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칼럼] 저출산·고령화로 ‘소멸’하는 나라
전 세계는 이민자·난민 물결… 남미·北阿 이어 아시아도 임박
배달민족·백의민족? 인구구조 재편 쓰나미 올 것
지난주 미국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 리포트지에 흥미롭지만 우리에게는 결코 흥미로울 수만은 없는 기사가 실렸다. 전 세계 나라를 분야별로 조사해서 등급을 매긴, 말하자면 세계 여론조사였다. 한국은 전체적으로 ‘가장 좋은 나라(Best country)’ 부문에서 21위를 차지했는데 ‘강력한 국가(Strong country)’ 부문에서는 6위에 올랐다. 한마디로 ‘힘은 센 나라인데 삶의 질(質)은 힘에 비해 떨어진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외교·국방·경제 등에서는 일본을 제칠 정도이지만 사회적 목적(40위), 모험성(54위), 사업 개방도(74위) 등에서 크게 떨어져 전체 순위를 끌어내린 것이라고 기사는 설명하고 있다. 그런 항목은 없었지만 여기에 ‘국내 정치’를 넣었다면 우리는 분명 하위로 크게 추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 기사의 댓글 가운데 눈길을 끄는 것이 있다. “전 세계 유례없는 저출산율로 소멸 직전의 나라인데 21위라니 너무 높다”는 비꼼조의 촌평이었다. 소름이 돋는 지적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과 고령화로 서서히 가라앉는 배와 같다는 느낌이 무겁게 다가왔다.
나는 지난 3월 칼럼에서 ‘붕괴하는 세계와 인구학’을 쓴 피터 자이한의 글을 소개한 적이 있다. 그 책의 한국어판 서문을 다시 한번 음미한다. “지난 4반세기 동안 보인 (한국의) 인구구조 없이는 (지금의) 자본구조나 노동생산성 수준도 유지하지 못한다. 한국은 수출과 수입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이고, 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빠르게 고령화하고 출산율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라다. (중략) 에너지 접근, 물리적인 안보, 안정적인 노동력, 시장과 원자재 접근 등 어떤 문제에도 ‘하나같이’ 한국은 이미 가장 심각하게 노출돼있다. 운송, 금융, 에너지, 원자재, 제조업, 농업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가속화하며 서로 중첩되는 여러 위기에 직면한 세계에서 한국이 어떻게 버틸지 모르겠다.”
이런 지적 앞에 우리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출산과 고령의 문제는 어느 지도자 한두 사람에 의해 또는 어느 정권에 의해 좌지우지될 수도 없고 또 설령 어떤 결단이 내려진다 해도 10년 20년 내에 해결될 수도 없는 한계를 지닌 것이다. 지금 국민적 각성이 이루어진다 해도 그 효과는 20년 30년 뒤에나 나타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 정치판은 지금 내전(內戰) 상태다. 총만 쥐여주면 서로 쏘아 죽일 태세다. 정치 싸움하는 데 온 정신이 팔려 20~30년 뒤 한국인 존폐의 문제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지금 전 세계는 인구 이동, 즉 이민자와 난민의 문제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미국은 남쪽 텍사스 쪽에서 하루에도 수백, 수천 명씩 죽기 살기로 국경을 넘는 밀입국자 물결에 정권의 향배가 달릴 정도이고, 지중해에서도 북아프리카를 떠나 이탈리아 그리스로 들어오는 보트피플 문제가 전 인류적 관심사다. 가난한 나라의 사람들은 먹을 것 살 곳을 찾아 잘사는 나라로 목숨을 걸고 몰려가고 이제 이것은 어떤 총으로도, 어떤 장벽으로도 막을 수 없는 인류의 삼투작용이다.
이민 또는 난민의 물결은 머지않아 아시아에도 밀어닥칠 것이다. 서남아시아, 동남아시아의 빈곤한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보다 환경이 나은 북(北)으로 몰려올 것이다. 우리나라는 노동인구가 부족해 이미 수만명의 동남아인들을 고용할 수밖에 없고, 올해 2분기 출산율이 0.7까지 추락했으니 인구구조는 우리가 원하든 아니든 바뀔 수밖에 없다. 배달민족이니, 백의민족이니 민족의 혈통을 운위하는 시대는 갔다. 미국에서 흑인 대통령이 탄생했듯이 우리나라에서도 타민족 선출직이 등장할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저출산·고령화와 싸우는 분들의 의료적 노동친화적 인구분포적 접근 노력을 평가절하 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우리가 대한민국의 주류(主流) 자리를 지켜낼 수 없다. 이것은 관찰이나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조만간 우리나라에 닥칠 인구구조 재편의 쓰나미를 지적하는 것이다.
극단적인 제안을 하자면 적령기의 사람들은 결혼과 출산을 국민적 의무로 간주하게 하고 노령층을 더 오래 살도록 하는 정책에 국력과 세금을 소비할 때가 아니라는 인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
앞서 인용한 책에서 자이한은 “나는 한국이 망(亡)하는 데 내기를 거는 것이 아니다”라며 한국이 난관을 극복하기 바란다는 쪽으로 말을 돌렸지만 나는 거기서 한국이 어떻게 세기적 세계적 변화의 물결에서 헤어날 수 있겠느냐는 체념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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