 근본적인 지원과 혁신책을 고민하는 정부 및 시·도 단체 관계자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가 ‘야구’라고 할 수 있을까. et16@sportsseou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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