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 칼럼] 금융 선진화 가로막는 국회의 직무 유기

진상훈 기자 2023. 9. 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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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마을금고의 감독권을 행정안전부에서 금융위원회로 넘기는 내용을 담은 ‘새마을금고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사실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한 채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소관 상임위원회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지난 7월 14일 개정안이 발의된 후 지금껏 두 차례의 전체회의와 세 차례의 안건조정위원회를 거쳤지만, 단 한 번도 새마을금고의 감독권 이관에 대한 논의를 하지 않았다.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은 7월 초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조짐을 보이자,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대표로 12명의 의원이 동참해 발의됐다. 당시 새마을금고는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대체투자 부실이 드러나면서 예금을 찾으려는 고객이 몰려 홍역을 치렀다. 박차훈 새마을금고 회장과 측근들이 비리에 연루돼 검찰 조사를 받는 등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도 도마 위에 올랐다.

새마을금고 문제가 발생한 근본적 원인은 관리·감독권을 행안부가 쥐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금융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지고 인력도 부족한 행안부가 거대 금융 기관인 새마을금고의 관리를 맡다 보니, 부실이 쌓이고 곳곳에서 비리와 배임 등이 판을 치게 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새마을금고는 자산 규모는 284조원, 점포 수는 1294곳에 이르지만, 이를 관리할 행안부 인력은 고작 10명뿐이다.

이 때문에 새마을금고의 감독 권한을 금융 당국으로 넘겨 전문적인 감시와 점검을 받도록 하고, 정기적으로 경영과 재무 상황을 공시하는 의무를 부여해야 한다는 데 많은 공감대가 형성됐다. 정치권 역시 한창 달아오른 이슈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불과 며칠 만에 개정안 발의에 나섰다.

그러나 정부의 발 빠른 진화로 뱅크런 우려가 잦아들자, 정치권의 관심도 빠르게 식었다. 감독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행안부는 물론 금융위까지 이관에 난색을 보이면서 발의 후 한 달 만에 국회에서 새마을금고법 개정안은 철 지난 이슈가 돼 버렸다. 8월 중순부터 이어진 여러 차례 회의에서 단 한 번도 개정안이 안건에도 오르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남은 21대 국회 일정을 고려했을 때 새마을금고법 개정안 통과는 좌절될 가능성이 크다. 여야는 오는 10월 국정감사를 마친 후에는 내년 4월에 치러질 총선 준비에 돌입할 가능성이 크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백현동·대북송금 수사를 둘러싸고 여야가 첨예하게 맞부딪힌 상황이라 남은 회기에서 개정안 통과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사실상 새마을금고의 투명성 확보와 경영 선진화에 중요한 영향을 미칠 감독권 이관에 대해 정치권은 생색만 낸 채 결국 어떤 성과도 만들어 내지 못한 셈이다.

정치권은 앞서 지난 5월 김남국 무소속 의원의 코인 대량 보유·매매 파문이 불거졌을 때도 잠시 법석을 떨었다 이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행태를 보였다.

당시 여야는 가상자산 시장의 모든 문제를 파헤치자며 청문회를 열기로 합의했다. 의원 전원은 물론 주변인들까지 코인 보유 내역을 공개하자는 데도 뜻을 모았다. 그러나 김 의원 파문에 대한 관심이 점차 줄자, 7월에 열기로 했던 가상자산 청문회는 두 차례 연기 끝에 슬그머니 무산 수순에 들어갔다. 코인 보유 내역 공개도 직계 가족 등이 빠진 채 의원 본인으로만 한정하기로 합의됐다.

다음 달 국감에서 새마을금고와 가상자산은 중요한 이슈로 다뤄질 가능성이 크다. 매년 그래왔던 것처럼 의원들은 목청을 높여가며 국감장에 불려 온 공무원들과 시장 관계자들을 매섭게 몰아붙일 것이다.

그러나 해묵은 병폐가 터질 때마다 당장이라도 ‘해결사’ 역할을 할 것처럼 나서다 시간이 지나면 슬그머니 발을 빼는 정치인들의 행태를 생각해 볼 때 국감 역시 며칠간 최대한의 관심을 끌겠다는 ‘오버액션’ 정도로 그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금융 시장의 발전과 선진화를 가로막는 게 혹시 자신들의 직무 유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정치권이 스스로 돌아보기를 바란다.

[진상훈 금융2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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