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광장] 마당의 송아지들은 어디로 갔는가

정용기 시인 2023. 9. 19. 07: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용기 시인.

'우공(牛公)'은 소를 높여 부르는 말이다. 순종, 성실, 인내, 겸손, 희생, 우직, 헌신 등 소의 덕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소는 초식동물이다. 식량을 두고 인간과 경쟁하지 않는다.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 이래 인간의 식량 생산에 이바지한 노동력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다. 인간에게 고마운 동물이다.

한마디로 인간은 소의 노동력과 고기를 약탈해 왔다. '우공'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 약탈의 대가로 대접을 꽤 해주었고 가족처럼 친밀하게 생각했다. 과거 농가에서 부동산 빼고는 소가 재산목록 1호였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낸 사람들은 소에 대한 추억이 많다.

우리집만 해도 그랬다. 농번기에는 쟁기를 끌게 했지만 겨울에는 늘 소죽을 끓여 주었고, 늦봄부터 초가을까지는 산으로 몰고 가서 풀을 뜯겼다. 학교를 마치고 점심을 먹고 나면 고만고만한 동네 아이들이 모두 가까운 산으로 소를 몰고 가서 풀어 놓곤 했다. 그때 또래들이랑 산에서 놀던 추억이 아직도 아련하다.

송아지라도 태어나는 날은 흐뭇하고 경건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부모님은 마구간 앞의 개다리소반에 정화수를 떠 놓고 소의 출산을 도왔다. 정화수에는 새 생명을 받는 경건함과 감격이 담겨 있었다. 그렇게 태어난 송아지는 마당을 어슬렁거리며 식구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고, 모내기 철에는 쟁기 끄는 어미 옆을 따라다니곤 했다. 우리집에는 천둥지기 논이 한 배미 있었는데, 어느 해 장맛비가 내리고 나서야 서둘러 쟁기질을 하려는 아버지를 따라갔다가 송아지랑 보냈던 한나절이 꿈처럼 남아 있다.

몇 달간 키운 송아지를 내다 팔면 농가에서는 목돈을 만질 수 있었다. 송아지를 우시장까지 데려가기 위해 어미를 몰고 가는데, 새끼와 헤어져 돌아온 어미 소는 며칠 동안 애절하게 울곤 했다. 되돌아보니 집 뒤 대밭에서 밤바람에 수런거리던 댓잎이 송아지를 팔고 온 아버지의 가슴에 무수히 상처를 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농가의 마당에서 어슬렁거리는 송아지는 없다. 풀짐을 지고 석양을 뒤로 한 채 소를 몰고 돌아오는 아버지들도 더 볼 수 없다. 어린 시절 한밤중에 잠에서 깨었을 때 가까운 외양간에서 길게 내쉬는 소의 숨소리에 안도감을 느끼던 밤도 없다. 영농 기계화로 소는 더 이상 쟁기를 끌지 않아도 된다. 이제 모든 소는 대규모 축사로 옮겨갔다. 마블링이 적당히 분포된 높은 등급의 쇠고기를 얻기 위해 축산농가에서 체계적으로 밀집사육을 한다. 예전에 부모님이 농사 짓던 골짜기도 축사가 점령해 버렸다. 집약적인 축산업으로 사료를 먹이게 되면서 이제는 식량을 두고 소는 인간과 경쟁하는 관계가 되었다.

인도의 환경사상가인 '반다나 시바'는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울력, 2003년)라는 책에서 말한다. "집약적 축산업과 같은 경제적 모델에서는 인간의 식량인 곡물이 가축의 강화 사료로 전용된다. 1㎏의 닭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2㎏의 곡물이 들고, 1㎏의 돼지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4㎏의 곡물이 필요하다. 1㎏의 쇠고기를 생산하는 데는 8㎏의 곡물이 소비된다." 이 책에는 생산된 곡물을 모두 인간이 직접 먹는다면, 곡물을 동물에게 먹인 다음 고기·우유·계란의 형태로 먹는 것보다 다섯 배나 많은 사람을 먹일 수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리고 과학자 '호프 자런'은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김영사, 2020)라는 책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오늘날 인간이 10억 톤의 곡물을 먹어 소비하는 동안 또 다른 곡물 10억 톤이 동물의 먹이로 소비되고 있다. 그렇게 먹여서 우리가 얻는 것은 1억 톤의 고기와 3억 톤의 분뇨다."

8㎏(10억 톤)의 곡물로 1㎏(1억 톤)의 쇠고기를 얻는다면, 이런 고비용과 비효율도 드물 것이다. 축산업으로 인한 온실가스 배출량도 엄청나다고 들었다. 특히 가축들의 소화와 분뇨의 발효 과정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는 이산화탄소보다 온실효과가 20배 이상 강하다고 한다. 고기를 얻기 위해 지구 곳곳의 농경지가 줄어들고 아마존 열대우림이 불탄다. 육류 소비는 기후위기와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소는 이제 가축이 아니라 상품이 되어버렸다.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갖고 육식문화를 되돌아볼 때도 되었다. 축산업을 지켜나가면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안도 찾아야 할 것이다. 정용기 시인.

Copyright © 대전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