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즈 서울-키아프 2년… 돈과 숫자보다 중요한 ‘이것’[영감 한 스푼]
미술에서 가장 쉽게 관심을 받는 이야기는 이런 것들입니다. 덕분에 아트페어 기사를 쓰게 되면 어떤 작품이 얼마나 비싼 가격에 팔렸고,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페어를 찾았으며, 그 안팎에서는 또 얼마나 화려한 파티들이 벌어졌는지를 다루게 됩니다.
이번에는 좀 더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한남 나이트, 디너파티, VIP 오픈…. 영어 단어들로 장식된 시간을 지나고 난 뒤의 차분함 속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공유합니다.
반짝이는 것을 좇는 사람들
“한국에서 1년 동안 마실 샴페인의 절반은 이번 주에 소비된 것 같아요.”
프리즈 서울(6∼9일)이 막을 내릴 무렵인 8일 어느 갤러리스트가 제게 한 말입니다. 5일부터 7일까지 갤러리들이 나눠준 술과 음식은 물론이고 미술계 관계자들이 참석했을 수많은 식사와 파티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느다란 샴페인 잔에서 수직으로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거품처럼, 아트페어와 갤러리에는 반짝이는 무언가를 좇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이들은 멋진 옷을 입고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인스타그램에 이를 올리며 마음껏 즐겼습니다.
사람 구경이 재밌는 일주일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입은 다양한 옷처럼 그들의 예술적 취향도 각자 다를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취향에 맞는 작품을 즐기고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아트페어에서는 그것들이 돈으로 가치가 매겨진다는 현실도 마주합니다. 어떤 작품은 몇백만 원, 다른 작품은 몇십억 원 하는 냉정한 숫자 앞에서 사람들은 주눅이 듭니다.
그 결과 페어에서 뉴스가 되는 것은 ‘최고가 작품’이죠. 여기서 우리가 작품 앞에서 눈과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은 멀어지고 맙니다. 그리고 이 말이 작품의 설명을 대신합니다.
‘이게 몇십억 원짜리 작품이래, 이걸 산 사람은 얼마나 돈이 많을까?’
오늘의 숫자와 내일의 감각
페어장에서 만난 컬렉터 A 씨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수년 전 갤러리에서 두 작품을 보여주었어요. 둘 다 가격은 비슷했고, ㄱ보다 ㄴ 작품이 제 취향이었죠. 그런데 왠지 ㄱ 작품이 시장에서 인기일 거라는 느낌이 왔어요. 고민하다 취향대로 선택했는데, ㄱ 작품이 몇 년 사이 엄청나게 가격이 오르더군요. 지금도 후회는 없지만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내가 그때 조금만 양보해서 ㄱ 작품을 골랐다면 그 차익으로 ㄴ 작가의 작품 여러 점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웃음)”
그의 이야기에서 컬렉터에게 하는 많은 조언들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투자는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작품을 사라? 아니면 투자를 위해 가격이 오를 작품을 골라라? 사실은 둘 다 모든 상황에 적용하기는 어렵습니다.
작품의 가치는 당장 시장 반응이 아니라 오랜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금전적 가치뿐 아니라 좋은 작품을 곁에 두고 얻는 감각과 경험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도요.
공허한 시간들, 중심이 필요해
아트페어를 계기로 작품의 가치는 돈으로 매길 수 없다거나 글로벌 페어가 한국 미술계를 황폐하게 할 거라는 순진한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프리즈 주간을 지나며 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흐름이라는 게 더 와닿았습니다. 페어를 계기로 다양한 사람들이 만나고 생각을 나누는 장이 열린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오래전부터 글로벌 페어를 열어왔던 홍콩을 떠올리면, ‘아트위크’가 공허한 시간이 되지 않기 위해 중심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년 ‘아트바젤 홍콩’이 열리면 미술인들이 이 도시를 찾고 떠들썩한 파티를 열지만 정작 홍콩 미술계에 대해서는 알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오래전부터 운영된 비영리 기관은 있지만 제대로 된 미술관인 M+가 문을 연 건 최근의 일입니다.
미술인들이 모여든다 해도 한국 미술의 맥락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 없다면 결국 이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마케팅 플랫폼, 파티장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이야기죠.
가격은 중요하지만, 그 전에 작품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는지, 그것이 과연 진실한 감각인지, 그것이 세계 보편적 미술사 맥락에 비추어 합당한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를 고민해 봐야 할 시간이 닥쳐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샴페인의 거품처럼 반짝이다 터져 버릴 예쁜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버텨낼 예술의 가치를 우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말입니다. 프리즈 서울과,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 서울아트위크를 겪은 독자분들은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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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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