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방사선은 억울하다

이영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부장 2023. 9.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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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부장

필자는 지금 비행기 안에서 이 글을 쓰고 있다. 공항에서 바퀴가 떨어지는 순간부터 낯선 경험을 하게 된다. 귀는 먹먹해지며, 몸이 떠오르는 느낌과 함께 나도 모르게 긴장한다. 비행기가 일정 고도에 다다르면 대개 기체의 흔들림은 줄어들지만, 내 몸은 좀처럼 안정을 찾지 못한다. 눈과 코는 건조해지고, 쌀쌀함에 담요를 찾는다. 뒷자리의 어린아이가 부모의 토닥거림에도 우는 것을 보면 필자만 이상하게 느끼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이 유쾌하지 않은 현상은 고도가 높아짐에 따라, 공기 밀도가 낮아지고 기온이 떨어져 발생하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비행기를 타본 사람이라면 당연하게 여길 일이고, 처음 타본 사람들조차도 비행기에서 내리면 기억조차 못 하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누구도 비행 때문에 코나 눈의 점막이나 청각 능력이 손상됐다고 말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경험해 봤고, 경험해 본 결과 별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익숙해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지만 의외로 위험한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소금이다. 음식의 간을 책임져 주는 소금은 사실 식품 위해도로 보면 발암물질이다. 투여하면 실험동물 절반이 죽는 양을 뜻하는 반수 치사량이 체중 ㎏당 3g 정도이다. 즉, 성인 남성이 소금 180-240g을 한 번에 먹는다면 그중 절반의 생명이 위험할 수 있다.

다만 우리가 평소 사용하는 소금은 우리 몸에 문제를 일으키기엔 그 양이 너무 적어서, 맛있는 요리를 먹기 위해 소금을 사용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오히려 적당한 염분 섭취는 건강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소금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MSG는 우리 입맛을 돋워주고 요리에 자주 사용되지만, 대놓고 사용하기엔 꺼려지는 존재다. 심지어 과학적으로 소금보다 위해도가 낮은 것(반수 치사량: 780-1200g)이 증명됐는데도, 몸에 좋지 않은 물질로 여겨진다. 최근 들어 MSG가 위험하지 않다는 과학적 사실들이 알려지기 시작했지만, 한번 자리 잡은 부정적 인식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MSG는 방사선에 비하면 양반이다. 흔히들 아주 작은 방사선 노출에도 암을 유발한다고 믿고 있고, 일부 전문가들조차도 방사선을 맹목적으로 두려워한다. 하지만 방사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자연스러운 존재다. 주변의 거의 모든 물질이 방사선을 내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연간 3mSv(밀리시버트)의 생활 방사선에 노출된다.

고도가 높아지면 우주에서 내리쬐는 방사선에 영향을 더 받는다. 유럽이나 미국까지 장거리 비행 후에는 엑스레이 검사를 한번 받는 수준인 0.1mSv의 방사선을 쪼이게 된다. 몸을 구성하는 원소 중 칼륨-40과 탄소-14는 대표적인 방사성동위원소로 옆 사람과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 방사선을 주고받게 된다. 바나나, 콩, 감자 등 우리가 먹는 모든 식품도 방사성동위원소를 포함하고 있기에 우리는 방사성 물질을 먹고 산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다.

혹자는 평소에 받는 방사선량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방사선에 노출되면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MSG가 인공물이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는 주장과 같이 과학적 근거가 없는 거짓이다. 브라질의 '구아라파리'라는 지역은 자연 방사선량이 세계 평균의 5배 이상이나 높으나, 오히려 병 치료에 효과가 있다며 요양하러 오는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우리는 방사선과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그 존재를 거의 알 수 없다. 방사선에 노출된다 한들 우리의 오감으로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 흔함에 비해 우리에게 방사선은 두려운 존재가 된 듯하다. 사실 방사선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다는 증거는 차고 넘친다. 그렇기에 위험하지 않은 극미량의 방사선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게 건강에 더 좋지 않다는 것이 진실에 가까워 보인다. 우리 곁에 함께하지만,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버린 방사선이 억울한 이유다. 이영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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