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축난맥상]① 뇌물·사기 ‘조합장 리스크’에 공사비 갈등까지… 바람 잘 날 없는 조합

채민석 기자 2023. 9. 19. 06:02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조합 설립 전후로 고소·고발 ‘난타전’
준공 전에도 과정 문제 삼아 ‘잡음’
대치 은마, 래미안 원베일리 등도 ‘시름’
“신고센터 설립” 취지 법안도 발의

이른바 ‘착한’ 재건축·재개발은 없을까. 도시정비사업은 정비구역 지정, 조합 설립 인가, 사업인가, 시공사 선정 및 착공이라는 복잡한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조합원과 업무대행사, 시공사는 물론, 조합원간 ‘이권 다툼’이 자주 발생한다. 사업 지연에 따른 피해는 고스란히 주민들 몫이 된다. 분쟁을 줄이고 속도를 높이는 방법은 없을까. 재건축·재개발의 현주소를 살펴본다.[편집자주]

“직무대행까지 합쳐서 지금까지 조합장 3명이 구속됐어요.
5년 전에 입주가 마무리 됐는데도 여전히 남아있는 소송이 있을 정도입니다.”

가락시영아파트(現 헬리오시티) 주택재건축정비사업조합 조합원 A씨

재건축·재개발 조합을 둘러싸고 사업 과정 전반에 걸쳐 잡음이 나오고 있다. 조합장이 각종 비위 행위를 저질러 재판에 넘겨지는 일이 수두룩하고, 후임자 자리를 둔 힘겨루기가 고소·고발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공사비 인상’을 놓고 조합과 시공사가 부딪히는 과정에서 내부 분열로 조합장이 소송전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업 지연 등 피해는 고스란히 조합원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A씨는 지난 18일 조선비즈와의 통화에서 “재건축 사업에 가장 위험한 요소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이러니하게도) 조합장과 조합 관계자들이라고 답할 것”이라고 했다.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조합장 리스크’에 시달린 대표적 단지로 꼽힌다. 실제 사업 과정에서 조합장 2명과 조합장 직무대리 1명이 구속됐다.

그는 “성공적이고 투명한 재건축을 위해 누구보다 노력해야 할 관계자들이 오히려 조합원들에게 피해만 끼쳤다”며 “성공적으로 입주를 진행해서 망정이지, 조합장 비리 소식에 가슴이 철렁한 순간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2018년 11월 14일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의 모습. /조선DB

사업비만 2조8000억원에 달해 ‘단군이래 최대 재건축 사업’이라고 불렸던 가락시영 조합 설립 15년 만인 지난 2018년에 겨우 입주를 진행했다. 재건축 평균 소요 기간은 10년 내외다. 그러나 가락시영은 이주비 부담에 이주가 일시적으로 중단되거나, 사업비 증가로 소송전에 휘말려 사업시행계획 효력정지 가처분이 인용되는 등 크고 작은 소송전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특히 조합장의 비위행위도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8월, 초대 조합장 김모씨가 특정 업체와 계약을 하는 대가로 뇌물 1억2600여만 원을 수수한 혐의(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구속됐다. 김씨의 뒤를 이어 직무대행을 맡은 신모씨도 3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영장을 발부 받았다. 이들은 2017년 대법원으로부터 징역형을 확정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2018년 3월 신임 조합장에 주모씨가 선출됐다. 그러나 공사비 증액을 이유로 수백억원 대의 추가분담금이 발생하고 조합 청산이 미뤄졌다는 이유로 해임됐다. 조합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주씨는 사기 혐의로 징역 3년 6개월을 선고받고 구속됐다. 현재 청산 진행은 지난해 선출된 조합장 오모씨가 맡고 있다. 다만 일부 조합원들이 해산결의무효를 주장하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해, 사업이 완전히 마무리 되려면 시일이 더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난맥상은 비단 이 곳만의 일은 아니다. 조합 설립 전부터 난타전을 벌이는 경우도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이에 해당된다. 비대위 성격의 은마소유주협의회가 초대 조합장으로 선출된 최정희 추진위원장을 상대로 직무집행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조합장 선출 투표 과정에서 투표함 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추진위 20년 만에 조합 설립을 앞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조합설립 이후에도 안심할 수 없다. 서울 동대문구 제기4구역 주택재개발조합은 사업을 한창 진행하던 중 대법원으로부터 조합설립무효 판결을 받은 바 있다. 토지등소유자의 동의율이 기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조합은 추진위 과정부터 다시 시작했다. 2005년 시작된 사업은 현재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시공사를 선정한 이후 사업속도나 공사비 증가 등을 놓고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 내달 조합장 재신임 투표를 진행할 예정인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조합의 일부 조합원들은 최근 서초구청에 호소문을 보냈다. 2021년에 이주한 이후 2년이 지나도 착공에 들어가지 않아 공사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은마아파트의 모습. /뉴스1

준공을 앞둔 단지에서도 고소·고발전은 발생한다. 지난달 입주를 시작한 반포 ‘래미안 원베일리’의 경우 지난해 11월 조합자금을 편취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직무정지 됐던 김석중 조합장이 조합장 선거에 다시 단독출마하면서 한바탕 홍역을 앓기도 했다.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부조합장으로 선출한 한형기 전 아크로리버파크 조합장도 지난 5월 직무정지가처분 결정을 받았다. 지난 6월에는 사전수뢰죄, 주택법 위반 등으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됐다.

이 밖에도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취지를 훼손하는 각종 비위행위들은 전국 단위로 발생하고 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최인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6년간 서울에서만 도시정비사업 법 위반사례가 608건에 달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5월 국토부가 일부 지방자치단체들과 합동으로 정비사업조합 8곳을 점검한 결과, 110건의 부적격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다. 이 중 15건은 수사의뢰 대상에 포함됐다.

정비사업지에서 문제가 꾸준히 발생하자,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해 “‘범죄와의 전쟁’ 수준으로 재건축·재개발 조합 비리를 뿌리 뽑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국토부는 지난 5월 23일부터 6월 3일까지 서울시와 함께 재개발·재건축 조합 3곳을 합동 점검한 결과, 총 65건의 부적격 사례를 적발했다. 앞서 전국 정비사업조합 8곳을 점검, 부적격 사례 110건을 적발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는 재개발·재건축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근절하기 위해 신고센터를 마련하자는 취지의 법안도 나왔다. 지난 6월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한 최 의원은 “현행법으로는 시공사 선정 또는 조합 임원 선출 중 금품이나 향응 등을 은밀하게 제공하는 행위가 근절하기 어렵다”며 “신고센터 설치 기반을 법률에 제시하는 등 도시정비법을 개정해 인허가권자의 관리감독과 처벌을 강화하고, 정비사업 비리를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