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G 시장실패]⑥ 통신망 합쳐야 6G, 7G 가능…통신시장 혁신에 요금인하, 자율주행차, UAM 성공,실패 달렸다

안상희 기자 2023. 9. 19. 06:00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통신 산업, 터닝포인트 필요…”망 통합 운영하면 과잉, 중첩 투자 막을 수 있어”
제4이통사 유치·알뜰폰 육성, 현재 시장 구조에선 효과 의문
망 사용조건 동등해지면 통신 3사와 진정한 경쟁 가능
‘통신은 내수시장’이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LTE(4세대 이동통신)보다 20배 빠르다’고 했던 5G(5세대 이동통신)가 사실상 반쪽짜리 서비스로 전락했다. 연간 4조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통신 3사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28㎓ 주파수를 반납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당초 통신 3사가 약속한 속도에 한참 못 미치는 서비스를 이용하면서도 LTE보다 비싼 요금을 내야 하는 현실에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정부는 통신 3사가 장악한 통신 산업이 2002년 이후 과점 구조로 굳어져 시장 기능이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격에 의해 자원이 효율적으로 배분되지 못하는 ‘시장실패’ 상태에 있는 통신 산업을 진단해 본다.[편집자주]

일러스트=손민균

#영국 브리티시텔레콤(BT)은 1846년에 설립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통신사다. BT는 2001년 300억파운드(약 49조4607원)의 부채를 안고 파산 직전까지 갔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국 통신위원회(Ofcom)는 BT가 보유한 통신 네트워크를 다른 통신사가 동등한 조건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할 것을 명령했다. BT의 망 운영 및 관리 조직을 분리해 ‘오픈리치’라는 회사를 설립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망을 분리한 BT의 회생을 점치는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BT는 불사조처럼 부활에 성공했다. 영국 전역에 깔린 낡은 구리 통신망을 초고속 인터넷 네트워크로 바꾼 다음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통신 서비스를 개발했다. 영국 밖에서는 글로벌 기업들을 대상으로 통신을 포함한 종합 IT서비스 사업을 시작했다. BT는 글로벌 경영평가 기관 이노베스트로부터 2005년부터 2007까지 3년 연속 세계에서 지속가능성이 가장 높은 기업으로 선정됐다.#

시장실패 상황에 놓였다는 평가를 받는 국내 통신 시장도 과거 BT 사례와 같은 터닝포인트(전환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서로 혁신적인 서비스, 요금제, 품질을 내놓으며 경쟁을 해야 하는데, 비슷한 서비스와 요금으로 과점의 이익을 향유하고 있다” “가만있어도 좋은 성과를 내니 통신 3사가 굳이 경쟁을 하지 않는 것이다” ”’5G 세계 첫 상용화’라는 위상을 얻고도 ‘반쪽 5G 서비스’에 그친 것은 통신사의 소극적인 태도가 한몫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BT 사례를 우리의 통신 산업에 대입하면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가 일정 지분을 투자해 주파수를 따내고, 기지국 설치 등을 포함해 통신망을 공동 관리·운영하는 합작사를 설립하는 대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양준모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빠른 속도의 통신을 원한다는 통신사의 투자 유인책이 있었다. 이제는 통신 속도가 빨라질 만큼 빨라져 속도가 투자의 이유가 되지 않고 있어 돌파구가 필요하다”면서 “이런 경우에는 통신 3사가 네트워크 망을 통합적으로 관리하는 게 바람직한 방향일 수 있다”고 했다. 망을 통합해 운영하면 과잉, 중첩 투자를 하지 않아도 되며, 통신사는 서비스·상품 개발에 집중해 소비자에게 혜택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한 통신업계 전문가는 “5G 서비스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사기라는 지적을 받고 있는데 자율주행차, 도심 항공교통(UAM)에 필수적인 6G(6세대 통신), 7G(7세대 통신) 망 투자가 이뤄지려면 통신망 통합 운영 외엔 답이 없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과점 체제의 통신 시장에 경쟁을 촉진하고 통신비를 인하한다는 목표로 제4 이동통신사 유치와 알뜰폰 육성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현재의 시장 구조에서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통신 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신규 사업자 입장에서는 가입자를 0명부터 모집하더라도 막대한 자본금을 투입해야 하는데, 통신 3사가 버티고 있는 시장에서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매대가(망 사용료)는 절대적으로 통신 3사에 유리하다. 소매가가 결정되면 일정 부분을 할인해 알뜰폰에 제공해 주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통신망 통합 운영사가 설립되면, 제4 통신사의 시장 진입 문턱이 지금보다 낮아질 수 있다. 통신망 회사와 통신 판매회사가 분리될 경우 통신 판매회사들은 동등한 조건으로 통신망 회사와 계약을 맺고 망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통신망을 통합 운영하면 넷플릭스, 유튜브, 네이버 등 통신망 과다 사용 기업에도 공동 대응할 수 있어 갈등을 줄일 수 있다. 지난 3년여간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 망 사용료를 두고 개별적으로 소송을 벌인 과정에서 글로벌 빅테크와 힘겨루기를 했는데, 통신망을 통합 운영하면 통합망 회사의 힘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정책팀장은 “망 합작사에서 망 사용료를 통신 3사와 알뜰폰, 신규 사업자에게 동등하게 부여할 경우 경쟁이 활성화되면서 통신요금도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라며 “현재 정부가 내놓은 알뜰폰 육성이나 제4 통신사 유치안은 망 사용료 측면에서 통신 3사를 이길 수 없어 동등하게 경쟁이 안되기에 실효성이 전혀 없다”라고 말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현재의 망 도매대가 산정 방식으로는 제4 통신사가 등장해 통신 3사에 맞설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가 어렵다”라며 “오히려 통신 3사가 원가에 일정 부분 마진만 붙이고, 기존 알뜰폰 사업자가 가입자가 어느 정도 확보된 쿠팡·카카오·토스 등이 나서 크로스셀링(교차판매)하는 구조가 경쟁을 촉진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라고 했다.

마츠 그란리드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SMA) 사무총장은 최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네트워크를 통합해 회사를 운영하거나 2개의 통신사가 함께 네트워크 회사를 운영하는 하이브리드 모델을 시도해 볼 수는 있다”면서도 “통신사 입장에서 망은 핵심 경쟁력인 ‘영혼’과 같은 존재로 합의를 이루는 게 쉽지 않은 복잡한 일이며 품질 문제가 생길 수 있다”라고 했다.

분명한 사실은 국내 통신 산업이 내수시장에서 나눠먹기식 사업을 하는 것에서 탈피해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싱가포르 통신사 싱텔은 과거 인구 400만명의 좁은 내수시장을 벗어나 일찌감치 해외로 눈을 돌렸다. 싱가포르 정부는 1990년대부터 통신 시장을 개방했고, 이는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싱텔은 1999년 태국 AIS, 2000년 인도 바르티, 2001년 인도네시아 텔콤셀에 투자했다. 2001년에는 호주 2위 통신업체 옵터스를 인수해 자회사로 만들었다.

김범준 가톨릭대 회계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통신 시장이 성장기라 정부가 강력하게 정책을 추진하면 사업자들도 투자를 하면서 서로 간의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측면이 있었다”면서 “현재 시장이 포화된 상황에서 사업자들은 투자를 꺼리는 반면, 정부는 네트워크 투자를 활성화하고 싶어하기에 이해관계가 어긋나고 시장실패가 명확하게 나타나고 있어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통신의 주체가 사람에서 사물로 확장하는 과정에서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터닝포인트가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