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R&D'에 꽂힌 정부…현장선 "눈 먼 돈, 더 샐 것"
'글로벌 R&D'만 3.5배 증가
정부가 2024년도 연구개발(R&D)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과정에서 글로벌 수준을 지향하는 '글로벌 R&D'에는 재투자하라는 지침을 각 부처에 지시한 것으로 파악됐다. 각 R&D 부처별로 실무진들은 몇 달 동안 예산을 조율했지만 전면 백지화 됐고, 글로벌 R&D 예산은 3배가 넘게 증액됐다.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계획 없이 '글로벌'에만 꽂힌 정부의 졸속 지침으로 인해 부실한 연구 사업이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재투자 방향은 '글로벌', 구체적 지침 안내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6월 29일 각 부처 R&D 예산 담당 부서에 '24년도 주요 R&D 예산에 관한 부처별 구조조정 및 재투자안'을 제출해달라는 문서를 보냈다. 전날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 후속 조치로, R&D 예산에 대한 지출 효율화 및 글로벌 R&D 투자 강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라는 설명이 첨부됐다.
이 자료에는 '구조조정 방향'과 '재투자 방향'이 상세히 적혀 있다. 우선 구조조정 대상은 경쟁률이 저조한 사업(2:1 미만)이나 나눠먹기·뿌려주기식 사업, 부처 자체 평가 결과 하위 10% 사업이다. 이 사업 가운데 폐지 사업도 적극 발굴하라고 명시됐다.
이렇게 깎은 예산을 재투자 할 곳도 정해줬다. △글로벌 R&D, △국가전략기술, △인재양성 등이다. 글로벌 R&D 분야 재투자의 경우 집행하고 있는 사업 가운데 해외 기관 및 기업과 협업하는 사업은 별도 내역으로 분리하고 확대 개편하라는 구체적인 예시도 들어줬다. 수 십 조가 걸린 R&D 예산에 대해 구조조정하고 재투자안을 내라고 한 기간은 평일 기준으로 단 이틀, 주말을 포함해 딱 나흘을 줬다. 한 출연연은 국제 공동 연구 제안서를 1시간 내로 제출하라는 압박을 받았다고도 한다.
이에 따라 글로벌 R&D 예산은 3배가 넘게 증액됐다. 올해 글로벌 R&D 예산은 5075억원이었고, 원래 제출하려고 했던 내년도 글로벌 R&D 예산은 6106억원이었다. R&D 예산은 올해 초부터 과기부가 각 R&D 부처 실무진들과 협의해 책정된 바 있다. 과학기술기본법에 따라 과학기술자문회의 심의를 거쳐 6월 30일까지 기재부에 보내야 한다. 그러나 6월 28일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나눠먹기식, 갈라먹기식 R&D는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R&D 국제협력은 세계적 수준의 공동 연구를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R&D 예산은 전면 개편됐다.
"졸속 행정·솔직하지 못한 정부의 태도 분노스러워"
현장의 과학자와 연구자들은 예산이 대폭 삭감된 것도 문제지만 이렇게 졸속으로 이뤄진 행정 절차와 솔직하지 못한 정부의 태도가 더 분노스럽다고 입을 모은다. 예산을 책정할 때 꼭 필요한 연구 분야와 과제가 있어 몇 개월 동안 짜 놓은 걸 다 무시하고 대통령 한 마디에 나랏 돈 수 조 원이 왔다갔다 하는게 정상이냐는 물음이다. 특히 예산을 갑자기 늘린 글로벌 R&D 사업에 대해서도 우려가 크다. 국제 공동 연구는 다른 나라와 함께 공동 연구를 해서 노하우나 이론을 쌓아가고 인적·물적 교류를 통해 능력을 같이 키워나가자는 취지가 있는데, 단 이틀 만에 졸속으로 글로벌 R&D 사업을 추진하면 제대로 된 사업이 추진되겠냐는 반문이 나온다.
한 중견 연구자는 "우리가 같이 하고 싶고 배우고 싶어하는 선진국의 연구진들이 그렇게 쉽게 노하우나 실험 성과를 공유하지 않는다"면서 "이런 장기적 관점에서 보지 않고, 한 시간 만에 사업안을 짜내게 한다고 될 게 아니지 않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단기적 실적이나 결과물만 강조하다 보면 결국 단발성으로 예산을 소비하는 셈 밖에 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출연연 관계자는 "갑자기 글로벌 R&D 사업을 하라고 하면 새로운 연구나 질 좋은 사업이 나오지 않는다"면서 "원래 했던 응모 내용을 그대로 하거나 바꿔내거나 할 텐데 부실한 아이디어들이 편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연대회의 "연구비 카르텔 실체 우리가 궁금하다, 명확하게 밝혀라"
특히 "점점 연구 현장의 반발이 거세지자 7대 전략 분야 등, 일부 R&D 예산이 증가한 분야 젊은 연구자 몇 명만 비공개로 모아 일방적으로 정부 입장을 설명하였고, 이를 우리나라 전체 과학기술 종사자들에게 정부의 입장을 설명하고 동의 받은 것처럼 포장했다"면서 "연구 분야와 세대 간 갈라치기와 불화를 조장하는 듯한 정부의 행태에 우리는 더욱 실망하고 분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구비 카르텔의 실체와 비효율 사례가 무엇인지 명확하고 상세하게 밝혀라, △예산 삭감된 R&D 사업 및 과제 목록과 삭감 논리를 전부 공개하라, △R&D 예산 삭감과 관련해 연대회의 공동대표단과 끝장 토론을 개최하라, △삭감 전 R&D 예산 수준으로 되돌리도록 국회 예산 심사에 적극 협조하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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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홍영선 기자 hong@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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