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유해물질 기준치 이하라도 업무상 질병 판단

장현은 2023. 9. 19.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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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 측정 결과에서 화학물질이 노출 기준 이하로 측정됐다고 해서 노동자가 걸린 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볼 순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오씨는 이듬해 11월 산재 신청을 했는데, 공단은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고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유기용제(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면서도 오씨 근무장소에 대한 업무환경 작업환경측정 결과가 노출 기준 미만인 등의 점을 들어 질병과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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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자료사진

산업안전보건법상 작업환경 측정 결과에서 화학물질이 노출 기준 이하로 측정됐다고 해서 노동자가 걸린 질병이 업무와 무관하다고 볼 순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2009년부터 굴삭기 하부프레임 제조 회사에서 일한 오아무개(44)씨는 2017년 피부나 혈관, 내부 장기가 두꺼워지거나 딱딱해지는 전신 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오씨는 이듬해 11월 산재 신청을 했는데, 공단은 “역학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고는 업무 수행 과정에서 유기용제(화학물질)에 노출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면서도 오씨 근무장소에 대한 업무환경 작업환경측정 결과가 노출 기준 미만인 등의 점을 들어 질병과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며 산재를 승인하지 않았다. 이에 불복한 오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요양 불승인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1심도 공단 쪽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등법원 행정7부(재판장 김대웅)는 지난 14일 “법적·규범적 관점에서 이 사건 상병은 원고가 다수의 유기용제 등에 노출된 것이 원인이 되어 발생하였거나 적어도 다른 불상의 발병 원인과 겹쳐서 유발 또는 촉진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질병과 업무 간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재판부는 “(업무상 질병 소송에서) 작업환경 측정 결과 (유해물질) 노출 기준 이하라는 사정은 크게 고려할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작업환경측정이란 산안법 125조에 따라 작업환경 중 존재하는 소음, 분진, 유해화학물질 등의 유해인자에 노동자가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측정하는 것을 말한다.

오씨는 약 8년 동안 중장비 도장, 용접 등의 작업이 이뤄지는 공장에서 생산관리 업무뿐 아니라 직접 도장 보조 작업 및 주요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했는데, 현장관리직임에도 현장을 순회하며 하루 2∼3회 현장 근무를 했고, 특히 발병 2년 전부터는 현장에 상주하며 세척·유지보수 업무를 맡았다. 이 과정에서 도장 작업 등에 필요한 방진·방독마스크, 일회용 작업복 등 보호구도 받지 못했다.

재판부는 “작업환경측정보고서는 질병의 이환 여부보다는 사업장이 유해요인에 노출되어 있는지와 그 유해요인은 무엇인지 살펴보는지 기준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며 “(오씨는) 현장 작업자와 같은 업무를 하였음에도 현장관리자라는 이유로 보호구가 지급되지 아니해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현장 작업을 해 벤젠, 톨루엔 등 유기용제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고 짚었다. 작업환경측정결과 보고서에는 용접 흄 및 분진, 산화철 흄 및 분진 등 유해화학물질이 노출 기준 미만으로 확인됐지만, 작업 환경과 질병 발생의 인과 관계를 판단할 때는 이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화학물질에 노출되는 다양한 환경을 고려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오씨를 대리한 임자운 변호사는 한겨레에 “1년에 한두 번 사업주 협조 아래 측정하는 작업환경 측정 수치는 산재 소송에서는 한계가 분명히 있음에도, 이를 불승인의 근거로 쓰는 경우가 많다”며 “노출 기준 이하의 작업환경에서도 직업성 질병에 걸리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를 직업성 질병의 발생을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노동부 고시의 취지를 잘 살린 판결”이라고 말했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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